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시위 불지른 특수 고교 내신 제도
  • 丁喜相 기자 ()
  • 승인 1997.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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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고 등, 상대 평가로 불이익 커 집단 전학·항의 시위 파문
서울 대원외국어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아들을 둔 학부모 김향희씨(46)는 올 여름을 눈물 속에 보내고 있다. 평생 흘린 눈물보다 지난 두 달 동안 흘린 눈물이 더 많았다는 김씨에게 고통의 뿌리가 된 것은 아들 교육 문제이다. 지난해 대원외고에 입학한 김씨의 아들은 그동안 몇 차례 치른 모의 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줄곧 3백50점대를 기록했다. 일반 고교에서라면 전교 수석을 할 정도의 점수다. 그러나 대원외고에서는 백명 중 40등 수준이다.

문제는 교육부가 대학 입시와 관련해 당초 약속과 달리 각 대학이 내신 성적 반영 비율을 높이되 상대 평가를 채택하도록 유도한 데서 발생했다. 교육부는 95년 5월 교육 개혁 조처의 하나로 대입 내신 반영률을 높이고, 평가 방법도 상대 평가에서 절대 평가로 전환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 뒤 평가 기구가 설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행 시기를 2000년 이후로 늦추었다. 당초 교육부 약속을 믿고 선발 고교를 택했던 김씨의 아들은 제도 변화로 인해 내년 대입 시험에서 수능 점수 3백50점을 얻더라도 일반 고등학교 3백10점대 학생과 같은 평가를 받게 된다. 상대 평가 중심의 내신 성적에서 엄청난 점수를 깎이고 들어가는 탓이다.

이런 불안을 견디다 못한 김씨 가족은 올 봄 아들을 아버지가 파견 근무 중인 광주시의 한 일반 고교로 전학시켰다. 그러나 아들은 그곳에서 적응하지 못했다. 전학 간 학교 급우들이 연일 ‘비겁하다’ ‘야비한 놈’이라며 손가락질해댔고, 심지어 화장실로 불러내 폭행하는 일까지 있었다. 극심한 고립감과 집단 괴롭힘에 시달리던 아들은 자살하고 싶다는 말까지 내뱉기에 이르렀다. 결국 김씨 가족은 눈물을 머금고 두 달 만에 아들을 원래 다니던 학교로 다시 전학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을 눈물로 보냈던 김씨는 이후 팔을 걷어붙이고 교육부를 상대로 해 힘겨운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처럼 자녀 교육 문제로 한을 품은 학부모들의 절규가 교육 현장 한구석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전국 25개 비평준화 고교(주로 지방 명문 학교 중심) 학부모 3만여 명과 전국 31개 특수 목적고(과학고·외국어고 중심) 학부모 2만여 명 등 5만여 학부모가 현행 대학 입시 제도로 불이익을 받게 되었다며 교육부를 상대로 집단 행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요구는 교육부가 당초 약속한 입시 제도를 이행하라는 것이다. 올해 당장 대입 시험을 치르는 3학년의 경우 고교간 실력차를 인정해 대입 내신 반영 때 ‘학교 내신’ 또는 ‘수능 성적 석차 백분율에 따른 비교 내신’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이다.
또 1~2학년의 경우에는 당초 교육부가 약속한 절대 평가 대상에 포함시키라고 요구한다. 절대 평가 실시 약속을 믿고 특수 목적고 또는 선발 고교에 입학했는데 이제 와서 상대 평가로 인한 내신 불이익을 감수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교육부 “내신 문제는 대학이 알아서 할 일”

이같은 요구 조건을 내건 학부모들의 집단 행동은 올 봄부터 본격화했다. 지난 6월24일에는 전국 비평준화 고교생 2만5천여 명이 집단 전학원을 냈다. 교육부는 당시 전학 업무가 각 시·도 교육청 소관이라며 이를 반려했다. 이어 학부모들은 국회에 청원서를 내고, 교육부 청사 앞에서 1주일간 집단 농성을 했다.

