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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에 취직하기’ 문턱 낮아졌다

유엔에 취직하는 법/‘서울 공채 시험’ 등 기회 열려

신호철 기자 ㅣ eco@sisapress.com | 승인 2004.06.01(Tue)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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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원씨는 여권이 2개다. 하나는 대한민국 여권이고 다른 하나는 Laissez-Passer라고 불리는 유엔 여권이다. 그는 전세계 1백95개국에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고, 외교관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유엔 산하 기구인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아태경제사회위·ESCAP)에서 일하기 때문에 얻는 ‘특권’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의 국익 이전에 세계시민사회의 공익에 우선해 복무할 것을 요구받는다.

1만5천명에 이르는 유엔 직원은 (유엔은 세계 정부라는 말은 안 쓰려고 애쓰지만) ‘세계 정부 공무원’이라고 불린다. 대부분 박사 학위를 가지고 3개 이상의 외국어를 구사할 줄 알며, 인류 전체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도 높다.

외교부의 JPO 제도 이용하라

최근 국내에서도 유엔 직원을 꿈꾸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유엔 취직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unitednations) 회원은 1만3천명에 이른다. 유엔에서 일하는 것이 꿈(고민정)이라고 하는 고등학생부터 ‘전부터 계속 꾸어온 꿈을 현실로 만들고 싶어서’(박승재)라는 사람까지 소망은 다양하고 간절하다. 외교부 관계자는 “농담 삼아 유엔 학원을 차리면 떼돈 벌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문의가 많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유엔에 취직하기는 쉽지 않다.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유엔 직원이 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 첫 번째는 자리가 비었을 때(공석) 지원서를 내는 것이다. 뉴욕 사무국 같은 곳에 공석이 나면 전세계에서 수천 명이 지원한다. 하지만 이 경우는 대개 내부 직원이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연줄과 배경’ 없이 진입하기란 쉽지 않다.
두 번째는 시험이다. 외교부는 지난 5월15일 유엔 국가별경쟁시험(NCE)을 유치했다고 발표했다. 2005년 2월에 서울과 뉴욕에서 동시에 공채 시험을 치른다는 것이다. 유엔은 전체 직원 1만5천명 가운데 약 2천5백명을 국가별경쟁시험으로 뽑는다. 유엔 행정고시인 셈이다. 이 시험을 한국에서 치르게 된 것은 유엔에 한국인 직원이 적정 수준보다 부족하기 때문이다. 유엔은 국가별 분담금 등을 고려해 각국의 적정 쿼터를 계산하는데, 한국 직원 수가 부족해 앞으로 4년 연속 서울에서 국가별경쟁시험을 치르게 된다. 응시 자격은 1973년 1월1일 이후 출생한 대학 졸업자다.

모집 인원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응시자의 성적에 따라 달라진다. 채점은 뉴욕에 있는 유엔 사무국에서 한다. 아태경제사회위에서 일하는 최대원씨는 국가별경쟁시험을 거쳐 유엔에 채용된 경우다. 그의 직급은 현재 P5로 실무진인 P급(P-1~P-5) 가운데 가장 높다. 그는 “똑똑한 한국 인재들이 이 시험에 많이 응해주길 바란다. 국제 기구에 한국인 인력이 너무 적다. 선배가 없으면 수시 모집을 통해 정직원이 되기가 무척 힘들기 때문에 국가별경쟁시험은 아주 좋은 기회다”라고 권했다.

국가별경쟁시험 기출 문제는 비공개이며 예시 문제만 유엔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 1차는 필기 시험(일반/전공)이며, 2차는 2005년 하반기 뉴욕에서 인터뷰 시험을 본다.

2002년 국가별경쟁시험에 응시한 노수미씨(32)는 “1차 일반 시험에 잘 대처하려면 그해 시사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2002년은 동 티모르가 이슈였는데, 그해 문제가 ‘유엔이 개입해 자주 국가가 된 다섯 나라를 쓰시오. 이 과정에서 유엔이 행한 역할을 평가하시오’였다”라고 말했다. ‘유엔 산하 기관 중 노벨상을 수상한 다섯 기관을 쓰시오’라든지 ‘국가마다 상이한 낙태 정책에 대해 논평하시오’ 같은 문제도 있었다. 2002년 12월 합격 통보를 받은 노수미씨는 올해 발령을 받고 6월 뉴욕 사무국으로 떠날 예정이다.

