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들 뇌물 바치기 ‘천태만상’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5.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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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 따르면, 재벌들은 금융·세제 등을 운영하는 데 경쟁 기업보다 우대받거나 불이익이 없도록 선처해 달라는 명목으로 비자금을 전달했다.
12월5일 기소된 노태우 전 대통령의 공소장에는 재벌 그룹 회장에서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천태만상의 비자금 전달법이 드러나 있다. 노태우씨가 13대 대통령에 취임한 것은 88년 2월25일이었다. 그 해 3월 노씨의 대통령 취임을 축하라도 하듯 삼성 이건희(20억)·현대 정주영(20억)·대우 김우중(30억)·한진 조중훈(20억원) 회장은 경쟁적으로 노대통령에게 돈을 갖다 주었다. 검찰이 밝힌 바에 따르면, 기업 경영과 관련된 정책을 결정하고 금융·세제 등을 운영하는 데 경쟁 기업보다 우대받거나, 최소한 불이익이 없도록 선처해 달라는 명목으로 전달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밀월 관계는 벌어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LG그룹이다. 90년 11월 청와대 본관 준공 기념 회식에서 구자경 회장이 술김에 “과거 정권은 군사독재 정권이었다”고 실언해, 노대통령의 노여움을 샀다. 이때부터 LG측 자금 전달자는 럭키금성상사 구평회 회장으로 바뀌었다.

추석·연말 정기 보너스 수십억원 상납

91년 가을부터는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정계진출설이 파다하게 퍼지면서 정씨와 노대통령 간의 불화설이 돌았다. 이 무렵인 91년 9월 현대 정세영 회장이 정주영 회장 대신 청와대에 들어가 일거에 백억원을 제공했다. 그 뒤 정주영 회장은 92년 1월8일 “노대통령에게 수백억원의 정치 헌금을 했다”고 밝혀 충격을 주었다. 다음날 노대통령은 연두 회견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정치 자금을 주시오’ 한 적이 없다”고 했으나, 이번 수사로 거짓말임이 밝혀졌다.

삼성그룹은 추석과 연말을 앞두고 보너스를 주듯 정확히 노씨에게 돈을 바쳤다. 단 노씨가 대통령에 취임한 88년에는 3월에 돈을 주었기 때문에 ‘추석 보너스’를 주지 않았고, 92년 연말에는 14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음에도 ‘연말 보너스’를 지급하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은 처음 한 번만 직접 돈을 갖다 주고 이후 여덟 번은 안국화재 이종기 부회장이 전달했다. 정치인과는 ‘불가원 불가근’을 유지하고 직접 돈을 건네지 않는다는 선대 이병철 회장의 원칙을 이건희 회장 역시 성실히 지킨 것으로 보인다. 여섯 차례 돈을 건넨 유원그룹 역시 이현수 부회장이 세 번 돈을 전했는데, 이는 최효석 회장(93년 3월 작고)의 건강이 나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91년 10월3일 당시 민자당 김덕룡 의원은 국정감사장에서 “재무부가 산업은행에 압력을 넣어 아시아나항공에 7백70억원을 변칙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그보다 몇달 전인 90년 봄과 91년 5월 금호그룹 박성용 회장은 각 20억원짜리 양도성예금증서(CD)를 노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양도성예금증서는 거의 완벽하게 익명성이 보장된다. 박회장은 노대통령의 불안감까지 고려해서 돈세탁이 된 양도성예금증서를 건넨 것은 아닐까.

비자금 전달에는 대통령 친인척이 동원되기도 했다. 대림 이준용 회장은 노대통령의 동생인 노재우씨를 통해 50억원을 전달했고, 동부산업 김준기 회장은 자기 회사 직원으로 있던 금진호씨의 아들을 통해 20억원을 노대통령에게 전달했다. 박건배 해태 회장은 박 승 경제수석을 통해 10억원을 전달했다.

88년 9월 노소영씨가 시집감으로써 노대통령은 선경 최종현 회장과 사돈이 되었다. 사돈은 예나 지금이나 매우 어려운 관계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노대통령은 최회장으로부터 사돈을 맺기 전인 88년 12월 말 한 차례 30억원을 받았을 뿐이다. 노씨는 아들 재헌씨가 장가든 동방유량 신명수 회장으로부터도 돈을 받지 않았다.

돈을 갖다 바친 사연도 다양하다. 90년 4월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두산그룹은 사고 직후 선처를 바란다며 10억원을 갖다 바쳤다. 88년 8월 한일그룹 김중원 회장은 ‘김회장이 상속 재산을 동생들에게 분배하지 않고 모두 차지하려 한다’는 소문을 해명하면서 20억원을 노대통령에게 바쳤다. 91년 10월 미원 임창욱 회장은 김종인 경제수석에게 “호남에 사업 기반을 두었다는 이유로 5공 때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고 호소하여 노대통령을 면담하고 20억원을 냈다.
뇌물성이 명백한 것으로는 한보 정태수 회장이 꼽힌다. 정회장은 10억~30억원씩 내다가 90년 10월28일에는 서울 수서 택지를 수의 계약으로 특혜 분양해 달라며 일시에 백억원을 내놓았다. 20억∼30억원씩 내던 대우 김우중 회장은 91년 5월 동아건설을 제치고 진해 잠수함 기지 건설 공사를 따낸 데 대한 사례와 월성 원전 3, 4호기 수주 명목으로 각 50억원씩 합계 백억원을 ‘베팅’해 성공을 거두었다. 대우에 패한 동아건설 최원석 회장 또한 ‘힘 있는 대시’로 일전의 패배를 만회했다. 91년 8월 최회장이 아산 해군 기지 공사 수주 사례와 울진 원전 3, 4호기 청탁 명목으로 백억원을 낸 것이 그것이다. 90년 12월 진로 장진호 회장 역시 충북 청원의 땅 21만평을 지방 공단으로 지정해 달라며 백억원을 ‘희사’했다.