이와 별도로 학부모 6명이 헌법재판소에 교육부의 종합생활기록부 개선 지침이 위헌이라며 헌법 소원도 냈다. 이 헌법 소원은 7월17일 기각되었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개의치 않고 7월29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여는가 하면 집단 전학을 밀어붙이겠다고 나섰다. 이들은 교육부가 문제 해결을 계속 외면할 경우 2학기 들어서는 집단 등교 거부까지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에 대한 교육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현행 대입 제도는 내신 성적 반영 방법을 대학 자율에 맡기고 있기 때문에 이들만을 위한 대책을 따로 수립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교육부 중등장학관실의 한 관계자는 “내신 불이익 문제는 각 대학에다 말할 성질의 것이다. 집단 전학원도 각 시·도 교육청 주관 아래 학교장 재량으로 처리할 일이므로 교육부가 간여할 처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교육부는 한마디로 이들의 요구를 `집단이기주의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학부모 집단과 교육부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전국 외국어고 학부모연합회’(회장 박영숙)와 ‘전국 25개 비평준화 고교 학부모연합회’(회장 심재종)는 교육부가 오는 10월까지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집단 자퇴하겠다는 배수진을 쳐놓고 있다. 앉아서 불이익을 당하느니 모두 자퇴한 뒤 내년 8월의 대입 검정 시험에 응시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같은 ‘교육 파탄’ 상황을 막을 책임이 교육부에 있다면서 파상 공세를 펴고 있다.
그러나 이미 일선 고교에서는 혼란과 교육 파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교육부의 대입 정책에 불안을 느낀 일부 지방 명문 고교 및 외국어고 학생들은 이미 상당수가 평준화 고교로 전학하거나 자퇴했다. 이같은 혼란상에 대해 전국 외국어고 학부모연합회 박영숙 회장은 “현재 서울의 각 외국어고는 학교마다 평균 50여 명씩 일반 고교로 전학했다. 또 대원외고 영어과 한 남학생은 수능 모의고사 전국 1등을 기록하고도 대입 내신이 불안해 이번에 자퇴했다”라고 전한다. 이들은 집단 전학을 선호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전학할 경우 고립되거나 폭행당하고 손가락질을 받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대원외고의 경우 개별 전학을 한 학생 가운데 6명이 한두 달 만에 다시 되돌아왔다고 한다.

집단 전학에 기존 학생 반발

집단 전학에도 문제는 있다. 일반 고교에 재학하는 학생과 학부모 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 예로 한영외고와 대원외고에서는 올해 초 여학생 30명이 숙명여고로 전학했다. 그러자 숙명여고에서 줄곧 전교 수석을 차지하던 학생이 졸지에 전교 31등으로 밀려나 버렸다. 이번에는 기존 재학생 학부모들이 들고일어나 학교 당국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과학 고교의 경우는 일반 고교와 교육 커리큘럼이 달라 전학을 택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때문에 과학고 학생들은 교육부의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오는 10월 집단 자퇴를 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내년 8월에 있을 대입 검정 시험 응시 자격을 얻으려면 최소한 오는 10월 말까지는 자퇴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특수 목적고와 상황이 비슷한 비평준화 지역 명문 고교의 경우는 집단 전학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평준화 지역인 6대 도시 일반 고교로 전학하려면 온 가족이 주거를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비평준화 고교 학부모연합회 심재종 회장은 “전국 10만여 학부모들을 규합해 앞으로 서울에서 연일 파상적인 집회를 열 계획이다”라고 밝힌다.

결국 지금처럼 학부모와 교육부가 서로 평행선을 달리는 한, 대학 입시 제도를 둘러싼 교육 현장의 파열음은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사태는 지난 17년간 평준화 교육과 비평준화 교육을 공존시켜온 고등학교 교육 정책의 이중성이 파국에 직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불행한 사실은 유례 없는 교육 파괴 현상을 눈앞에 두고도 양자 간의 대립을 조정하려는 노력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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