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나 마나한 환경 방사능 감시 체계
  • 金恩男 기자 ()
  • 승인 1995.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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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 시설 관리 엉망, 백령도에선 이상 징후 알고도 묵살…자동감시망 구축 시급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처음 알린 것은 러시아(옛 소련)가 아니었다. 86년 4월26일 새벽 사고가 터지자 러시아 정부는 사고와 관련된 모든 보도를 통제했다. 그런데 며칠 후 스웨덴의 한 지방 방사능측정소가 환경 방사능 수치가 갑자기 치솟은 것을 발견했다. 측정소측은 곧 정밀 핵종 분석에 들어갔고, 바람의 방향을 추적한 결과 ‘가공할 만한 인류 최대의 참사’의 전모가 드러났다. 환경 방사능 감시의 위력이 확인된 것이다.

원자력 시설 사업자의 자체 감시와는 별도로 정부 차원에서 수행하는 환경 방사능 감시는 자국내 원전 사고뿐 아니라 인근 국가에서 자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사능 사고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우리 정부도 이를 감안해 65년부터 전국 11개 지방에 환경 방사능측정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측정소가 과연 제 구실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잡초에 파묻힌 측정소, 기구도 파손

군산대학교 안에 자리잡은 전북 지방 방사능측정소. 야산과 후생관 사이에 자리잡은 이 측정소는 말이 측정소이지 쓰러지기 직전의 폐가처럼 을씨년스런 모습이다. 잡초와 칡넝쿨에 가려 측정기구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고, 출입구 열쇠는 심하게 녹슬어 있다. 하루 두 번씩 기계를 점검해 방사능 측정치를 기록하게 돼 있는 규정이 무색할 지경이다. 그나마 측정소로 이어지는 전기선은 끊겨 있다. 학교 공사 때문이다.

제주대학교 안에 있는 제주지방 방사능측정소. 잡초가 무성해 사람이 다가가자 꿩 3마리가 푸드득 날아간다. 빗물을 채집하는 통은 보이지 않고, 낙진을 받는 통에는 물이 넘쳐 흐른다. 낙진을 효율적으로 채집하기 위해서는 일정량 이상의 빗물이 괴면 배출구로 물을 흘려 보내게 돼 있다. 배출구 꼭지를 잠가 놓아 물이 넘친 것이다.

다른 방사능측정소도 사정은 비슷하다. 평균 7평 정도의 공간에 설치돼 있는 측정소에는 대기중 방사능 양을 측정할 수 있는 공간감마선 측정기를 비롯해 빗물·낙진·공기 부유진 시료를 채집할 수 있는 기구가 함께 놓여 있다. 백령도·울릉도 간이측정소를 제외한 나머지 9개 측정소는 이들 시료를 분석할 분석실을 갖추고 있다.

문제는 대기중 방사능 양을 측정하기 위해 탁 트인 곳에 있어야 할 측정소가 건물 틈바구니에 끼여 있다거나(한양대·강원대·군산대), 관리가 소홀해 기구가 파손되고 제자리에 있지 않은(군산대·제주대·경북대)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측정소 위치나 관리 상태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춘천지방 방사능측정소(강원대)는 분석실이 습기 많은 지하에 있어 또 다른 문제가 예상된다. 실제 분석기가 정상으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있고, 평소와 다른 예상 밖의 수치가 나타나 결과를 서너 번 재분석할 때도 있다는 것이 담당 측정요원의 증언이다.

지난 9월26일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 정보통신과학기술 상임위원회 소속 이호정 의원(민자)은 과학기술처를 상대로 환경 방사능측정소의 이같은 관리 실태를 집중 추궁했다. △과기처의 관리 감독 소홀 △정부의 인식 부족 △전문 인력 부족 △시설 장비 부족 등을 지적한 이의원은 8월8일∼9월6일 전국 11개 환경 방사능측정소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 조사를 토대로 “전국 환경 방사능 감시 체제에 총체적으로 구멍이 뚫려 있다”고 주장했다(52쪽 인터뷰 기사 참조).

더욱 놀라운 것은 방사능 측정치에 뚜렷한 변화가 있었는데도 감독기관이 이를 모르고 지나쳤다는 사실이다. <시사저널>이 구한 자료에 따르면, 백령도 간이측정소의 경우 지난해 9월27일~10월26일 한달간 방사능 측정치에 뚜렷한 변화가 있음이 확인됐다. 방사능 측정치는 크게 공간감마선량률과 전(全) 베타방사능 농도 두 가지로 나뉘어 표시된다. 전자는 대기중 감마선 양을 측정한 것으로 렘(R) 단위로 표시되며, 후자는 공기부유진·빗물·수돗물· 낙진 등의 베타방사능 농도를 측정한 것으로 베크렐(Bq) 단위로 표시된다. 이 중 공간감마선량률이 문제가 된 그 기간에 하루도 빠짐없이 30.7∼34.5밀리렘을 기록해 평소의 1일 평균치 7.7밀리렘보다 4배 이상 급상승한 이상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30밀리렘 정도면 인체에 해로운 수준은 아니라고 한다. 방사능 측정치는 거의 자연에서 방출되는 방사능 양에 따라 결정된다. 한 예로 94년 연간 측정 평균치를 보면 부산 지역의 공간감마선량률이 9.5밀리렘인 데 반해 서울 지역은 14.3밀리렘이다. 지형·지반 등에 따라 달라지는 환경 방사능의 특성상 이같은 지역간 차이는 큰 의미가 없다.