국가별경쟁시험 외에 유엔에 진출할 수 있는 방법이 또 하나 있다. 외교부의 국제기구초급전문가(JPO) 제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국제기구초급전문가는 한국 외교부가 선발해 유엔에 파견하는 수습 직원이다. 경비를 전액 한국이 부담하는 대신 유엔 정직원과 똑같은 대우(P-2)를 받고 똑같은 업무를 맡는다. 파견 기간은 2년이며 시험은 주로 외국어 능력을 본다. 외교부 국제연합과 조현우 서기관은 “인류에 대한 봉사와 외교 협력 강화를 위해 국제기구초급전문가를 현재 7명에서 앞으로 15명으로 늘릴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국제기구초급전문가는 해마다 선발 시험을 치러 뽑는다. 특이한 것은 여성 지원자가 많다는 것. 지원자 2백30명 가운데 90%가 여성이었다.

여성부에서 근무하는 이혜경 사무관(40)은 국제기구초급전문가 1기 출신이다. 1995년부터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일했고 3년 가량 유엔 사무국에 있었다. 이씨는 “유엔에서 일한다는 것은 국제 공인(公人)이 되는 것이다. 비록 도전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유엔보다 더 도덕적 명분을 갖춘 국제 기구는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올해 8월 유엔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현재 유엔에 진출한 한국인 가운데 가장 높은 사람은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과 김학수 아태경제사회위 사무총장이다. 외교부 조현우 서기관은 “한국인의 유엔 진출은 국가 위상을 높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한국과 관련한 정책 결정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원칙적으로 유엔은 출신 국가의 이해 관계와 무관하게 업무에 임할 것을 요구한다. 유엔에 돌아갈 이혜경씨에게 “한국의 국익과 유엔의 이해가 충돌할 때는 어느 쪽 손을 들 것이냐?”라고 물었다. 그녀는 “유엔에서는 그런 딜레마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직원을 차단 조처한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유엔개발계획의 두만강 개발 계획에 참여하고 있었으나 북한과의 이해 관계 때문에 도중에 다른 곳으로 옮겼다.

외교부 관계자는 “공식으로 그들이 한국을 돕지 못한다는 것은 맞다. 하지만 오해를 막는 의사 소통의 통로는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유엔 사무국 서류 전형을 통과해 후보 명단에 오른 한국인 대상자에 한해 채용을 권장하는 외교적 로비를 하고 있다.

유엔 직원이 되면 마치 외국계 회사가 그렇듯이 서양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 연봉은 미혼 신입(P-1의 1호봉)의 경우 3만2천 달러(약 3천8백만원), 기혼 사원(P-5의 13호봉)의 경우 9만1천 달러(약 1억1천만원) 정도다. 이것은 세금을 뗀 기본급으로 여기에 각종 수당이 따로 지급된다. 노동 강도는 기업에 비해 낮은 편이다. 지난해 유엔에서 두 달 동안 인턴으로 일했던 강진수씨(27)는 “대체로 오후 5시면 퇴근하며 6시 이후에 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늦게까지 일하면 무능하다는 평을 듣는다”라고 말했다.

유엔개발계획에서 일했던 이혜경씨는 “국제 기구는 비정부기구(NGO)와 다르다. 휴머니즘으로 똘똘 뭉친 시민단체라고 생각하고 지원하면 오산이다. 여느 회사와 마찬가지로 관료적인 부분도 있다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라고 충고했다. 영어는 기본이고, 유엔 공용 제2 외국어를 하나쯤은 해두어야 한다는 것이 유엔 전·현직 직원의 공통적인 당부 사항이다. 유엔에서 한국 직원은 ‘머리는 좋은데 말이 짧다’는 평을 듣고 있다. 유엔 공용어는 영어 외에 프랑스어·스페인어·러시아어·중국어다.

진급은 쉽지 않아서 근무 연수가 찼다고 해서 자동 승진하는 일은 없다. 마치 입사하는 것처럼 공석이 난 자리에 승진 지원서를 내고 심사를 받아야 한다.

유엔 직원들에게도 고충이 있다. 강진수씨는 “유엔에서 만난 싱글 직원들은 ‘나는 돈도 있지만 나를 따라올 남자가 없어 결혼이 힘들다’며 걱정하곤 했다. 미혼 직원이 많고 이혼도 잦다”라고 덧붙였다. 전세계를 무대로 하는 기관에 근무하는 직원의 고충이다. 유엔에서는 최근 이런 문제 때문에 내부 결혼을 장려하고 지역 파견 때 동반 근무를 도와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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