고등학생 논술 토론 현장 스케치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9.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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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의 모범 보여준 ‘고교생 논술 토론 광장’…민주 시민 기르는 ‘밑거름’
무려 여섯 시간 가까이 토론이 이어졌지만 아이들은 쌩쌩했다. “왕따 현상이 광범위하게 퍼진 데는 언론 책임이 큽니다. 언론의 무책임한 선정주의가 왕따 현상을 부추겼습니다.”(이종관·경북사대부고 2년)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왕따 문제의 심각성은 여전히 은폐되었을 것입니다.”(김나영·사직여고 1년)

1월26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 바로 옆 건물인 국회 본관에서 경제 청문회가 한창일 무렵 이곳에서는 ‘고교생 논술 토론 광장’이 열리고 있었다. 지리멸렬한 질문·답변이 오고 간 어른들의 청문회와 달리 아이들의 토론회에는 시종 팽팽하고도 청량한 긴장감이 넘쳤다. 주최측인 역사문화아카데미(원장 강치원) 뜻에 따라 원탁 토론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진행된 이 날 토론의 주제는 왕따·체벌·폭력.

토론에 참가하기까지 학생들은 이미 20시간30분 동안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이들이 내놓은 대안은 참신했다. 김용정양(숙명여고 2년)은 왕따 문제 해결책으로 ‘학생 해결사’를 제안했다. 왕따 문제에 교사나 학부모가 개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직접 나서 왕따 가해자와 피해자의 의견을 고루 듣고 양쪽 모두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줄 해결사를 학급당 한 사람씩 선출하자는 것이 김양의 제안이었다.

하대국군(대원외고 2년)은 ‘학부모 관찰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2주일에 1회 정도 학부모가 가정에서 관찰한 자녀의 상태를 학교에 보고하게끔 강제함으로써, 학교 폭력을 싹부터 잘라 버리자는 취지였다. 학생회·교무회의·학교운영위원회 같은 자치 기구 활동을 강화해 학생·교사·학부모가 삼위일체식 대응을 펼쳐야 한다는 이경원군(부천고 2년)의 제안도 눈길을 끌었다.토론의 규칙·덕목 하나씩 깨우쳐

그러나 토론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토론의 ‘결과’가 아닌 ‘과정’이었다. 이제껏 경험한 토론이라고는 ‘입심 좋은 몇 명만 떠드는 학급회의 또는 토론 수업’이 전부였던 아이들은, 자기 의견을 밝히자마자 여기저기서 반론이 날아드는 난상 토론을 통해 토론의 규칙을 하나씩 배워 갔다.

“빗나간 조기 교육이 경쟁적인 아이들을 양산했고, 이것이 왕따 현상을 낳았다”라고 주장한 한 토론자는 “조기 교육을 강화해 왕따 현상을 극복해야 한다”라고 모순되는 주장을 펼쳤다가 다른 토론자들에게 맹공을 당했다. “조기 교육 강화는 인성 교육 강화를 의미한다”라고 뒤늦게 자기 발언을 수정한 이 토론자는 이로써 분명한 개념 정의 및 용어 사용이 토론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체벌에 대한 찬반 논란은 시간 낭비이므로, 이 자리에서는 대안을 토론해 보자”라고 말문을 열었던 한 토론자는 “체벌의 당위성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대안이 전혀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다”라는 반박에 밀려 자기 제안을 철회했다. 토론은 성과(합의)를 이끌어내기보다 성과에 도달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 날 토론자들이 가장 당황해 한 것은 “이제까지 진행된 토론 내용을 중간 정리해 달라”는 사회자의 주문이었다. 자기 의견을 거침없이 펼치던 토론자도 이 대목에서는 말이 흔들렸다. 그러나 중간 정리를 반복하면서 학생들은 마침내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을 깨우쳤다. 그것은 바로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

특기할 만한 것은, 이 날 토론이 원탁 토론의 정신을 살려 심사위원과 청중(교사·학부모·학생)까지 동참하는 구조로 짜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토론에 합세한 이들은 ‘토론은 이런 것이다라는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상찬하면서도 날카로운 비판 또한 아끼지 않았다.

‘격식은 차렸으나 창의적인 내용을 담지 못했다’ ‘치열한 고민 없이 언론·전문가 들의 견해를 답습했다’는 것이 주된 비판이었다. 이를테면 한 토론자는 과밀 학급이 왕따를 불렀다고 비판하면서도 “과밀이 더 심각했던 70∼80년대에는 왜 왕따가 없었느냐”라는 지적에 반론을 제대로 펴지 못했다. 암기식 교육의 폐해가 다시 한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아직은 서투른 걸음. 그렇지만 원탁 토론은 분명 한국의 척박한 토론 문화를 갈아엎고 민주 시민을 기르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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