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킬러’ 대검 중수부 전격 해부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7.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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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 중수부, 최고 사정기관으로 떠올라…97년엔 정치인 비위 사실도 캔다?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로 널리 알려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경향 각지의 지검과 지청 소속 15개 특별수사부를 지휘하는 이 기관은 비밀리에 고위 공직자와 경제계 인사의 비리를 추적하고 있다. 이 기관은 노씨 비자금 수사 외에도 96년 장관급 인사인 백원구 증권감독원장, 금융계 실력자인 이철수 제일은행장·손홍균 서울은행장의 비리를 포착해 구속함으로써 명성을 날린 바 있다. 흔히 ‘대검 중수부’라고 불리는 이 기관이 최고 사정기관이라는 무게와 권위를 얻게 된 것은 어떤 연유일까.

73년 1월 대검에 특별수사부가 설치됨으로써 발족한 이 기관은 81년 4월 중앙수사부로 개칭해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49년 제정된 검찰청법에 따라 중앙수사국(62년 수사국으로 개칭)이 설치된 바 있어, 그 연혁은 검찰 탄생 시점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이러한 연혁과 명성에도 불구하고 중수부 조직은 의외로 간단하다. 중수부장과 수사기획관, 중수 1·2·3 과장, 범죄정보관리과장 등 6명이 이 조직의 전 구성원이다. 여기에 중수부 소속 연구관 3명을 보태더라도 총인원이 9명밖에 안된다.

원칙으로 피의자에 대한 공소 제기는 지검과 지청 소속 검사만이 할 수 있다. 검찰총장·중수부장·수사기획관을 비롯한 대검의 모든 검사와 고등검찰청 소속 검사들에게는 공소권이 없다. 그러나 중수 1·2·3 과장은 서울지검 검사를 겸하고 있어 공소권을 행사할 수가 있다(사건에 따라서는 연구관들에게도 임시로 서울지검 검사 직을 부여한다). 중수부 힘의 근원은 수사권을 가진 과장검사가 3명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중수부는 가만히 있어도 각종 비리 정보가 흘러드는 정보의 보고이다. 청와대 등으로 들어온 진정서 중 내용이 심각하다고 판단된 것은 청와대 민정비서실 등을 거쳐 이곳으로 넘어온다. 지난해 7월 말 대검 중수부가 수사해 감사원으로 넘긴 육상 기동장비 방산업체 부당 이득 사건은 청와대로 들어온 진정서(투서)가 단서가 되었다고 한다.지난해 10월 말 터져나온 서울시 공무원과 시내 버스 업자간 유착 비리는 국무총리실이 정보를 입수해 중수부로 넘긴 경우였다. 내사에 들어간 중수부는 이 사건이 서울시에 국한된 점을 감안해 서울지검 특수3부로 다시 넘겼다. 서울지검 특수3부장은 바로 방산업체 부당 이득 사건을 수사한 중수 1과장 출신의 안대희 부장이라 자연스럽게 수사 이첩이 이루어졌다.

이철희·장영자 사건 수사는 졸작 중의 졸작

다른 부처, 특히 청와대 등 상급 기관이 수사해 보라고 보낸 것을 ‘하명(下命) 사건’이라고 한다. 상급 기관이 보낸 만큼 하명 사건에는 ‘반드시 죄를 입증하라’는 권력층의 의지가 투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수부가 무서운 것은 이러한 하명 사건 수사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명 사건 수사는 부담스럽고 또 졸속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중수부 관계자들의 말이다.

지금까지 중수부가 처리한 하명 사건 중 제일 큰 것으로는 이철희·장영자 사건이 꼽힌다. 이 사건은 언론이 이·장 부부가 전두환 대통령의 비호를 받으며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고 연속 보도함으로써 사회 문제가 된 경우였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대통령 쪽으로 비난이 쏠릴 수도 있다고 판단한 청와대는 중수부에 수사를 지시했다. 수사 착수 배경이 이러한 만큼 중수부는 이·장 부부에 대해서는 비리를 밝혀 기소하되, 청와대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검찰 수뇌부는 사정 수석을 비롯한 청와대 고위 인사를 수시로 만나 중요 사건 수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장 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당시 검찰 책임자들이 대검 청사(서울 서소문동) 인근 코리아나호텔이나 프라자호텔에서 청와대 고위 인사를 만나 수사 상황을 알리고 수사 방향을 의논했다고 말했다. 이 접촉을 통해 수사 상황을 꿰뚫게 된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를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흘려주곤 했다.

