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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부의 노동정책은 反문민"

'한국 노동운동사 재조명’'학술 세미나서 지적…“국가개입주의 폐해 크다”

기자 ㅣ 승인 1995.06.29(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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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신 사태는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한국통신 사태로 말미암은 서울 명동성당과 조계사에 대한 정부의 공권력 투입에 대해 종교계의 저항이 계속되는 가운데 고려대 노동대학원(원장 김호진 교수)이 광복 50주년을 기념해 연 학술 세미나(6월13일, 한국 노동운동사의 재조명-평가와 전망)는 그에 대한 연역적 해답을 제공해 준다. 그러나 그 해답은 또한 한국의 노동조건에서 이론과 실천(또는 현실)의 괴리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해준다.

이 대학원 1기 출신으로 세미나 준비위원장을 맡은 신상우 의원(민자·국회 정보위원장)은 ‘전환기 한국 노동운동의 과제와 방향’이라는 제목의 기조연설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6·29 선언 이후 현재까지의 노동운동은 임금인상 등 경제투쟁 위주의 ‘실리적 조합주의’ 노선에서 벗어나 경제투쟁과 함께 노동법 개정이나 인사·경영 참가 요구에서부터 참교육 실현, 토지공개념 도입 요구 등에 이르기까지 초보적인 정치 투쟁을 내걸고 있어 점차 ‘정치적 조합주의’ 노선으로 전환해 가는 초기 현상을 보이고 있다.”

신의원은 또 경제 선진국의 노동운동이나 노사관계의 발전 과정은 “지나친 정치 투쟁을 지양함으로써 점차 ‘정치적 조합주의’에서 ‘경제적 조합주의’로, 다시 ‘국민적 조합주의’로 발전되어 노·`사·`정 3자의 협력 체제를 구축하여 무한 경쟁에 대응해 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한국의 노동운동이 모색해야 할 방향으로 ‘국민적 조합주의’를 제시했다.

새 대안으로 ‘국민적 조합주의’ 제시

국민적 조합주의란 노동조합이 임금말고도 물가`·세제·`고용·`사회보장 등 근로자의 지위 향상에 관련된 정부의 각종 경제·사회 정책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근로자의 이익을 국민경제 전체의 이익과 조화시키려는 운동 노선을 의미한다. 개별 사업장에서 아무리 높은 임금 인상을 얻어내도, 물가가 오르고 고용이 불안하고 세제나 보험 및 연금 같은 사회보장제도가 불합리하면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기 때문에 이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통신 사태에서 보여준 공권력의 엄포에서 알 수 있듯, 이같은 ‘지당한 말씀’은 노동 현실에서 무시되기 십상이다. 정부 당국은 한통 노조가 민영화 문제를 교섭 안건으로 삼는 것을 노조의 권한을 넘어선 것이라며 사법처리 대상으로 삼은 데 이어, 대검 공안부는 민주노총준비위 산하 노조들이 △의료보험제도 개선 △연금제도의 민주적 운영 △세제 및 재정 개혁 △재벌 경제력집중 규제 △교육대개혁 등 ‘사회개혁 5대 항목’을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 조건에 포함해 파업에 들어갈 경우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사법 처리하라고 전국 검찰에 지시한 바 있다.

이 날 주제 발표를 한 김치선 원장(한국노사발전연구원)은 정부 수립 이후 현재까지 ‘노동관계법 개정을 통해 국가의 개입이 계속적으로 강화되어 왔음’을 예로 들고, 이러한 국가개입주의 노사관계 정책은 선진국에서도 실패와 폐해만을 가져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원장은 또 문민 정부가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새로운 국가이데올로기 아래 노사 문제를 경제 문제의 하위 개념이거나 종속 변수 정도로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원장은 또 80년 신군부 등장과 함께 도입된, ‘전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제3자 개입금지 규정’과 ‘79년 YH 여공들의 신민당사 농성 사건을 염두에 둔 사업장 이외 장소에서의 쟁의행위 금지 규정’ 등을 예로 들어 국가개입주의의 폐해를 경고했다.

