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만화가 세대교체 활발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7.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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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시사만화 제3 세대 등장, 참신함·파격 선보여…창의적 형식·내용 개발이 과제
한국 신문에 시사 만화가 등장한 역사는 백 년에 가깝지만(1909년 <대한민보> 만화가 처음), 만화가의 세대 구분은 의외로 단순하다. 시사 만화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50년대에 활동을 시작한 김성환(<고바우 영감>)·안의섭(<두꺼비>)·정운경(<왈순 아지매>) ·윤영옥(<까투리>) 화백 등 이른바 제1 세대가 지금까지도 신문 연재 만화의 주축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제2 세대 등장은 80년대 후반 들어서야 이루어졌다. 박재동(<한겨레>)·김상택(<경향신문>) 화백이 이 세대의 쌍두마차 격이었다. ‘시사 만화의 새 영역을 개척했다’는 찬사를 나누어 가졌던 이들의 체제는,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해 박재동 화백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겠다고 선언하며 <한겨레>를 떠난 탓이다.

그 뒤를 새로 등장한 제3 세대 만화가들이 잇고 있다. <경향신문> 박순찬(28)·<문화일보> 장봉군(33)·<한겨레> 박시백(33)·<한국일보> 손문상(34) 씨가 그들이다. 이중 박순찬·손문상 씨는 <장도리>와 <강다리>라는 4단 만화, 박시백·장봉군 씨는 <한겨레 그림판>과 <문화만평>이라는 단컷 만평을 각각 연재하고 있다.

지난 1년간 <미디어 오늘>에 <시사 만화 읽기>를 고정 연재한 김종배씨는 “이들이 아직 이전 세대 만화가와 분명한 차별성을 보여 주고 있지는 못할지라도 보수 일색이던 시사 만화 지면에 생기 발랄함을 불어넣은 것만은 분명하다”라고 평가했다. 종군위안부 출신 강덕경 할머니의 영결식이 있던 지난 2월4일 <한국일보> <강다리>에 실린 만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 기존 4단 형식을 파괴하고 3단 형식으로 처리한 이 만화에서, 손문상씨는 새색시로 분한 강덕경 할머니가 신랑에게 업혀 있는 모습을 그렸다. ‘열여섯 순결한 처녀로 다시 태어나’라는 헌사와 ‘일본은 사죄하라’는 주인공 강다리의 분노도 곁들였다. 이 만화는 ‘모든 만화가 연일 한보 사태만 다루고 있는 상황에서 적절한 여론 환기’였다는 호평과 ‘너무 감상적’이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그러나 ‘예전의 <한국일보>라면 상상하기 힘든 파격’이라는 점에서는 대부분의 평가가 일치했다. <문화일보> 장봉군씨는 여기서 나아가 ‘본지를 거스르는 파격’을 보여주었다. 장씨는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가 이루어진 시점(12월26일)부터 여야 영수회담이 있은 이틀 뒤(1월23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날치기 정국을 소재로 한 만평을 연재(총 25회)해 언론계 안팎에서 화제를 모았다. 같은 기간 <문화일보>가 관련 내용의 사설을 실은 것은 여덟 차례. 그나마 새해 들어 국면 전환이 뚜렷해진 12일께까지는 ‘파업, 뉘에도 이롭지 못해’(1월7일)라는 제목의 사설이 유일했다.

이에 반해 장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국정 책임자의 독선과 파행적인 정국 운영을 물고늘어졌다. “야당은 잠이 많아서 안돼”“여당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세비 올려줘야 돼/이렇게 새벽부터 일하는데”. 12월26일 새벽 국회의사당에서 농지거리를 나누는 여당 의원을 풍자하는 것으로 시리즈를 시작한 장씨는, 영수회담 이후에도 “영장 집행 보류하고(대통령 맘이니까)/합법적 날치기 철회 곤란하고(대통령이 싫으니까)… 됐지?”라고 야당 대표들에게 되묻는 대통령의 모습을 희화화해 ‘내용은 변한 것이 없는 현실’을 꼬집었다. 이 시리즈로 장씨는 한국기자협회가 선정하는 ‘이 달의 기자상’(해설·논평 부문)을 받기도 했다.