문제는 같은 지역에서 갑자기 측정치가 큰 폭으로 상승했을 때이다. 인공 방사선이 유출되었다고 의심할 만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 방사능측정소 업무를 총괄·지원하고 있는 과기처 산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안전기술원) 이모성 환경평가실장은 “평균치보다 4~5배 이상 높은 측정치가 나왔다면 당연히 정밀 핵종 분석에 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실장은 그러나 “지난해 정밀 핵종 분석에 들어간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밝혔다. 이는 안전기술원이 백령도 사건을 몰랐거나, 또는 알고도 그냥 넘어갔다는 얘기가 된다.

실마리는 백령도에서 풀린다. 백령도측정소의 측정 업무는 백령면사무소에서 복무중인 방위병이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된 기간에 측정 업무를 담당했던 김 아무개 일병은 “수치가 올라간 것은 알았지만 따로 보고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전임자로부터 인수할 당시 그런 설명은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일병에 따르면, 백령도측정소의 측정 기록은 1년에 한두 번 안전기술원 직원들이 와서 복사해 간다. 김일병은 자기가 업무를 인수하기 직전인 지난해 8월과 올해 초(김일병은 정확한 달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8월 안전기술원 직원들이 다녀간 것으로 기억했다. 그렇다면 안전기술원이 백령도측정소 측정 결과를 입수한 것은 올해 초라는 얘기가 된다. 이에 대해 이모성 실장은 “그런 일은 보고 받은 적이 없다”고 잘라 대답했다.

백령도측정소는 북한 핵 문제로 전세계가 시끄럽자 혹시 있을지 모를 북한의 핵실험을 조기 감지한다는 차원에서 지난해 1월 새로 설치한 간이측정소이다. 서해안 지역의 핵 안전을 책임진다는 이곳에서 방사능 감시체제 운영·관리·감독에 총체적으로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한달간 방사능 수치에 변동이 있었던 원인에 대해서는 두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기계가 고장났든지, 아니면 자연 또는 인공 방사능 양에 분명한 변화가 있었다는 추론이다. 그러나 해당 시기에 기계가 고장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김일병은 말한다. 설사 김일병이 고장을 알아채지 못했다 해도 10월26일 오후부터 공간감마선량은 다시 평균치를 회복했다. 결국 기계가 고장났을 가능성은 희박한 셈이다. 그렇다면 자연 현상에 이상이 생겼거나, 인근(또는 외국일 수도 있다)에서 핵실험 또는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 누출이 있었다는 추론이 성립한다. 이에 대한 정확한 규명은 정밀 핵종 분석이 있고 난 후에야 가능하다. 그러나 이모성 실장의 말대로라면 안전기술원은 정밀 핵종 분석에 들어간 일이 없는 것이다.

백령도와 같은 실수가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그것이 대형 사고와 연결될 경우 치러야 할 대가는 혹독할 것이다. ‘형식적 측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현행 감시망 체제의 문제점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은 낮은 예산이다. 환경 방사능 감시에 투입되는 1년 예산은 총 2억3백만원으로, 각 지방 측정소가 1년에 지원받는 예산은 1천2백만원 가량이다. 한달에 백만원꼴인데, 이 돈이면 측정요원 월급 45만원을 지급하기도 빠듯한 실정이다. 거의 모든 측정소가 담당 교수 1인과 측정요원 1인의 단촐한 규모인 데다, 측정요원으로 대부분 전문 인력 아닌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간이측정소(간이측정소는 시료 채집과 측정 업무만을 맡는다. 채집한 시료는 안전기술원이 분석한다)라고는 하지만 면사무소 공무원도 아니고, 18개월 단위로 교체되는 방위병에게 측정 업무를 맡기고 있는 백령도의 사례는 촌극에 가깝다고 할 만하다.

