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은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다
  • 창원/진주·朴柄出 부산 주재기자 ()
  • 승인 2000.07.1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검찰, 경상대 <한국 사회의 이해> 사건 장상환·정진상 교수에 징역 2년 구형
지난 1994년은 한국 현대사가 한 장을 마감한 해였다. 그 해 7월8일 북한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다.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벌어진 예상 밖의 사태에 ‘문민 정부’는 북한 못지 않게 당황했다. 허둥대던 정부는 곧 이어 터진 조문 파동과 박 홍 서강대 총장(당시)의 주사파 발언 등을 길잡이로 삼았다. 이른바 ‘신 공안정국’이 시작된 것이다.

<한국 사회의 이해> 사건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벌어졌다. 경상대학교 교양 교재로 사용되던 책을 검찰이 이적 표현물이라고 규정해 대대적인 수사를 시작한 것이다. <시사저널>은 1994년 8월 사건의 내막을 상세히 보도한 바 있다.

그로부터 6년 후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 <한국 사회의 이해> 사건 결심 공판은 그래서 관심을 모았다. 보안법 개정이 공론화한 마당에 시점(始點)과 종점(終點)이 6년 간의 격변과 일치하는 이 사건을 다시 짚어보는 일은, 지금의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판은 지난 6월26일 창원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창원지검 공안부 김호철 검사는 국가보안법상의 이적 표현물 제작·배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경상대 장상환(49·사회학과)·정진상(42·경제학과) 교수에게 각각 징역 2년과 자격정지 2년을 구형했다.

김검사는 “남북간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하나 교재가 학문의 자유를 넘어 사회 질서와 체제를 위협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이같이 구형한다”라고 밝혀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실정법이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두 피고는 최후 진술에서 “이번 사건은 수구 세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일으킨 것이다. 사건 자체가 <한국 사회의 이해> 내용이 정확하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책에 쓴 대로 (문민 정부는) 학문과 사상의 자유라는 핵심적 기본권을 억압하는 ‘이완된 파시즘 체제’라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결심 공판까지 13차 심리에 6년 걸려

이번 재판은 길고 지루하게 진행되었다. 6월26일의 결심 공판이 13차 심리, 재판 기간만도 1994년 12월 기소된 후 결심까지 5년 6개월 넘게 끌었다. 그 기간에 피고인 신분으로 강단에 섰던 두 교수는 판결이 나오기 전에 ‘곱징역’을 산 것이나 다름없는 마음 고생을 해야 했다. 장교수는 1979년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이적 표현물 소지·탐독)에 연루되어 2년간 복역한 전력이 있다.

이들은 사건 이후 학내에서 먼저 시련을 맞았다. 학교측은 두 사람이 기소되자 즉시 직위를 해제했다. 한 달여 만에 재심을 통해 복직했지만, ‘한국 사회의 이해’ 강의는 폐지되었다. 장교수는 “심정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어 논문이나 교재 집필 등 저술에서 손을 떼다시피 했다. 연구자로서 생명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글 안쓰는 교수’의 참담함을 견디기가 무엇보다 어려웠다”라고 심정을 밝혔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재판 기간 내내 기가 죽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건이 나자 우선 각계로부터 대대적인 지원이 있었다. 두 사람에 대한 검찰 수사 시작과 함께 ‘학문·사상·표현의 자유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고, 학문을 검찰의 잣대로 재단하는 수사가 부당하다고 지적하는 각계의 성명이 수십 차례 발표되었다.

정교수는 최후 진술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면 주위 인물들이 접근을 피했던 과거와 달리 친구들이 성금을 모으고 시골 친지들조차 ‘선비가 할 말은 해야 한다’고 격려해, 분노·비애와 함께 사회과학도로서의 기쁨과 희망을 느낄 때가 많았다”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이해>의 이적성을 판가름할 핵심 쟁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책의 내용이 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북한의 사회주의에 동조하고 있는지 여부. 둘째는 마르크시즘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을 선동하고 있는지 여부이다. 이에 대해 한상진 교수(서울대·사회대)가 주목할 만한 감정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법원으로부터 △민주적 기본 질서를 부정하고 북한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쓰였는지 △학생들에게 북한에 동조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하게 하는 의식을 심어 줄 염려가 있는지 여부와 교재 내용 중 구체적 항목 51개에 대한 판단을 의뢰받은 한교수는 20여 쪽 분량의 감정서에서 각론을 상세히 분석한 후 총괄적인 감정 결과를 내놓았다.

한교수가 교재 내용에서 보안법과 관련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부분은 두어 군데에 불과하다. 1966년 통일혁명당 사건 기술에서 ‘이 운동은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서 대중에 의거한 운동은 아니었고, 1969년 대탄압으로 활동이 중단되고 말았다’라는 식의 표현은 ‘뒤이은 문장을 보면 통일혁명당을 미화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으나 모호한 문장이 오해할 소지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7월24일 선고 공판에 관심 쏠려

그밖에는 ‘조잡하고 왜곡된 현실 인식’을 지적하거나 ‘논리적으로 치밀하지 못한 경박한 진술이 대학 강좌의 교재로 쓰인 것을 개탄’하는 등 일부 표현을 혹평하기는 했으나, 대부분 ‘법이 개입할 문제를 안고 있지 않거나’ ‘자유민주주의와 학문의 자유에 부합’하고 적어도 ‘학문 영역 안에서 검증을 요하는 정도’라고 감정했다.

전체적으로 대학 교재로는 부적절한 면이 적지 않고 초급생들에게 편향된 효과를 심어 줄 것으로 우려되지만, 일정한 학문적 주제에 따라 개진된 내용이어서 자유민주적 질서를 부정하거나 사회주의 혁명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한교수의 평가이다.

그러나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두 피고는 정부를 참칭하고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조직된 반국가 단체인 북한 공산집단의 주장에 동조하여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에서 책을 기술하고, 수강생 9백50여 명에게 내용을 강의해 국가의 존립과 자유민주적 질서를 위태롭게 했다.’

두 교수에 대한 선고 공판은 7월24일에 열릴 예정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회담한 북측 정상을 ‘반국가 단체인 북한 공산집단의 수괴’로 볼 수 없으므로 국가보안법 개정은 불가피한 실정이다. 논의는 이제 보안법 개정을 지나 주적(主敵) 개념과 영토의 정의를 수정하는 문제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번 사건의 선고 공판 결과는 유·무죄에 관계없이 보안법 개폐의 촉매가 될 전망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