노대통령이 받은 뇌물액 2천8백38억9천6백만원을 연도 별로 정리하면, 88년은 취임 첫해이고 서울올림픽이 열렸음에도 그 해 4월 13대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져서인지 가장 적은 2백80억원이 걷혔다. 5공·광주청문회 등으로 시끄러웠던 89년에는 3백70억원, 중간 평가 연기 등으로 불안정했던 90년에는 6백35억원으로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3당 합당으로 민자당 다수 정권을 형성한 91년에는 노대통령 통치 시기에서 가장 많은 1천43억9천6백만원이 걷혔다. 이 해에 대우와 동아건설로부터 각 백억원씩 받았고, 평택 LNG 시설 공사를 준 대가로 한양 배종렬 회장으로부터 백억원을 수수했다. 그러나 임기 말인 92년 들어서 14대 총선과 대선이 있었음에도 자금 모집이 신통치 않아 5백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이른바 ‘레임덕 현상’과 재벌의 눈치 보기가 노대통령의 주머니 사정에도 반영된 것이다.

비자금 심부름값만 수억원 짭짤

검찰 공소장에서 눈에 띄는 것은, 91년 말부터 노대통령이 이현우·금진호·김종인·이원조 씨에게 92년 4월에 있을 14대 총선 자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으나, 그 해 12월의 14대 대선을 위해서는 자금 마련을 지시한 대목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92년 2월 이현우 경호실장은 14대 총선 자금을 마련하려고 김현철 삼미 회장을 만나 “그 동안 한번도 청와대에 오지 않았다”며 압력을 넣어 20억원을 갖다 내게 했다. 92년 1월 중순 금진호 무역협회장으로부터 “총선 자금을 내라”고 권유 받은 박용학 대농 회장은 그 달 하순께 20억원을 제공했다. 91년 11월 김종인 경제수석을 통해 총선 명목으로 이미 20억원을 낸 데 이어 두 번째였다. 91년 11월 김종인 수석은 이정호 대한유화 회장에게 총선 자금을 요구해 10억원을 내게 했고, 이원조 의원은 92년 1월 장상태 동국제강 회장을 만나 “총선 자금 50억원을 내라”고 권유해 그 해 3월 30억원을 갖다 바치게 했다.

부패한 지도자 밑에는 부패한 부하가 있기 마련이다. 이현우 경호실장은 노대통령 ‘알현’을 주선하면서 김석원·최원석 회장으로부터 ‘알현 수수료’로 합계 3억5천만원을 챙겼다. 동화은행 안영모 행장으로부터는 천억원대의 노대통령 ‘통치 자금’을 이 은행에 예금한 대가로 1억8천만원을 받았다. 대전고 출신인 그는 경호실장이면서도 안기부 업무에 관여해, 안기부 대전분실 공사를 영진건설에 주는 대가로 이 회사 이종완 대표로부터 3천만원을 받았다. 안기부장에 취임해서는 안기부가 대전 부근에 건설키로 한 골프장 공사 수주 대가로 3천만원을 받는 등 영진건설로부터 모두 8천만원을 받았다.

93년 8월12일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직후 노 전대통령은 재벌 그룹 회장의 청탁을 들어주며 돈을 받던 과거의 체면을 버리고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에 전력하는 ‘추한 모습’을 보였다. 이 때 동원된 해결사가 손아래 동서인 금진호 의원이다. 금의원은 한보 정태수 회장을 만나 이 문제를 상의한 후, 이 회사 주 아무개 이사를 동화은행에 보내, ‘성산회’ 명의의 통장 등을 정태수 회장 앞으로 실명 전환했다. 또 금의원은 (주)대우 이경훈 회장과 짜고 이 회사 자금부 박 아무개씨를 시켜 신한은행 등에 있는 노씨의 비실명 통장을 (주)대우 앞으로 실명 전환했다.

한때 이 나라 최고 자리까지 비상했던 노태우씨는 재임중 재벌 기업과 사돈을 맺어 돈에 약한 모습을 보였고, 퇴임 후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다시 기업 총수한테 머리를 숙임으로써 대한민국 대통령의 권위를 추락시켰다. 노태우씨 공소장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기업 총수로부터 추석과 연말에 떡값이라는 명목으로 보너스를 받는다는 것을 공식으로 증명한 ‘부패 보고서’이다.

실추된 대한민국 대통령의 권위를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가. 이와 관련해 사회 지도층은 자신의 의무를 다하여야 한다는 ‘노블레스 어블리지(Noblesse Oblige)’에 대해 심각한 고뇌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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