김원장의 지적에 따르면, 70년 유신정권 당시 YH무역 여성 근로자들의 신민당사 농성과 이에 따른 희생이 유신정권을 몰락케 한 계기로 작용하였으며, 87년 6·29 이후 화산처럼 분출한 근로자들의 분노는 앞서 경험한 유신시대 노동관계 정책의 오류와 YH 근로자들의 분노와 희생을 무시한 사태에서 비롯한 것이다. 김원장은 또 “당시 공권력 투입을 겪은 신민당 당수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고 비통해 했던 김영삼 현 대통령이라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치 측면에서 한국 노동운동사를 조명한 최장집 교수(고려대)는 “한국의 근대 국가 형성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국가가 형성된 서구와는 정반대로 국가가 근대적 시민 사회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이같이 전도된 국가 형성 과정은 한국 노동운동의 발전을 규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구조적 조건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최교수에 따르면, 출범과 더불어 한국에서 민주화를 실현하는 개혁 정치를 표방한 김영삼 정부가 직면한 역사적 선택은, 구조적으로 민주주의 원리와 상충하는 거대 기업가 중심의 축적 구조를 개혁하고, 국가-노동-자본의 관계를 민주적 이행 과정에 부합하도록 재정립하는 문제였다. 이는 곧 한국 민주주의의 내용이 ‘제한된 자유주의적 협약’에서 ‘자유주의적 협약’으로 질적 변화를 이룰 것이냐 하는 문제와 연관된다. 최교수에 따르면, 그것은 국가와 노동 관계에서, 체제의 성격을 항상 ‘발전주의적 권위주의 국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던 국가코포라티즘적 국가와 노동과의 관계를 자유주의적이거나 다원주의적인, 또는 어떤 ‘자유주의적 코포라티즘’의 형태로 변환시킬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최교수는 김영삼 정부의 성격을 드러내는 정책적 선택의 대표적 보기로 93년 6월 현대계열사 노동쟁의 개입을 들었다. 그것은 김영삼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내세우면서 최대 정책 목표로 성장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직면한 시험대였다. 최교수는, 이 과정에서 김영삼 정부는 적어도 그 초기 성격에서 앞선 구체제에 비해 조금도 다르지 않은 권위주의적 태도를 보여주었다고 주장했다.

“새 정부 들어 자본 영향력 훨씬 강해져”

최교수는 그 근거로 김영삼 정부가 현대 노조 파업 과정에서 ‘군사정권 아래서도 동원하지 않았던 긴급조정권을 발동하여 쟁의를 종결한 것’과, 이른바 사회적 협약을 내세우며 각 기업체와 노조 간의 ‘춘계 임금협상이 시작되기 전에 임금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을 지적했다. 최교수에 따르면, 그것은 물가를 안정시키고 기업의 생산비 부담을 경감시켜 기업의 국제 가격경쟁력을 높이려는 정책의 일환이었지만, 신경제정책에서 각종 인센티브가 집중적으로 재벌 기업에 부여되고, 인플레이션과 부의 편중 현상이 지속되는 조건에서, 노동자들에게 고통의 분담이란 ‘고통 전담론’ 이상의 것일 수 없었다.

최교수는 특히 현대 그룹 쟁의를 종식시키면서 정부가 동원한 수단이, 노동조합법 가운데서도 가장 억압적인 조항으로서 문민 정부의 노동법 개정에서 제일 먼저 개정되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전망되었고 노동부장관도 폐기를 공언한 바 있던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정부가 이 조항을 발동하여 현대그룹노조총연합(현총련)의 지도부를 와해시킨 것은 ‘철저하게 기업의 사업장에 고립된 기업별 조직을 강제하는 것’으로 ‘문민 정부임을 자랑하는 김영삼 정부가 노조간 연대 그 자체를 제약하는 제도로 이 조항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교수는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자본이 그 패권주의적 영향력을 그 이전 시기보다 훨씬 더 강도 있게 행사하고 있다고 본다. 또 개혁을 통해 재벌은 이미 면죄부를 부여받아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논리에 기반을 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부 차원의 임금 억제 정책에 무임 승차하고 있으며, 신경영 전략을 통한 현장 체제에서 주도권을 장악하는 데도 실질적 측면에서 성공하고 있다고 파악한다.

최교수는 “그에 반해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이야기하는 95년의 시점에 와서도 한국 사회의 가장 중심적인 생산자 집단인 노동자들은 구체제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정치 참여로부터 배제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또 사회 세력의 다원성과 참여를 기본 전제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기본적 외양에도 못미치는 노동 배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은 구체제와 김영삼 정권 간의 높은 연속성, 특히 국가와 자본 간의 강력한 보수적인 정치연합과 이를 뒷받침하는 성장 중심 발전주의 이념의 연속성이 유지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최교수는 이를 “정치적 수준에서 민주화가 공식적 언술로서 일반에게 널리 수용되고 있는 동안 국가·노동 간의 관계에서는 권위주의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한국 정치에서는 언술과 정치적 실제 간의 불일치가 증대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재벌(기업)과는 ‘한통속’이면서도, 노조한테는 ‘반문민적’인 차별성이 김영삼 정부의 국가코포라티즘과 국가개입주의의 요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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