이같은 파격이 가능한 배경으로는 이들 만화가의 연령대와 ‘출신 성분’을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이들은 젊다. 중앙 일간지 가운데 최연소 시사 만화가라는 박순찬씨를 포함해 이들 모두 30대 중반을 넘지 않는다. “도전 의식·실험 정신 더 보여줘야”

이들은 또한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일부는 운동권 출신이기도 하다. 87년 6월 민주화항쟁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 소식지와 <서대협(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신문>에 만평을 그렸던 것이 인연이 되어 만화가의 길로 들어섰다는 <한겨레> 박시백씨는, 고려대를 졸업한 뒤 노동 운동에 몸담았던 경력을 갖고 있다. 손문상씨 또한 추계예대 3학년 때 제적당한 뒤 수원 지역에서 한동안 민중미술운동에 몰두했었다. <한국일보>에 입사하기 직전까지 그는 진보적 언론 비평지인 <미디어 오늘>에서 만평을 그리기도 했다. 운동권은 아니었다는 <경향신문> 박순찬씨 또한 연세대 만화 동아리인 만화사랑 출신이다. 87년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군이 활동했다 해서 일반인에게까지 유명해진 그 동아리이다.

이러한 경력이 이들의 만화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는 않다. 나이답지 않게 그림 선이 깔끔하고 ‘남들 한 번 꼴 때 두 번 꼬는’ 반전으로 정운경 화백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를 받는 박순찬씨는 “주인공 장도리를 30대로 설정하기는 했지만 모든 세대·계층으로부터 공감을 끌어내는 만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손문상씨는 자기 만화 주인공 강다리를 30대 중반 회사원으로 직급은 과장 정도, 나이에 걸맞게 세상살이에 적응해 나가면서도 87년 6월 민주화 항쟁에 넥타이 부대로 참여해 세상을 바꾸었던 기억을 ‘훈장처럼’ 지니고 있는 건강한 소시민이라고 소개한다. 그것은 손씨 동년배의 보편적인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같은 소시민적 설정은 이들에게 뼈아픈 비판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우리 만화 발전을 위한 연대 모임’ 백정숙 사무국장은 “한국의 시사 만화에 가장 부족한 것이 도전 의식과 실험 정신인데 젊은 만화가들 작품 또한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라고 못박는다. 형식과 내용 모두 기존 시사 만화를 답습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형식 문제는 ‘자기 그림체가 없다’는 지적과 통한다. 젊은 시사 만화가들에게 ‘박재동 계열’‘김상택 계열’ 식 분류는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 이른바 박재동 계열로 분류되는 장봉군씨는 “만화를 공부하던 90년대 초만 해도 텍스트로 삼을 만한 국내 만화가가 박재동씨밖에 없었다”라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호소했다.

교육은 신문사 내부에서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 박순찬씨는 미술 기자로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4단 만화를 맡았다. 원래 극화를 그리던 박시백씨 또한 <한겨레> 시사 만화가 공모에 당선된 지 한 달 만에 <한겨레 그림판>을 맡았다. 이에 대해 이동수씨(전 <경인일보> 만화가)는 “보수 일간지들이 젊은 만화가를 발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같은 ‘급행’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결국 만화가와 독자 모두 피해자가 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돈을 내고 신문을 사 보는 소비자가 아마추어의 견습 기간을 ‘참아 줘야 할’ 의무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내용, 더 엄밀히 말해 소재와 풍자 방식을 모방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또한 ‘환경’에서부터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젊은 시사 만화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문민 정부 출범 이후 성역 앞에 ‘알아서 기는’ 신문사 풍토가 1차 제약 요건이라면, 현 단계 정치·사회 수준은 더 근본적인 제약 요건이라는 것이다.

젊은 만화가들이 가장 다루기 힘들었던 사안으로 지난해 한총련 사태와 무장 간첩 침투 사건을 꼽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다루고 싶었지만, 국민들의 뿌리 깊은 ‘레드 콤플렉스’, 매카시즘에 입각해 이를 부채질하는 신문 지면의 분위기가 엄존하는 한 두루뭉실한 방향으로 사안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 만화가는 말했다. 또 다른 만화가는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한국 시사 만화는 풍자의 한계를 영원히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3 세대 만화가의 성공 여부는 결국 우리 사회가 얼마만큼 성숙하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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