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의 마피아 '진주고 · 진주사범'
  • 金恩男 기자 ()
  • 승인 1995.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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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관 등 요직에 경상도 출신 일색…교육개혁 걸림돌
지난 9월 초 각 언론사와 교육 관련 단체에 정체 불명의 ‘괴문서’가 날아들었다. 교육부의 9월 인사가 발표된 직후였다. ‘교육부 직제가 교육 개혁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아는가?’라는 제목을 단, A4 크기 복사용지 2장 분량의 이 문서는 이른바 ‘진주 마피아’라 불리는 교육부내 특정 파벌의 존재를 폭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괴문서에 이어 한 일간지가 박영식 장관 취임(95년 5월) 이후 교육부 핵심 요직이 PK 세력으로 채워지고 있다고 보도하자 교육부는 곧 진화 작업에 나섰다. 이천수 차관(93년 3월), 이수종 기획관리실장(94년 4월), 장종택 중앙교육연수원장(95년 3월), 김성동 청와대 교육비서관(95년 2월), 이기우 공보관(95년 3월) 등 기사에서 거론된 관리 대부분이 박장관이 취임하기 전에 임용되었다는 해명 자료를 배포한 것이 그것이다(괄호 안은 임용 시기).

그러나 교육부 사정에 밝은 이들은 이러한 해명에 큰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시비의 핵심은 박장관이 아니라 이천수 차관이기 때문이다. 오병문·김숙희·박영식으로 이어지는 장관 3대를 보위하면서 장수를 누리고 있는 이차관은 80년 교육부에 발을 들인 이래 대학정책실장·기획관리실장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친 교육부내 실세 중의 실세이다. 특히 인사·행정에 관한 그의 권한은 막강하기로 이름 높다. 장관들의 평균 재임 기간이 짧다 보니 실무를 총괄하는 차관의 권한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구설에 오른 인사 모두가 이차관 취임 이후 이루어졌다는 점은 눈길을 끈다.

‘진주 마피아’는 경남 진주고 또는 진주사범 출신을 일컫는다. 이천수 차관은 진주고 출신이다. 교육부의 사령탑이라 할 수 있는 이수종 기획관리실장이 이차관과 같은 고향(경남 고성) 출신이고, 청와대에 파견된 김성동 교육비서관은 진주사범 출신이다. 교육부 장학실장을 지내다가 장학실과 대학정책실이 교육정책실로 통합되면서 중앙교육연수원으로 가게 된 장종택 원장은 이차관과 진주고 선후배 관계이다. 이때문에 항간에서는 이차관을 진주 마피아의 ‘대부’라 부르기도 한다.

문제는 진주 마피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교육부가 이번 국정감사 동안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교육부 본부나 직속 기관, 산하 단체 모두에서 특정 지역 편중 인사의 징후가 뚜렷이 드러난다. 먼저 본부의 이사관급(실·국장급) 이상 간부 17명 가운데 경남 출신은 4명이다. 여기에 경북 출신 3명을 더하면 전체의 41%가 경상도 출신이다. 학술원·국사편찬위원회·국립교육평가원·중앙교육연수원·국제교육진흥원·교원징계재심위원회·국립특수교육원 등 교육부 직속 7개 기관의 경우 부장급 이상 간부는 17명이다. 이 가운데 경남 출신이 4명, 경북 출신 4명으로, 이 또한 경상도 출신이 전체 간부의 47%에 이른다.
“PK 득세하는 데가 우리뿐이냐”

한편 이 협 의원(새정치국민회의)은 교육부 본부의 장관 이하 이사관급과 7개 직속 기관·11개 산하 단체의 부장급 이상 경상도 출신 간부 29명(청와대 교육비서관 1명 포함) 가운데 2명만이 경북이고 나머지 27명이 부산·경남 출신임을 밝혀냈다. 경상도 중에서도 ‘PK의 뚜렷한 약진’이 나타난 것이다. 지난 9월25일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추궁한 이의원은 “교육부도 부산·경남의 특정 지역으로 인사가 편중돼 있어 내부의 불만과 국민들의 시비 대상이 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함으로써 사회 전반의 ‘PK 독식 증후군’에서 교육부 또한 예외가 아님을 폭로했다(표 참조).

특정 지역 편중 인사가 문제되는 것은 이것이 단순한 ‘숫자의 우위’가 아니라 ‘권한의 우위’라는 점에서이다. 교육부 본부의 경우 장·차관과 기획관리실장이 경남 출신이고, 지방 교부금 등으로 교육부 예산의 5분의 1 가량을 쓰는 지방교육지원국장과 감사관이 경북 출신이다. 핵심 요직을 경상도 출신이 거의 차지한 셈이다. 7개 직속 기관 중 노른자위로 꼽히는 중앙교육연수원장과 국립교육평가원장도 경상도 출신이다.

교육부 인사에 대한 시비는 또 다른 곳에서도 불거져 나왔다. 김영삼 대통령 친처남인 손은배씨(58)의 연구관 승진을 둘러싼 잡음이 그것이다. 중앙교육연수원 장학사로 근무하던 손은배씨는 교육부가 지난 9월1일자로 단행한 인사에서 국제교육진흥원 교육연구관으로 발령됐다. 문제는 손씨가 장학사로 임용된 것이 겨우 4개월 전이라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박영식 장관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이 협 의원은 △장학사(연구사)에서 장학관(연구관)으로 승진하는 데 보통 7년 가량이 걸리며 △손씨의 교사 경력 18년을 넘어서는 20년 이상 경력자가 전국에 7만8천여 명이나 된다는 점 등을 들어 손씨 임용은 특혜 인사가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현행법상 연구관 임명권자는 대통령으로 돼 있어, 형식상으로 손씨의 경우는 ‘매부가 처남을 임명한 꼴’이 돼 버렸다.
PK 출신과 손씨 임용을 단순한 파벌·정실 인사로 규정하면 문제는 간단하다. 그러나 그 뒤에는 또 다른 돌출 변수가 자리잡고 있다. ‘일반 행정직 대 교육 전문직’이라는 교육부 내부의 해묵은 갈등이 그것이다. 경상도 출신을 둘러싼 인사 시비는 사실상 일반 행정직 내부의 싸움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교육부 본부 공무원의 22.6%를 차지하며, 교육정책에 현장성과 전문성을 불어넣을 전문직 공무원들은 이 싸움터에 끼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인사 시비로 이번 국감에서 곤욕을 치른 교육부 관계자들은 “PK 득세하는 데가 우리뿐이냐. 그래도 덜한 편인 우리를 왜 이렇게 괴롭히느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교육부의 핵심 요직을 맡았다가 현실에 좌절한 채 반 년 만에 강단으로 돌아간 한 대학 교수의 ‘교육부의 가장 큰 문제는 인적 구성 그 자체’ 라는 지적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교육부 내부에 PK 또는 진주 마피아 따위의 특정 파벌이나 일반 행정직의 권력 독점이 엄존하는 한 ‘교육 개혁’의 앞날은 암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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