이런 정보는 대개 청와대에 유리한 것 일색이나, 새로운 정보인 만큼 언론은 크게 보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보도 중에는 중수부의 수사 방향과 구속 대상자를 암시하는 것도 있었다. 때문에 눈치 빠른 피조사자들은 증거를 인멸하거나 ‘왜 아무개는 빠지고 나만 억울하게 처벌받아야 하느냐’며 구명 운동을 펼쳤다. 이런 소동을 거치며 수사가 파행을 거듭하자 언론은 중수부가 애초 의도와 달리 축소 수사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당황한 것은 검찰 수뇌부였다. 마침내 검찰총장이 텔레비전에 나가 “축소 수사를 하지 않았다”라며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해명까지 했다. 이 수사를 지켜본 중수부의 한 관계자는 언론 보도를 좇아가다 중수부의 가랑이가 찢어진 졸작 중의 졸작이 이·장 사건 수사라고 혹평했다. 이후 ‘하명 사건 수사는 그 어떤 수사보다 보안에 철저해야 한다’는 경험칙이 생겼다고 한다. 안강민 검사장이 이끄는 현재의 대검 중수부에도 하명 사건은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런 탓인지 중수부는 방산업체 사건을 단 1명도 기소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하고 재빨리 감사원으로 넘겼다. 이 수사는 방산업체가 고의로 부품 가격을 올려 납품한다는 정보에서 시작된 것으로, 부당 이득 부분을 사기죄로 걸 수 있느냐가 수사의 요체였다. 그러나 기업체는 영리 추구가 목적이므로 원가 1원짜리 물건을 천만원에 팔았더라도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었다.

판례를 검토해 재판에서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중수부는 이 사건을 감사원에 넘겨 부당 이득 부분을 국고로 환수하도록 조처했다. 현재 감사원은 부당 이득 금액에 대한 조사를 거의 마무리했다. 그러나 방산업체들이 재료비에 포함되지 않은 접대비 등 간접 비용도 원가에 포함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어, 환수 조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감사원이 환수 조처를 취하면 기업체는 곧바로 재판을 청구할 예정인데 감사원이 이길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한다. 승산 없는 하명 사건을 교묘히 벗어던진 중수부. 이는 중수부가 과거와 달리 정권의 요구에 무조건 따르지 않는 증거라고 법조계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잘못 있으면 총리급 인사까지 구속

한국의 대형 비리는 재벌을 포함한 기업인과 정치인·고위 공직자를 축으로 한 3각 구조를 이루고 있다. 부패의 출발은 기업인이다. 탈세와 장부 조작 등의 방법으로 비자금을 마련한 기업인은 특혜를 바라고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 들에게 뇌물을 상납한다. 이러한 3각 비리는 금융실명제 이전에는 가명 통장을, 실명제 이후에는 차명 통장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은행장을 포함한 금융계 협조가 절대 필요하다. 노씨 비자금 사건 때 불구속 기소된 이원조 전 은행감독원장은 이러한 커넥션을 장악했던 대표적 인물이다. 전·노 씨와 오랫동안 친구 관계를 유지했던 이씨는 시중 은행장의 인사권을 장악하는 은행감독원장에 올라 세 꼭지점을 이어주는 ‘파이프 라인’(은행계)을 장악했던 것이다.

