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음악으로 정신질환 치료
  • 충남 공주·成耆英 기자 ()
  • 승인 1997.04.1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폐증·치매 등 정신 질환 치료에 개·음악 요법 각광
충남 공주시 반포면 봉곡리 산 1번지. 인가가 끊긴 산길 끝자락에 숨어 있다시피 한 공주 치료감호소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7백여 재소자가 복역하면서 치료를 받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 수용된 이들의 70~80%는 정신분열증 환자이며 마약과 알콜 중독자도 적지 않다. 10년 가까이 치료 감호를 받아 바깥 사회와 완전히 격리되다시피 한 환자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낯선 외지 손님들이 이 곳을 매주 한 번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용인 에버랜드를 운영하는 중앙개발의 사육팀이 ‘샌디’ ‘글로리’ ‘보너스’ 라는 이름을 가진 견공(犬公) 4~5마리를 데리고 정신분열증 환자들을 치료하러 방문하고 있는 것이다. 치료라야 별다른 것이 없다. 극심한 정신 분열이나 자폐 증상을 겪고 있는 환자들로 하여금 한 시간 정도씩 이 개들을 어루만지면서 시간을 보내도록 하는 것이다.

치료라기보다는 놀이에 가까운 이런 행위가 과연 이들에게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켰을까. 정신분열증 환자 특수 치료를 담당하는 박경선씨는 “굳은 모습밖에 볼 수 없던 이들의 표정에서 변화가 읽히기 시작했다”라고 말한다.

환자들의 반응도 괜찮은 편이다. 정신분열증으로 9년째 이곳에 수용되어 있는 김 아무개씨(38)는 “개들과 접촉하면서 나 자신이 상대방에 대해 너그러워졌다”라고 말한다. 김씨는 극심한 정신분열증으로 도배나 목공 등 감호소에서 실시하는 기초적인 작업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야 병실 안에서 봉투를 접는 것이 전부이다. 김씨가 하루 중 유일하게 기다리는 시간은 식사 시간. 그러나 요즈음은 기다리는 것이 또 하나 생겼다. 바로 앙증맞게 생긴 이 애완견들이다. 이곳에서 5년간 생활하면서 여간해서 굳은 표정을 풀지 않던 박 아무개씨(43)도 ‘글로리’를 안고서는 엷은 미소를 떠올리며 “마음이 편안해지고 대인관계가 좋아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의학적인 훈련을 받은 적도 없는 이 개들이 과연 정신분열증 환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치료감호소 홍성곤 특수치료과장(정신과 전문의)은 “만성 정신질환자는 일반적으로 감정이 극도로 위축되고 대인 관계를 완전히 상실하는데 동물에 대해서만은 사람에게보다 호의적일 수 있다”라고 분석한다. 대학에 음악 치료 과정 잇달아 개설

개뿐만이 아니다. 최근 들어 정신분열증이나 자폐증·치매 등 정신과적 질환 치료에 각종 특수 요법들이 도입되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통적으로 약물과 상담에 의존해 온 정신 질환 치료에서 새로운 시도라 할 만하다.

지난해부터 부쩍 사회적 관심을 끌기 시작한 음악 치료도 그러한 시도 중 하나이다. 숙명여대는 이번 학기부터 음악치료 대학원을 개설했다. 이 대학원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심리치료 과정말고도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위한 임상음악치료 과정이 개설되어 있다. 현재 남녀 대학원생 30명이 음악치료사를 꿈꾸며 공부하고 있다. 이화여대도 그동안 평생교육원과 언어청각임상센터 등에서 음악 치료를 가르쳐 온 경험을 기반으로 다음 학기부터 교육대학원에 음악치료 과정 신입생을 모집할 계획이다.

따지고 보면 음악 치료는 일반적인 질병 치료에 관한 한 어떤 치료 방법보다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원시 부족 사회에서부터 타악기를 연주하거나 큰 소리를 질러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요즈음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음악 치료는 주로 노인성 치매나 정서 장애, 자폐증, 약물 남용 등 정신과적 질환을 대상으로 한다. 특히 음악 치료는 노인성 정신 질환에 가장 좋은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완견이나 음악이 정신질환자들에게 얼마나 치료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 아직 입증된 바는 없다. 그러나 이 치료를 시행하고 있는 당사자들은 각종 임상 사례를 제시하며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95년 치료견 1마리를 분양받아 함께 생활한 정신분열증 환자 이효진군은 일과표에 맞춰 개와 함께 3개월간 규칙적으로 생활하면서, 그만두었던 학교를 다시 다닐 수 있을 만큼 치료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치매 환자나 자폐아를 대상으로 음악 요법을 실시했던 사람들도 환자들의 변화를 증언한다. 집중력이 증가하고, 노인성 치매 환자의 경우 잊었던 낱말이나 말을 되살린 사례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자폐아들을 보호하고 있는 하상장애인종합복지관 특수교사 김소영씨(25)는 “음악 치료를 1주일에 한 번씩 하면서부터 집중력이 없어 텔레비전조차 오래 보지 못했던 아이들이 탬버린을 계속 두드리는 등 전에 없던 집중력을 보이고 있다”라고 말한다.

외국에서는 이런 특수 치료가 이미 대중화 단계에 들어서 있다. 개들에게 특별한 훈련을 시키지 않고도 ‘앉아’ ‘일어서’ 정도의 명령을 알아 들을 수 있는 개이면 치료견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유럽 국가 중 가장 많은 9천여 마리가 치료견으로 공식 등록되어 있다. 일본에는 치료견 7천여 마리뿐만 아니라 고양이를 비롯한 다른 애완 동물들도 정신 질환 치료에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막 도입 단계인 우리나라는 중앙개발이 사육하는 치료견 6~7마리가 정신병원이나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개인에게 분양되어 있을 뿐이다.

일부 정신과 전문의들은 치료 효과를 검증하는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또 사회복지학자들도 특수 치료를 받고 있는 대상자들을 상대로 2년간 면접 조사를 벌여 오는 6월 말께 연구 보고서를 낸다는 계획이다. 이 결과가 나오면 특수 치료의 효과는 수치화까지도 가능할 전망이다.

치료 대상자들을 면접 조사한 김성천 교수(원광대·사회복지학)는 자폐증 환자뿐만이 아니라 문제를 일으키던 몇몇 청각장애인도 치료견과 함께 생활하면서 도벽과 불량기가 사라지고 책임감이 강해지는 등 뚜렷한 변화가 목격되었다며, 개가 자폐 등 정신 질환 치료의 매개체로 큰 가능성을 보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신질환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치료 효과가 나타나자 특수 치료 관계자들은 이 치료를 정식 의료 행위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 행위로 인정된다 해도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수의학이나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이 음악 치료를 할 경우 정신과 전문의들이 반발하고 나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련 전공자들은 그럴 가능성은 기우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최병철 교수(숙명여대·음악치료학)는 음악 치료가 장애인을 정상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장애인이 필요로 하는 행동을 습득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정신과 치료와는 상호보완적이라고 설명했다. 음악 치료를 정신 질환의 만병통치약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발상부터 ‘치료’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머지 않아 정신과 병원에서도 이런 특수 치료 광경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정신과 치료 도구는 우리 생활 주변에 널려 있는 셈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