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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대상으로 떠오른 탄핵법

대통령 직무 정지·모호한 탄핵 사유·소수 의견 공개 여부 등 문제투성이

고제규 기자 ㅣ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4.05.18(Tue)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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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정국 63일째이던 5월14일. 헌법재판소(헌재)는 이른 아침부터 북새통이었다. 탄핵 찬반 지지자들의 1인 시위, 줄을 선 방청객, 취재진 등 1988년 헌재가 문을 연 이래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렸다.

헌재 재판관들은 경찰 6백명의 철통 경비 속에 평소보다 30분 일찍 출근했다. 8시25분, 주심을 맡은 주선회 재판관이 가장 먼저 출근했다. 주재판관은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 나온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권 성 김영일 김경일 김효종 송인준 전효숙 이상경 재판관은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도 한마디 답변 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8시53분, 마지막으로 도착한 윤영철 헌재 소장도 “재판정에서 모든 것을 말하겠다”라며 입을 다물었다.

오전 10시29분, 윤영철 소장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기각한다고 선고했다. 탄핵 심판은 끝났지만, 이번 심판 과정은 새로운 숙제를 남겼다. 설마 대통령을 탄핵할 일이 있겠냐며, 1948년 이후 명맥만 유지해온 탄핵 관련 법 조항의 허술함을 그대로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헌법(65조)을 비롯해 국회법(130~134조), 헌법재판소법(48조~54조) 등 엉성한 탄핵 관련 조항을 손질하자는 목소리가 법조계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대통령 노무현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었다” (3월12일 박관용 국회의장):헌법 제 65조3항에 따라 탄핵소추 의결서가 청와대에 도착한 순간, 노무현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되었다.

탄핵 소추 자체로 대통령 권한이 자동으로 정지되는 경우는 핀란드·칠레·멕시코 등만 인정한다. 탄핵 심판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이승우 교수(경원대 법대)에 따르면, 자동 직무 정지를 인정하는 나라도 그 규정이 아주 까다롭다. 핀란드는 ‘반역죄’ 혐의로 전체 의원 4분의 3 찬성으로 소추한 경우에 한해 탄핵 소추와 동시에 자동으로 권한을 정지시킨다. ‘탄핵 소추=직무 정지’ 조항은 탄핵이 정쟁의 도구로 전락할 경우 국정의 혼란을 반복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지난 4월19일 한국공법학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헌법학자들은 외국의 사례를 들어 대안을 제시했다. 프랑스처럼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판결 때까지 직무 정지를 미루거나, 독일처럼 연방헌법재판소로 하여금 직무 정지 가처분 여부를 한번 더 판단하게 하는 완충 장치를 두는 것이 합당하다는 지적이다.

“17대 국회가 개원하면 탄핵 소추를 철회할 수도 있다.” (3월17일 강금실 법무부장관):강금실 장관의 발언은 탄핵 충격파 이후 처음 번진 논쟁의 불씨였다. 탄핵 이틀 후부터 재야 법조인들 사이에는 강장관 발언과 비슷한 주장이 제기되었다.

헌법 65조 2항은 탄핵 소추 발의 규정만 있을 뿐 철회 규정은 없다. 독일은 의회 재적 의원 과반수의 찬성 또는 연방 참사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탄핵안을 철회할 수 있다고 명문화했다.

탄핵안 철회 논란뿐 아니라, 16대 국회가 끝나는 시점에 탄핵안이 소추된 것도 논란거리였다. 탄핵 소추 의결을 한 국회의 임기가 만료되고 새 국회가 개원할 경우 소추위원장 교체나 탄핵안 지속 여부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다. 이 모든 논란은 헌재가 17대 국회 개원 전에 판결하면서 비켜 갔다.

“직무 집행에 있어서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면 탄핵이다. 탄핵은 국회 고유 권한이고, 헌재는 적합성만 심사하면 된다.” (4월2일 한병채 소추인측 대리인):헌법재판관을 지낸 한병채 변호사는 1948년부터 유지된 ‘직무 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때 탄핵한다’는 지나치게 모호하게 규정한 탄핵 사유를 파고든 것이다.

탄핵 사유를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설정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모든 행위가 탄핵 소추 대상이 된다. 헌재는 이번에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기각하면서 중대한 법 위반의 경우라는 판례를 남겼다. 그러나 판결에서 기각이나 각하가 되더라도,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면 자동으로 권한 행사가 정지되기 때문에, 소추 사유를 정확하게 명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프랑스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대역죄’로 한정하고 있다.

“다수 의견과 다른 의견도 표시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었다.”(5월14일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소수 의견 미공개는 새로운 논란거리를 만들었다. 한 재야 변호사는 “소수 의견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헌재 판결의 가장 큰 흠으로, 정치적인 판결이었다”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법 34조 1항은 헌재 심판의 변론과 결정은 공개하지만, 평의 과정은 공개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34조 3항에 위헌 심판, 권한쟁의 심판, 헌법소원 심판에 대해서만 예외 규정을 두어, 재판관의 개별 의견을 결정문에 넣게 했다. 탄핵 심판에 대해서는 법률 규정이 따로 없다는 것이 헌재측의 설명이다.

소수 의견이 공개되지 않으면서, 인용과 기각 결정을 내린 재판관 수가 7 대 2니 6 대 3이니 추측이 나돌면서 새로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나치게 엄격한 법 해석을 내린 헌재 스스로 법 개정의 필요성을 인정한 대목이다. 선고 다음날 윤영철 헌재 소장은 “헌법재판소법은 국회에서 개정해야 하지만, 소장 권한으로 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 규칙은 손질하겠다”라고 말했다.

헌재 밖에서도 탄핵심판제도를 개선하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5월19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국회 소회의실에서 ‘탄핵 제도 개선을 위한 입법청원 토론회’를 열었다. 발제를 맡은 민변 소속 조영선 변호사는 “탄핵무용론까지 거론될 만큼, 크게는 헌법부터 작게는 헌법재판소 규칙까지 탄핵 관련 법이 허점투성이다”라고 말했다. 민변뿐 아니라 한국공법학회도 탄핵 법 정비에 대한 공론화 작업을 펼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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