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부딪힌 황새의 날갯짓
  • 충북 청원·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1996.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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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원 교원대 부근에 고층 아파트 공사…황새 되살리기 물거품 위기
 
우리나라 들판에서 황새가 나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충북 청원군 한국교원대 인근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툼에서 찾을 수 있다. 해답은 신통치 않다. 학교 주변 환경을 보호하고 황새 서식지를 마련하려는 대학측과 사유재산권 행사를 주장하며 학교 정문 옆에 15층짜리 고층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려는 건설회사의 이해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원대 황새복원팀(팀장 박시룡 교수·생물교육과)은 국내에서 멸종된 황새를 되살리기 위해 올해 5월과 7월 두차례에 걸쳐 러시아 아무르산 황새 4마리를 들여와 교내 사육장에서 기르고 있다. 황새가 어느 정도 주위 환경에 적응하면 학교 주변에 방사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태암건설(대표 권정하)이 학교 정문 바로 옆에서부터 학교 안쪽으로 움푹 파고들어간 자리(충북 청원군 강내면 월탄리 90외 4필지)에 15층 고층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면서 이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원래 이 터는 교원대 교수 7명과 교직원 14명으로 구성된 주택조합이 전원 주택을 짓기 위해 소유하고 있다가 태암건설에 매각한 땅이었다. 올해 초 부지를 매입한 태암건설은 4∼10층, 7∼10층, 15층짜리 아파트를 각각 1동씩 건설하여 모두 4백36세대를 입주시킬 계획이다.

그런데 황새의 특성이 문제이다. 박시룡 교수는 “황새는 날개를 펴면 2.5m나 되는 큰 새이기 때문에 날아오르거나 착륙하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활주 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런데 15층 아파트가 서식지 부근에 건설되면 활주 공간이 작아져 인근 논에 서식하는 먹이들을 잡아 먹을 수 없게 된다”라고 말했다.

 
학계 연구 결과 교원대 인근은 황새 서식지로 국내에서 가장 적당한 지역으로 밝혀졌다. 교원대가 있는 충북 청원군이 과거 황새가 서식했던 지역인 데다, 황새의 생활 터전이 되는 습지를 조성할 만한 부지와 국내 최고의 황새 연구진이 확보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학측은 94년부터 20억원을 들여 학교 녹지 전체를 인공 습지로 조성하여 황새의 먹이가 되는 개구리·뱀·물고기를 방류할 계획을 세웠다. 또 황새가 오염에 매우 민감한 조류이기 때문에 학교 주변 농가에 유기 영농을 권장하고, 이를 위해 별도 지원책을 마련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인근에 아파트가 들어서기로 되어 국내 처음으로 시도되는 ‘황새 보금자리 만들기’가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교원대도 “교육환경권 침해” 반발

태암건설측도 이 아파트 건설에 회사 사운이 걸려 있어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태암건설이 영세한 중소 건설회사이다 보니 수백억원이 투자된 이 사업을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게다가 이미 공사는 아파트 1층을 올릴 정도로 진척되고 있다. 또 주택건설촉진법상 태암건설측 사업 계획에는 아무 흠이 없다. 올해 3월에 열린 청원군 건축심의위원회나 4월에 열린 청원군 군정조정위원회도 별 문제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태암건설측에 유리한 청원군의 유권 해석에 대해 교원대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학교측은 ‘교육환경권 침해’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준비를 하고 있다. 총학생회는 연일 격렬한 아파트 건설 반대 시위를 하기도 하고 교직원과 동문들을 중심으로 ‘땅 한평 사기’운동을 벌이고 있다. 땅 한평 사기 운동은 교수를 비롯한 교직원, 재학생, 동문을 대상으로 기금을 마련한 다음 그 돈으로 문제의 땅을 매입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황새는 충남 예산, 충남 진천과 음성 등지에서 서식하다가 71년 4월 충북 음성군 생극면 관성리 무수동에서 발견된 황새 한쌍 가운데 수컷이 밀렵꾼에게 사살되면서 멸종했다. 지금은 러시아 아무르 강 주변에 6백여 마리가 남아 멸종 위기 국제보호조로 보호되고 있으나, 황새들은 생존율에 비하여 사망률이 월등히 높아서 계속 그 수효가 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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