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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어 터지는 방북길 '교통 경찰' 절실

북한측 창구 ‘다원화’로 남북 교류·협력 혼선

기자 ㅣ 승인 1998.09.03(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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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광복절에 이어 때 아닌 9·9절 방북 특수(特需)가 일고 있다. 8·15 관련 행사에 종교인들이 대거 방북하고 돌아온 데 이어 사회 각 분야 인사들의 방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남북한이 함께 기념하는 8·15 관련 행사에 한국 인사들과 해외 동포들을 초청한 것은 새로울 것이 없는 연례 행사이다. 그러나 공화국 창건 기념일인 9·9절은 다르다. 북한 체제의 특수성을 고려해 조총련계 등 친북 인사들만 이 ‘국경일’을 쇠러 방북했고, 북한 당국 또한 행사 준비에 바쁜 이 기간에는 ‘외부 인사’들의 방북을 꺼려 왔다. 따라서 올해 건국 50주년을 기념한 9·9절 행사와 그에 앞서 9월5일 소집되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 회의를 앞둔 이른바 ‘내부 체제 정비 기간’에 한국측 인사들의 방북을 대거 허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최근 북한을 방문한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에 이어 〈동아일보〉 등 다른 언론사 관계자들도 8월 중에 방북할 예정이다. 이들의 방북 목적은 언론 교류와 문화 유산 답사 같은 ‘비정치적인 사안’이지만, 9월5일 국가 주석으로 추대될 것이 확실한 김정일 총비서 인터뷰라는 ‘최대의 정치 이벤트’를 선점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36쪽 딸린 기사 참조).

북한, 진정한 교류보다 ‘과일 따먹기’ 주력

통일교의 대북 창구인 박보희 전 〈세계일보〉 사장도 8월4∼11일 방북한 데 이어 9월9일에 재방북할 예정이다. 금강산국제그룹 공동회장인 박씨의 방북 목적은 금강산 쾌속선 관광 사업을 확정하기 위한 것이지만, 때가 때인 만큼 〈세계일보〉 지면을 통한 ‘김정일 국가 주석 인터뷰’ 가능성이 점쳐진다. 현대그룹도 8월20일 정몽헌 회장 등 대북 경협 실무단 31명이 방북해 금강산 관광 사업의 세부 실무 협상을 확정하는 대로 9월에 정주영 명예회장이 방북해 김정일 총비서와 면담함으로써 대미를 장식할 예정이다.
9월 중에는 중소 기업인들의 대규모 방북도 이루어진다. 대북 교역 사업을 해 온 중소 기업인 모임인 한민족물자교류협회(한물협·회장 김영일)는 지난 7월 국내 50여 업체가 입주할 수 있는 복합 상가 형태의 나진국제무역센터를 건립하기로 북한측과 합의한 결과를 토대로 50여 업체의 중소기업인으로 구성된 공동투자단을 이끌고 방북(9월26∼29일)할 예정이다. 이번 나진·선봉 공동투자단 방북 설명회에는 국내 중소 기업인뿐만 아니라 미주·일본·중국 등지의 해외 교포 기업인들도 대거 참석할 예정이다. 북한 당국은 이와는 별도로 유엔 공업 개발 기구(UNIDO)가 주선하는 나진·선봉 국제무역 투자상담회(9월24∼26일)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등을 통해 따로 모집한 한국 기업인 백여 명을 나진·선봉 경제 특구에 초청할 예정이다.

이처럼 민간 부문에서 ‘방북 러시’라고 부를 만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배경은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김대중 정부가 표방한 햇볕 정책을 토대로 한 정경 분리 원칙과 민간 부문의 통일운동 지원을 들 수 있다. 정부는 이미 북한 잠수정 및 간첩 침투 사건에도 불구하고 현대그룹의 금강산 관광 사업을 지원하겠다고 천명했다. 정부는 또 최근 이산 가족 상봉 목적의 고령 방북자에 대해서는 방북 허가제 대신 신고제를 적용하기로 법령을 개정했다.

특히 한국 사회의 보수·진보 세력을 대표하는 각 사회 단체·정당을 망라해 민관 합작으로 출범하게 되는 민간 통일운동 연합 단체인 ‘민족 화해 협력 범국민 협의회’(민화협)는 앞으로 남북 교류 협력 관계를 규정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대통령은 최근 민화협 준비위 공동상임위원장들과 아침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과거 대북 창구는 정부가 독점했으나 국민의 정부에서는 민간의 대북 교류 협력에 대한 정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밝혀, 민간이 주도하는 남북 교류 협력과 통일운동 지원 방침을 분명히했다.

북한 또한 과거와 달리 민간 차원의 방북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 북한이 이른바 ‘초청장 장사’에 나선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에는 언론사 관계자들의 방북까지 적극 유치하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통일부 교류협력국의 한 관계자도 “작년까지만 해도 언론인 방북을 꺼렸는데 지금은 언론사 관계자들에게까지 초청장을 발급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외화벌이에 혈안이 되었거나 제한적 개방에 따른 자신감이 붙은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IMF 영향 등으로 상반기 남북 교역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방북 건수가 급증한 것은, 북한이 진정한 의미의 교류 협력보다는 ‘과실만 따먹으려는 것’이라고 보는 관측이 유력하다. 사실 94년 11월 정부의 남북 경협 활성화 조처 이후 33개 기업이 ‘협력 사업자’ 승인을 받아 대북 사업을 추진해 왔으나 ‘협력 사업’ 승인을 받아 실제 사업을 진행하는 업체는 9개뿐이고, 그나마도 3개는 경수로 관련 사업이다(오른쪽 〈표〉 참조).

게다가 북한은 의도적으로 대외 경협 창구를 자주 변경하거나 창구를 다원화해서 한국 기업들의 과당 경쟁과 혼선을 유도하고 있다. 북한이 지난 6월에 현대그룹과 금강산 관광 계약서를 체결한 데 이어 최근 통일그룹과 금강산 관광 계약서를 체결한 것도 그런 면이 있다. 또 북한은 초청장 발급 및 대외 사업 창구를 △조선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 △광명성경제연합회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등으로 다원화해 대북 사업에 혼선을 빚게 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대외 투자 유치를 위한 공식 기구인 대외경제협력추진위를 설립한 데 이어 96년 말 한국 기업들과의 경협·투자를 전담하는 광명성경제연합회를 만들었는데, 최근에는 노동당 통전부의 외곽 기구인 아태 쪽이 ‘대남 사업’을 거의 주도하고 있다.

실제로 아태는 현대그룹 및 통일그룹과 금강산 관광 사업 계약을 체결한 주체일 뿐 아니라 국내 유력 인사들의 방북 초청장 발급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현대그룹의 금강산 관광 사업을 제외한 다른 경협 사업에 대한 합의에는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회장 정운엽)라는 새로운 기구를 내세워 서명케 함으로써 혼선을 부채질하고 있다. 북한이 ‘금강산관광개발추진위원회’라는 새 기구를 만들어 정주영 명예회장을 이 기구의 공동위원장으로 추대한 데 이어 문선명 세계평화연합 총재를 명예위원장에 추대한 것도 과실을 따먹기 위한 ‘감투 씌우기’로 보인다.

그러나 이같은 기구들은 북한 당국이 책임을 지지 않는 비공식 기구인 만큼 통일부가 적극 나서서 ‘교통 정리’를 하는 것이 한국 기업의 과당 경쟁과 그에 따른 뒷돈 거래를 막고 정상적인 남북 교류 협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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