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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 피해 입었다" 아자, 국가 상대로 20억 소송

‘흑금성’ 고용했던 (주)아자, 국가 상대로 20억 손해 배상 청구 소송

기자 ㅣ | 승인 1998.11.19(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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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북풍(北風) 사건이 법정 다툼으로 비화했다. 북한에서 상업 광고를 찍는 것을 골자로 한 대북 광고 사업을 추진해 온 (주)아자 커뮤니케이션(대표 박기영)은 북풍 사건 당시 이 회사 전무로 일한 박채서씨가 대북 공작원 ‘흑금성’이라는 내용이 담긴 이른바 이대성 파일이 공개됨으로써 사업상 피해를 보았다며 국가를 상대로 20억원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10월29일 서울지법에 제기했다.

유명 광고 대행사 감독 출신인 박기영 대표가 북한에서 상업 광고를 찍겠다는 일념으로 광고 회사 아자를 차린 때는 95년. 박대표는 북한과의 광고 합작 사업을 성사하기 위해 수년간 백방으로 뛰다가 그 무렵 대북 사업을 하는 박채서라는 인물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북한측과 ‘든든한 줄’을 대고 있던 박씨는 이후 아자 전무로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박씨가 박대표를 만나 대북 광고 사업을 함께 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안기부 특수 공작원인 박씨가 자기 신분을 숨기고 국가 공작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아자에 ‘침투’했던 것이다.

그후 아자측은 박전무의 소개로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소속 리 철 처장을 만나 영상물 제작에 관한 합작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고, 마침내 97년 2월에 북한 금강산국제관광총회사(방종삼 총사장)와 계약을 체결하고 향후 5년간 북한에서의 텔레비전·인쇄 광고 촬영 사업 독점권을 따냈다(〈시사저널〉 제384호 참조).

이후 아자 광고사업팀은 97년 8월 사전 답사차 북한을 방문했고, 이같은 방북 성과를 토대로 통일원으로부터 사회·문화 교류 협력 분야에서는 최초로 협력 사업자 및 사업 승인을 받았다.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광고 사업을 북한이 받아들이게 한 것 자체가 대단한 사건이었다. 박씨가 안기부에서 A급 공작원으로 평가받은 것도 바로 북한이 가장 경계하는 ‘자본주의의 꽃’으로 위장한 공작을 성사(침투)시킨 능력 때문이었다.

이때만 해도 ‘아자의 전성 시대’였다.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북한에서 처음 찍는 상업 광고의 광고주가 되겠다고 나섰다. 아자는 97년 11월 삼성전자(대표 이사 윤종용)와 ‘애니콜’ 광고 촬영에 관한 계약(2백만 달러)을 맺고, 그해 12월에는 금강산국제관광총회사측과 금수강산합영회사 설립 계약까지 체결했다. 합영회사는 북한측과 합의한 금강산호텔 개·보수 사업(총 1천3백만 달러)을 시작하기 위한 전진 기지였다. 이후 아자는 98년 3월12일 1차 연도 첫 사업으로 애니콜 광고를 촬영하기 위해 모델(영화 배우 안성기), 광고주(삼성전자 윤종용 사장) 등 제작팀 12명에 대한 방북 초청장과 방북 증명서까지 발급받았다.

“기밀 문서 유출로 대북 사업 좌초했다”

당시 통일원이 발급한 방북 증명서의 승인 사항을 보면 △방문 목적은 인쇄·텔레비전 광고 제작 △방문 기간은 98년 3월21일∼5월20일 △방문 지역은 평양·개성·금강산 등지였다. 5년간 매년 60일 동안 북한에서 상업 광고를 촬영할 수 있는 교류 협력 사업의 첫걸음이 택일만 남은 순간이었다. 아자측은 북한측과 협의해 이 사업의 출발을 ‘기념비적인 사업’으로 만들기 위해 광고 제작팀을 지프 4대에 태우고 3월28일 판문점을 통과하는 ‘거사’ 계획을 세워 두고 있었다. 이 일이 차질없이 진행되었다면 ‘현대의 소떼 방북’ 이전에 ‘삼성의 지프떼 방북’이 선행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거사를 열흘 앞둔 3월18일 날벼락이 떨어졌다. 이대성 안기부 203실장(대북공작실장)이 유출한 안기부 공작 문건(이대성 파일)을 〈한겨레〉(3월18일자)가 여과 없이 공개함으로써 아자 전무 박채서씨가 흑금성 공작원이라는 사실이 노출되고, 이로 인해 아자가 마치 ‘안기부 방계 조직’쯤으로 낙인 찍히게 된 것이다. 7년 동안 공들인 아자의 대북 사업과 그 사업에 ‘침투’한 안기부의 공작 사업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광고주인 삼성전자측은 9월23일 북풍 사건을 이유로 계약 파기를 선언하는 공문을 보냈다. 삼성측이 공문에서 밝힌 계약 파기 사유는 ‘방북이 중단된 원인은 귀사의 방북 실무 책임자(박채서 전무)의 정치적 활동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97년 11월에 체결한 계약서 자체가 원인 무효’라는 것이었다. 삼성은 이밖에도 북풍 사건 이후 △자사 윤종용 사장의 방북 루트였던 판문점을 통한 현대의 소떼 방북 실현 △탤런트 김혜자씨의 방북으로 자사 전속 모델 안성기씨의 연예인 최초 방북이 무산되어 광고 사업의 효과가 상실되었다는 이유를 들었다. 광고주로서는 이유 있는 계약 파기였다.

그러나 광고주는 다시 잡으면 되었다. 때아닌 ‘북풍’이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려 사업을 복원하려 했던 아자를 ‘두 번 죽인’ 것은 통일부의 처사였다. 통일부는 북풍 사건이 터졌을 때만 해도 ‘아자의 대북 광고 사업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공식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나 ‘아자의 광고 사업은 이제 끝났다’는 소문이 광고업계에서 나돌더니 통일부는 지난 8월 (주)우인방에 협력 사업자 승인을 내주었다. 통일부가 대북 사업에 적용해 온 ‘과당 경쟁 방지’에도 어긋나는 원칙 없는 행정이었다.

이에 대해 박기영 대표는 “참을 만큼 참았다. 그러나 이제 달리 선택할 길이 없다. 안기부 고위 간부들의 무책임한 국가 기밀 문서 유출로 기업 활동에 피해를 준 만큼 국가가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안기부의 가혹 행위에 대한 형사 고발과 그에 따른 손해 배상 소송은 간혹 제기되었지만 국가의 대북 공작 사업으로 인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소송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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