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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진단·치료, 겁난다

지나치게 사용, 발생 장치 낡아…안전 관리 허술해 국민 보건 위협

朴晟濬 기자 ㅣ 승인 1995.12.14(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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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방호에 관한 한 국제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기구인 국제방사선방어위원회(ICRP)는 77년 방사선을 다룰 때 지켜야 할 원칙 세 가지를 정해 발표했다. 이른바 ICRP 26이다. 이 원칙의 제1항은 ‘방사선 피폭에 관련한 어떠한 행위도 (그 행위가)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 주지 않으면 행할 수 없다’는 이른바 ‘피폭의 정당화 원칙’이다. 제2항은‘특정한 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방사선 피폭량은 가능한 한 낮게 유지되어야 한다’는 ‘방어의 최적화’ 원칙이다. 마지막은 개인에 대한 방사선 피폭 선량은 국제방사선방어위원회가 권고하는 한도를 초과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국제방사선방어위원회가 이처럼 엄격한 원칙을 정한 이유는 간단하다. 방사선은 아무리 적은 양을 쐬더라도 각종 암과 유전적 질환을 유발하는 등 사람에게 치명적 해를 입힐 위험성이 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이런 까닭에 핵실험을 할 때 생기는 낙진과 원자력 발전 시설은 물론, 심지어 텔레비전·도자기·화재 경보기 따위에서 발생하는 모든 인공 방사선은 국내에서도 엄격한 규제 대상이 되어 왔다.

의료기관마다 사용량 들쭉날쭉

하지만 국내에서는 유독 예외로 인정되어온 분야가 있다. 방사선 방호 원칙을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철저히 지켜야 함에도 그와 정반대 상태로 방치되어 온 의료용 방사선 분야가 바로 그것이다.

진단과 치료에 두루 쓰이는 의료용 방사선 장치에는 엑스선·컴퓨터단층촬영(CT) 장치를 비롯한 진단용 엑스선 장치와, 최근 첨단 의술의 총아로 떠오른 사이클로트론·감마나이프·선형 가속기·방사성 동위원소 발생 장치를 아우르는 치료용 방사선 장치 등 두 분야가 있다. 문제는 진단용이든 치료용이든 의료용 방사선의 대중화 추세가 위험 수준에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10월 한양대 부설 방사선종합연구소가 조사·발표한 바에 따르면, 95년 1월 현재 방사선을 이용하는 의료기관 수는 2만3천9백60개소에 이른다. 같은 시기에 조사한 비의료 분야의 방사선 이용 기관 수는 8백84개소이다. 국립보건원이 최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85년 국내 병·의원의 진단 엑스선 촬영 건수는 1천9백72만건을 기록했다. 이와 별도로 같은 해 치과 분야에서만 행한 엑스선 촬영 건수는 모두 5백50만건. 이미 10년 전에 국민 두 사람 중 한 사람 이상이 일반 질병이나 치과 계통 질병을 진단 받기 위해 해마다 한 번씩 엑스선을 쐰 셈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국내에서 의료용 방사선은 줄곧 직접 규제의 ‘변방’에 머물러 왔다. 이유는 단 하나, 의료용 방사선이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매우 전문적이고 특수한 일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국제방사선방어위원회 등 방사선 관련 국제 기구조차 방사선 진료에 대해 각종 기술적 지침을 마련해 내놓으면서도, 이를 세계 각국이 준수하도록 강제하지 못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한국은 최근에 와서야 70년대에 작성된 ‘낡아빠진’ ICRP 26을 기준으로 규제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최근에야 공개된 자료로서 역시 86년 국립보건원이 진단용 엑스선 장치를 사용하는 전국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방사선 조사(照射) 양 실태를 연구한 결과에는 두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이 들어 있다. 국내 의료기관이 미국·일본 등 선진국 의료기관에 비해 방사선을 환자에 훨씬 많이 조사하고 있으며, 똑같은 부위에 똑같은 진단 목적으로 방사선을 사용하면서도 실제로 사용하는 방사선 양은 의료기관에 따라 들쭉날쭉하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골반 부위를 엑스선 촬영할 때 방사선 조사량이 국공립 병원·대학 병원 등 종합 병원의 평균은 5.25mGy(밀리그레이)인 반면 개인 의원 평균은 6.91mGy였다. 당시 국립보건원이 조사한 의료기관 수는 병·의원, 보건소를 포함해 모두 9천2백35개소였다. 국립보건원 방사선표준부 이해룡 과장은 “이 분야에 관한 조사는 86년이 마지막이었지만 상황은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방사선 관리 장치는 의사의 양심뿐

병원마다 조사량이 제각각인 것 못지 않게 대부분 노후한 방사선 장치를 사용하는 점도 큰 문제이다. 지난해 2월 감사원은 보건복지부 감사에서 주요 대학 병원에 설치된 진단 엑스선 발생 장치가 낡아 사진 촬영에 필요한 방사선 양을 초과 조사할 위험이 있는데도 장비를 수리·보완 또는 교체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도록 방치해온 사실을 지적했다. 감사원 감사는 90년에 있었던 국립보건원의 실태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 것이다. 국립보건원 조사에서는 전국 26개 의과대학 부속 병원에서 사용하는 진단 방사선 발생 장치 91대 가운데 89대가 노후하거나 성능 기준이 맞지 않은 장비로 드러났다. 연세대 의대 치료방사선과 추성실 박사(한국의학물리학회 회장)는 “이같은 현상은 개인 의원에서 훨씬 더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의료용 방사선도 환자라는 손님에게 판매하는 일종의 상품인 만큼 품질 관리 차원에서 안전 관리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의료용 방사선 발생 장치나 환자에 대한 조사 양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장치는 ‘의사의 양심’뿐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방사선 장치에 대한 신고 의무 조항을 주요 골자로 한 ‘진단용 방사선 발생 장치의 안전 관리에 관한 규칙’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규칙에 의해 지금까지 이루어진 성과는 전국의 의료기관에서 써온 방사선 발생 장치, 그것도 진단용 장치의 설치 현황에 대해서만 실태 파악이 이루어졌다. 이재기 교수(한양대·원자력공학)는 이 때문에 의료용 방사선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방사선 조사에 따른 각 부위의 위험성(위해도)이 어느 정도인지부터 과학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각종 법률의 관련 조항을 정비하거나 아예 선진 외국처럼 방사선방어위원회와 같은 단일 기관을 설치·운영하자고 제안한다. 현재 의료용 방사선에 관한 각종 규정은 원자력법과 의료법 등에 흩어져 있어 효과적으로 관리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의료용 방사선이 국내 의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해 왔음은 자타가 공인한다. 그러나 방사선 사용의 위험성에 대한 의료계의 인식과 그에 대한 대책은 개발도상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방사선의 안전한 관리’에 눈을 돌려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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