둘째는, 관리 체계의 허점이다. 현재 각 지방 측정소는 매달 측정 결과를 안전기술원에 보고하게 돼 있다. 그러나 지방 측정소 중에는 허위로 보고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정소의 측정요원은 한달에 한 차례 구입하는 데 23만원이 드는 ‘CH4 ARGON 혼합가스’ 비용을 아끼느라 기계를 작동하지 않고 허위로 1일 보고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고 증언했다. 실무자 간의 인수 인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큰 문제이다. 안전기술원은 지방 측정소 실무자들에 대해 정기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상이 발생했는데도 안전기술원에 보고하지 않은 이번 백령도의 사례는 그 허점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감시망의 비효율성·허술한 방재 체계도 문제

그러나 관리나 예산 문제에 앞서 더 본질적으로 제기해야 할 문제가 있다. 하나는 환경 방사능 감시망 자체에 실효성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난 7월 고리 원전의 방사성 폐기물에서 방사능이 누출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지방 측정소 중 거리상으로 가장 가까운 경북대측정소에는 아무런 이상 징후도 잡히지 않았다. 지역적으로 국한된 미미한 양의 방사능 유출은 측정기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의학적 결론도 그 미미한 양이 인체에 무해하다는 것을 완전하게 입증한 예는 없다. 이 때문에 지방 측정소보다는 이동 측정소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흔히 ‘모니터링 이동 차량’이라 불리는 이동 측정소가 그것이다. 현재 국내에 있는 이동 차량은 91년 안전기술원이 1대 구입한 것이 고작이다. 1대에 2억원 가량이 드는 고가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경보 이후 방재 체계와의 연계 문제이다. “대형 사고가 났을 경우 경보 체제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될 수준이다”라고 주장하는 서울지방 방사능측정소장 이재기 박사(한양대)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초반의 혼란을 상기해 보라. 상황이 순식간에 진행되는 방사능 사고의 특성상 구조체계 혼선으로 겪게 될 피해를 상상하면 끔찍하다”고 방재 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현행 민방위법에 따르면, 방사능 사고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을 경우에는 과기처장관 직속으로 ‘방사능 방재 대책본부’를 구성하게 돼 있다. 이에 따라 비상시를 위한 주민 대피 경로와 시설이 계획돼 있으며, 개인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TLD)·마스크·선량률 측정기·갑상선 보호약품(옥소제) 등 방호용 장비·장구도 확보돼 있다. 문제는 비상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이러한 계획이 과연 실효를 거둘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원전 지역의 경우 3년에 한 번씩은 민·관 합동 훈련을 의무적으로 치르게 돼 있으나 그 훈련은 매우 형식적이다.
과기처와 안전기술원 내부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보여 왔다. 과기처는 지난 3월 ‘전국 방사능측정소 감시기능 강화방안’을 발표하고 안전기술원에 세부적인 실행 계획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강화 방안의 핵심은 국내외적으로 연대망을 확충해 간다는 것이다. 이른바 ‘국가 종합 방사능 감시망’ 구축이다.

국내의 경우 안전기술원이 주도하여 전국 11개 방사능측정소와 육군·국립수산진흥원·국립보건원·원자력 사업자(한국전력) 등의 방사능 감시 활동을 종합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현재 육군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전국 각지에 시료 채집소 15곳과 분석소 1곳을 운영하고 있으며, 국립수산진흥원과 국립보건원은 해양 방사능과 농수산물 방사능 조사 업무를 맡고 있다. 그러나 육군은 안전기술원으로부터 기술 지원을 받고 있는 수준이며, 국립수산진흥원이나 국립보건원 또한 형식적인 검사밖에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 인력도 없고 지급된 장비도 극히 기초적인 수준이기 때문이다. 외국과는 일본·중국·대만 등 동북아 국가들과 공동 방사능 감시체제를 구축하고 국제원자력 기구(IAEA)·일본분석센터 등 방사능 분석 전문 기관과 분석 기술을 교류할 계획이다.

이 계획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예산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때문에 안전기술원측은 원자력 사업자들로부터 감시 비용의 일부를 징수하자는 제안까지 내놓고 있다. 원래 외국 핵실험·원전 사고 등에 대비하기 위해 설립된 환경 방사능측정소가 국내 원전 사고 감시 분야에까지 예산을 부담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에서이다.

과기처와 안전기술원이 몇년 전부터 역점을 두고 추진해 온 ‘환경 방사능 자동감시망(IERNet)’ 구축 계획은 예산 절감뿐 아니라 효율성 차원에서도 눈길을 끈다. 자동 감시망이란 전국 방사능측정소와 원전 간에 실시간(real-time) 전산망을 구축해 한눈에 전국 각지의 방사능 현황을 알 수 있도록 하고, 비상 사태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경보가 울리도록 무인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전국 92개 환경 방사능측정소 간에 구축돼 있는 영국의 RIMNET, 과기청과 지방자치단체 간에 구축돼 있는 일본의 ERNES 등이 대표적인 국가 자동 감시망이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방사능측정소를 많이 설립한 독일에는 무려 2천여 개 측정소가 IMIS로 연결돼 있다.

과기처 발표에 따르면 남북한·일본·중국의 원전 시설은 2010년까지 현재의 70기에서 1백20여 기로 늘어난다. 환경 방사능 자동감시망 구축은 결국 ‘생존’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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