93년 문민 정부 출범 직후 함승희 중수부 연구관은 안영모 동화은행장 사건을 수사함으로써 이러한 커넥션에 최초로 칼을 댔다. 이 사건은 연임을 노린 안행장이 불법으로 조성한 비자금을 청와대를 비롯한 요로에 뿌리다가 덜미를 잡힌 경우였다. 이 수사에서 함검사는 안행장이 청와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현우 전 경호실장이 관리하던 노씨 비자금의 일부를 동화은행으로 유치한 사실을 포착했으나 수사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수사로 노씨 비자금의 존재가 알려져 서석재 총무처장관의 ‘4천억원설’ 발언 등을 통해 솔솔 냄새를 풍기다가, 95년 10월 박계동 의원이 신한은행에 예치된 것을 폭로함으로써 전모가 드러났다. 은행장은 3각 구조의 비리를 이어주는 역할과는 별도로, 대출 조건을 갖추지 못한 기업주에게 불법 대출해 주는 대가 등으로 적지 않은 커미션을 챙길 수도 있다. 그러나 6공 때까지 이러한 비리가 드러난 은행장은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대개 자진 사퇴 형식으로 ‘안전하게’ 물러났다. 정·경·관 연결에 적극 협조한 은행장을 법정에 세웠다가 정권 안보를 뒤흔들 수 있는 폭탄 진술을 하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동화은행 사건은 이런 관례를 깨고 은행장을 기소한 것이라 시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6공 시절 안행장과 관계를 가진 인사 중 문민 정부에서도 한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수사 중단을 요구했다”라고 함승희 검사(현재 변호사 개업)는 술회한 바 있다.

95년 5월 김성호 중수2과장(현 서울지검 특수 2부장)이 산업은행 총재 시절 거액의 커미션을 챙긴 이형구 당시 노동부장관을 구속 기소한 것도 중수부의 수사 영역을 넓힌 큰 사건이었다. 그때까지 검찰은 고위 공직자는 불가피할 경우 국장급까지만 기소하고 그 이상은 자진 사퇴시키는 것을 불문율로 삼아 왔었다. 장관급 인사까지도 사정 대상에 넣게 된 데 대해 한 인사는 “이장관 사건을 계기로 검찰은 비리 적발시 총리급 인사까지도 구속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되었다”라고 평가했다.

노씨 비자금 수사 검사로 유명한 문영호 현 중수 1과장은 96년에 제일은행장과 서울은행장을 기소함으로써 은행장 킬러로 소문이 났다. 문과장이 이철수 제일은행장의 비리 첩보를 입수한 것은 노씨 비자금 수사 때였다. 노씨 비자금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행장이 서울 평창동에 있는 고급 빌라를 계약했다가 취소한 사실을 발견했는데, 문과장은 이행장이 부정 대출한 대가로 받은 커미션으로 빌라를 구입하려다 노씨 비자금 수사로 시국이 혼란하자 이를 취소한 것이라고 추정했다. 노씨 사건 수사가 완료된 96년 문과장은 은밀히 이행장의 빌라 구입 자금원을 추적했으나 증거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대신 장장손 효산개발 회장 등이 부정 대출 대가로 커미션을 전달한 증거가 걸려들었다. 노련한 검사들은 ‘수사는 주어진 옷감만으로 옷을 짓는 재단(裁斷) 같다’고 말한다. 애초의 수사 단서에 연연하지 말고 확보한 증거만으로 기소해야 유죄 입증에 성공한다는 의미이다. 문과장 역시 이 원칙에 충실해, 빌라 대신 효산개발건으로 이행장을 기소했다.

인지 수사는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검찰(중수부와 특수부)과 은행감독원·증권감독원·보험감독원·공정거래위 같은 사정기관은 유사한 경제 비리를 추적하지만 중요 정보만은 절대로 공유하지 않는다. 때문에 다른 사정기관의 움직임에 대한 소문이 왕왕 중수부의 수사 단서로 이용되기도 한다. 손홍균 서울은행장 사건은 몇몇 기업이 서울은행으로부터 받은 대출에 문제가 있어 증권감독원의 감사가 있었다는 소문이 단서가 되었다. 이러한 소문이 나돈 데는 서울은행 노조가 손행장의 비리를 터뜨린 것도 한몫 했다.

