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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상봉 후유증, 최소화할 방법은?

상봉 후유증 우려 ··· 생사확인 · 서신왕래 등 '낮은 단계 상봉' 부터

고재열 기자 ㅣ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0.08.31(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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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 이산가족 상봉단이 서울을 떠나던 지난 18일, 통일을 향한 첫걸음을 축복이라도 하듯 일곱 빛깔 무지개가 서울 하늘을 수놓았다. 서울 프레스센터에 운집한 내·외신 기자 1천9백62명은 3박4일 동안 ‘각본 없는 드라마 2백 편’을 내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금강산 관광에 이어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이 낳은 또 하나의 작품임에 틀림없었다.

1985년의 고향방문단에 비하면 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질과 양 모두 발전했다. 이산가족 75명이 가족과 친지 92명을 2회에 걸쳐 두 시간 정도 만났던 1985년에 비해 이번에는 이산가족 2백명이 가족 9백10명을 6회에 걸쳐 11시간 동안이나 만날 수 있었다.

방북을 마치고 돌아온 장충식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상봉단 규모를 확대하고 정례화하겠다. 9월2일 남북적십자 회담에서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이 말은 이산가족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산가족 문제는 이제 막 첫 단추가 끼워졌을 뿐이다. 성공적인 첫 만남의 분위기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은 너무나 많다.
죽음 임박한 이산가족 많아

이번 이산가족 상봉의 수혜자는 물론 상봉 당사자이겠지만, 또 다른 수혜자로 현정부를 꼽을 수 있다. 이번 상봉으로 인해 현정부의 대북정책은 탄력을 받게 되었으며, 김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레이스에도 가속이 붙었다. 그런 만큼 정부가 이번 상봉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 투입한 인력과 비용은 엄청났다.

상봉을 주관한 대한적십자사의 경우 자원봉사자까지 합쳐 6백여명을 동원했으며, 국정원과 통일부도 각각 4백명과 2백명 정도를 이번 행사에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이산가족과의 경우 이번 행사 기간에 아르바이트생 2명과 직원 2명만이 사무실을 지켰다. 나머지는 전부 현장에 투입되었다. 대한적십자사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이산가족 접수 업무를 제외하고는 직원 대부분이 행사 지원에 나섰다.

이번 행사를 위해 정부가 쓴 상봉 비용은 직접 투입비만 3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호텔 숙식비·행사비·운임비 등에 쓰인 비용을 전부 남북협력기금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현재와 같은 상봉 방식이라면 다음에도 이러한 인력과 비용이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많은 인력과 비용이 드는 방식이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려가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상봉 방식으로는 한 달에 한 번 백 명씩 만나 보았자 1년에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사람 숫자는 고작 1천2백 명에 불과하다. 이산 1세대가 1백23만 명이고 그 중에서도 70세 이상이 27만 명에 이르는데 이 숫자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1992년 남북 고위급회담 이후에 노부모 교환 방문이 결정되었을 때 방문단에는 70세 이상 이산가족 100명이 속해 있었다. 이인모 송환 문제 때문에 결렬된 이 방문단을 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단 선정 과정에서 참고하기 위해 확인한 결과 그 중 74명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1997년 발표된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74.4세이다. 이대로라면 대부분의 이산가족이 생전에 가족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다.

이번 상봉단에 포함된 이산가족들은 “다른 이산가족에게 미안하다. 선택된 소수만이 이런 호강을 누리는 것보다는 생사 확인이나 서신 왕래를 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서 모두 혜택을 보는 것이 낫겠다”라는 말로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표시했다.

생사 확인·서신 왕래 같은 ‘낮은 단계 상봉’은 상봉 전후에 더욱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상봉 전에 서신 교환을 통해 서로 이해하는 폭을 넓히면 상봉의 충격과 50년 세월을 극복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상봉 후에도 계속 연락을 취하게 되면 상봉 이후의 정신적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1985년 고향 방문에는 이러한 ‘낮은 단계 상봉’이 전혀 뒷받침되지 않아 방문단이 극심한 ‘상봉 후유증’을 앓았다. 방문단은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급작스럽게 북한을 방문했다. 이는 북한이 1983년 아웅산 폭파 사건으로 인해 실추한 이미지를 회복하려고 고향방문단 제의를 전격 수락했기 때문이다.

