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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만 남긴 검찰의 ‘경기은행 로비’ 수사

경기은행·조폐공사 사건 서둘러 ‘봉합’…주혜란씨 4억원 사용처 등 못 밝혀

정희상 기자 ㅣ hschung@sisapress.com | 승인 1999.08.12(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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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30일 검찰은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두 가지 대형 사건에 대한 수사를 서둘러 종결했다. 서울지검에서 벌인 진형구 전 대검 공안부장의 조폐공사 파업 유도 의혹 사건과, 인천지검이 맡은 경기은행 퇴출 관련 로비 사건 수사였다. 두 사건에 대해 검찰이 내린 결론은 일반 국민의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의 경우 ‘진형구 전 대검 공안부장의 1인극’으로 드러났다는 것이고, 경기은행 사건은 구속된 임창렬 경기도지사와 달리 최기선 인천시장도 경기은행측으로부터 돈을 받았지만 뇌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진형구씨와 임창렬 경기도지사 부부를 구속하는 선에서 두 사건 수사를 마무리하고 ‘최선을 다했으니 믿어 달라’는 입장이다.

사실, 초기에 검찰이 보여준 수사 형식과 의지를 보면 이례적인 면도 없지는 않다.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의 경우 검찰 조직 내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특별수사팀(이훈규 서울지검 특수1부장)이 전격적으로 대검 공안부 사무실을 압수 수색했다. 박순용 검찰총장 지시로 결성된 특별수사팀은 검찰 사상 유례 없이 상부 보고를 배제한 채, 오로지 실체적 진실을 규명한다는 일념으로 수사에 최선을 다했다고 밝히고 있다.

“특검제 물타기용 수사였다” 시민단체 반발

경기은행 로비 의혹 사건을 수사한 인천지검도 수사 초기에 임창렬 경기도지사 부부를 전격 구속해 부패 척결에 성역이 없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비쳤다. 임창렬 지사 부부가 현정부의 ‘실세’로 알려진 터라 그를 구속 수사한 것만으로도 ‘실추된 검찰의 명예를 인천지검이 살렸다’는 평가가 검찰 조직 내부에서 흘러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 권력형 비리 수사였다는 검찰 내부의 자평에 고운 눈길을 보내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특검제 물타기용 수사였다든지, 권력형 비리에 대응하는 검찰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는 것이 두 사건 수사를 바라보는 시민단체들과 야권의 시각이다. 수사 결과 발표 이후 특별검사제도에 대한 여론이 더욱 높아진 것도 검찰로서는 원치 않았던 상황이다.

검찰이 이처럼 궁지에 몰린 것은, 국민이 사건의 핵심에서 벗어난 결과를 발표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선 경기은행 퇴출 관련 사건의 핵심은 정·관계 인사들을 상대로 한 불법 로비의 ‘연결 고리’였다. 이와 관련해 검찰이 불구속 기소한 최기선 인천시장 외에도 이 지역 여당 중진 의원, 그리고 권력 핵심부의 관련 여부 등이 주요 관심사였다. 검찰은 임창렬 경기도지사 부인 주혜란씨가 서이석 전 경기은행장으로부터 받은 4억원의 사용처를 끝내 파헤치지 못했다. 또 아태재단 이사로 있었다는 이영우씨(환태평양협회장)가 서이석씨로부터 받은 1억원에 대해서도 로비 용처를 밝혀내지 못했다. 당사자들의 진술에만 의존하는 소극적 수사를 벌였기 때문이다. 주혜란·이영우 씨가 억대의 로비 자금을 수표가 아닌 현금으로 찾아 썼기 때문에 이를 추적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지만, 거액의 사용처를 찾아내지 못할 만큼 검찰의 수사 능력이 뒤떨어진다고 보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검찰은 구속된 이영우씨와 이희호 여사의 조카인 이영작 박사 사이에 친분 관계가 있지만, 경기은행 퇴출 로비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이영우씨가 이영작 박사를 만난 시점이 경기은행 퇴출 직후인 지난해 7월1일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경기은행의 영업 정지일은 지난해 6월29일이었지만 사실상 퇴출 날짜라 볼 수 있는 인가 취소일은 9월3일이라는 점에서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더구나 서이석·이영우·이영작 씨 등이 만난 시점 및 이유에 대해서는 진술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 서씨는 ‘이영우씨에게 이박사를 만나 퇴출을 막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주장한 반면, 이박사는 이영우씨가 자기에게 특별한 부탁을 한 적이 없다고 단언한다. 김대중 대통령도 이 문제를 철저히 조사해 한점 의혹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지만, 검찰은 어찌된 영문인지 이영작 박사가 출국하기 전까지 미심쩍은 부분을 조사하지 않았다.

특히 검찰은 서이석 전 경기은행장으로부터 ‘로비 자금 명목으로 2천만원을 최기선 인천시장에게 주었다’는 진술을 얻어내고서도, 최시장에게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만 적용해 면죄부를 주었다. 서씨가 최기선 시장에게 건넸다는 돈은 떡값 등을 포함해 모두 4천5백만원. 그러나 검찰은 최시장을 소환 조사한 결과 ‘액수와 시기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이유를 들어 수사를 종결했다. 더구나 최시장은 경기은행에 부당한 대출 압력까지 행사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 역시 그냥 넘어갔다.
임창렬·최기선이 받은 돈, ‘죄질’이 다르다?

임창렬 경기도지사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부분도 이 대목이다. 초보 정치인인 자기가 선거 자금으로 받은 돈은 뇌물이고, 노련한 정치인인 최기선 시장이 받은 돈은 정치 자금이라는 검찰의 잣대를 수용할 수 없다는 반발이다. 결국 이 때문에 인천지검의 경기은행 퇴출 관련 로비 사건 수사는 ‘정치적 고려에 따른 각본 수사’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특검제 도입을 앞두고 김 빼기라는 지적을 받았던 검찰의 조폐공사 파업 유도 의혹 사건 수사 역시, 검찰 차원의 조기 봉합용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파업 유도 의혹 사건으로 정치권에서 특별검사제를 도입할 움직임이 일자, 검찰총장 특명으로 구성된 검찰내 특별수사본부는 10일 간의 속전 속결 수사를 통해 조폐공사 파업이 진형구 전 대검 공안부장의 1인극이라고 발표했다. 진씨의 ‘취중 발언’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강희복 전 조폐공사 사장과 고교 선후배라는 특수 관계 때문에 개인적으로 개입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진씨가 취중에 발언했던 ‘김태정 검찰총장에게 보고 드렸다’라는 대목에 대해서도, 김태정 전 총장이 진형구씨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채 통상적인 보고를 받은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이같은 결론에 대해 시민단체·노동계·야권 등은 강하게 반발하며 ‘특별검사제를 통한 재수사’ 순서 밟기에 들어갔다. 그동안 이 사건에 의문이 집중되었던 검찰총장·법무부장관 등 수뇌부가 개입한 의혹과, 대검 공안부의 조직적 노동운동 길들이기 의혹, 다른 국가 기관의 개입 여부 등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숙제들은 조만간 도입되는 특검제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검찰은 스스로의 명예와 운명을 특별검사의 손에 넘겨주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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