증권가를 비롯한 경제계는 정보 유통이 매우 빠르다. 따라서 검찰이 시중 은행장을 내사한다면 곧 증권가 루머 형태로 유포된다. 손행장을 소환한 날 저녁 <한국일보>만이 경제계 소식을 듣고 검찰이 한 시중 은행장을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사실 입증에 자신이 없었던 듯 시내판에서는 삭제했다. 이만큼 문과장은 보안에 철저했다. 보안이 철저했다는 것은 반대로 피의자가 구명 운동을 펼 시간이 적었다는 의미이다. 박상길 현 중수2과장이 장관급인 백원구 증감원장을 기소한 것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수사는 기업을 공개하려면 증감원 관계자에게 뇌물을 제공해야 한다는 증권가 루머가 단서가 되었다. 박과장은 근래에 기업을 공개한 기업체 관계자를 불러 뇌물 제공 여부를 확인하고, 이어 비밀리에 증감원 실무자를 불러 사법 처리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이런 식으로 추적해 올라가 증감원장에게도 뇌물이 제공된 사실을 확인했다. 백원장 구속 사실이 보도된 날, 월드컵 공동 개최 확정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11 포인트 떨어졌다. 중수부가 움직이면 주가가 10 포인트 이상 하락한다는 속설이 또 한번 입증된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 사건과 이양호 전 국방부장관 사건은 야당이 비리를 터뜨림으로써 문제가 된 것으로, 피의자의 신분상 당연히 중수부에 배당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이 경우 정치권은 사전에 입수한 정보를 적절히 언론에 터뜨리므로, 이·장 사건처럼 중수부가 언론을 좇아가는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두 사건 모두 중수부는 조기에 상황을 반전시켰다. 수사 시간은 짧았지만 정치권과 언론이 확보한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확보함으로써 상황을 주도하게 된 것이다.정치인은 아직 난공불락

여기에는 안강민 중수부장의 언론 장악 능력이 큰 역할을 했다. 언론 브리핑을 담당한 안부장은 독특한 화술로 기자들을 제압했다. 외곽을 찌르는 엉뚱한 질문에는 “법 공부를 좀더 하고 물어보라”고 핀잔을 주고, 추측성 질문에는 ‘노 코멘트’로 일관했다. 때때로 언론이 추측성 보도로 치고 나가면 기자가 아닌 언론사 사주와 발행인을 상대로 과감히 항의했다. 이런 식으로 언론의 예봉을 꺾고 동시에 적절히 기사거리를 배포하면서 그는 상황을 주도해 갔다.

노씨 비자금 사건은 3각 비리의 한 축이자 대형 비리의 근원지인 재벌 총수를 수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중수부는 비자금 조성 과정에서의 불법성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고 단순히 뇌물 공여죄만 적용했다. 그나마 재벌 총수 전원이 2심에서 실형을 면제받음으로써 검찰 수사는 빛이 바랬다. 3각 비리 척결을 진정으로 바랐다면 중수부는 비자금 조성 과정에서 재벌의 탈세와 불법성 여부를 수사해 별건으로 기소했어야 했다.

3각 비리 중 아직도 난공불락인 것이 정치인 비리이다. 이성호 보건복지부장관 부인이 구속 기소된 안경사협회 사건에서처럼, 정치 자금이라는 명분만 내걸면 정치인들은 안전하게 돈을 받을 수 있다. 정치인의 금품 수수를 수사하지 않는 데 대해 중수부의 핵심 인사는 “정치 자금 문제는 공안부가 다뤄야 한다. 또 정치인은 특혜를 줄 수 있는 공직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들이 받은 돈을 뇌물이라고 판단할 근거가 적다”라고 변명했다.

중수부가 장·차관급 인사와 은행장을 수사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정을 기치로 한 문민 정부 등장과 관계가 있다. 이런 배경에서 노씨 비자금 사건이 발생해, 재벌 총수까지도 어설프게나마 수사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분야는 정치권이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라는 초대형 행사가 있다. 더구나 경기까지 나쁠 것으로 예상되어, 기업주로서는 특혜를 바라고 특정 후보에게 거액을 투자하는 정·경 유착 비리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대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김기수 검찰총장­문종수 청와대 민정수석­안강민 중수부장으로 이어지는 인맥이 과거와 달리 외풍 유입을 상당히 차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검의 한 인사는 특히 김총장이 대통령의 경남고 후배라는 애초 우려와 달리 청와대의 눈치를 별로 살피지 않고 사건을 판단해 수사를 매우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좋은 조건 속에서 중수부는 과연 정치권의 비리까지도 수사할 수 있을까. 긍정적인 답변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줄 때 중수부는 명실상부한 최고 사정기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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