이때 북한을 방문한 고향방문단은 통제가 심한 북한 사회와 너무나 사회주의적으로 변해버린 가족의 모습에 놀랐다. 자신 앞에서 김일성 부자 찬양만 늘어놓는 가족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또 자신보다 더 늙어 보일 정도로 초췌한 자식의 모습은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돌아온 뒤에도 방문단은 북의 가족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다시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방문 이후 편지 교환 같은 것을 전혀 할 수 없어 마음만 더 어수선해졌을 뿐이다. 그들 중에는 북한의 혈육과 연락이라도 해 볼 요량으로 이민을 가기도 했다. 몇 명은 브로커를 통해 가족과 연락해 보려다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고향방문단으로 갔다가 결국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강성숙 수녀(68)는 “만나고 난 뒤로 걱정만 많아진 사람이 많았다. 같이 가신 지학순 주교님도 가족의 모습을 보고서는 슬퍼하셨다. 그 뒤로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다”라고 말했다. 역시 방문단에 속해 있었던 이재운 변호사(65)는 “아버지가 주소를 물었지만 행여 간첩이라도 내려보낼까 두려워 제대로 알려주지도 못했다. 그 뒤로 전혀 연락이 없었다. 너무나 죄스럽다”라고 후회했다. 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 가족들도 연락이 두절되거나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어지면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릴 수 있을 것이다.
북의 수용 능력도 감안해 풀어가야

북한이 허용하는 이산가족 만남의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점도 ‘낮은 단계 상봉’이 필요한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이번에 온 북측 상봉단은 대부분 월북자이면서 북한 사회에서 어느 정도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북한이 당에 충성하고 대외에 보여줄 수 있는 정도의 사람들만 보낸 것이다.

아직까지 북한은 이산가족 만남 자체가 확대되고 부각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체제 안정을 위협하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이다. 이 경우 직접 만날 조건이 안 되는 사람은 편지 왕래 등 ‘낮은 단계 상봉’을 통해 북의 가족과 교류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북의 이산가족 문제 해결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기보다는 남북 경협에 대한 반대급부적 성격이 강하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행사장에서 남측 대표들은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강조한 데 반해 북측 대표들은 이산가족 문제 자체보다는 ‘통일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원론적인 말만을 되뇌었다. 북한이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서 전향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북한은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서 그동안 여러 번 입장을 번복했다. 1989년 3백50명 규모의 방문단을 교환하기로 합의했던 2차 고향방문단은 북한이 혁명 가극 <꽃 파는 처녀>를 공연하자고 고집하는 바람에 이루어지지 못했다. 1992년 남북 고위급회담 이후 선정된 2백40명 규모의 방문은 이인모 송환 문제에 발목이 잡혀 실현되지 못했다. 1999년에도 서해 사태를 빌미로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을 무산시켰다.

그때와 지금의 정치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북한이 또다시 그런 식으로 반응하리라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북한은 이산가족 문제를 우리 정부가 기대하는 것처럼 점진적으로 확장하는 데까지 결심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상봉을 확장하는 것보다는 생사 확인·서신 교환·면회소 설치 등 제도적 장치를 정비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중국과 타이완의 이산가족 정책은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 중국과 타이완은 1987년부터 이산가족 혈육 찾기를 허용해 지금까지 8백여만 명이 양측을 방문했고 6천여만 통의 전화 통화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교류가 활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부가 초기에 이산가족 교류를 위한 체계를 세워주고 점점 정부의 역할을 축소해서 정치적인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6년부터는 춘절(설), 중추절(추석) 모친절(어머니날) 같은 명절에 부모형제나 친지 간에 서로 꽃 보내기도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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