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 시장·도지사 들의 뜻깊은 만남
  • 羅權一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1998.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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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 자치단체, 자매 결연해 동서 화합 추진… 민간 교류 넓혀야 성과 극대화
지난 11월14일 오후 전남 함평군 함평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영·호남 화합 행사를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경남 남해군과 전남 함평군 지역 생활 체육인 백여 명이 모여 친선을 도모하는 행사를 연 것이다. 한나절을 즐겁게 보낸 참석자들은 특산물인 함평 배와 남해 유자를 서로 교환하며 우의를 다졌다. 이석형 함평 군수(41)는 “김두관 남해 군수와 한달 전에 만나 자매 결연을 맺으면서 영·호남 화합의 메신저 역할을 하자고 합의했다. 앞으로 남해 주민은 해산물을, 함평 주민은 농산물을 서로 값싸게 사고 팔면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게 되면 자연스럽게 친숙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영·호남 지역에서 ‘동서 화합’을 내건 자치단체 교류가 줄을 잇고 있다. 광주광역시의 경우 5개 구청 모두 대구·부산의 구청과 자매 결연을 맺었다. 전라남도는 11월 말 현재 22개 기초 자치단체 가운데 16개 시·군이 경남·부산 지역 기초 자치단체와 자매 결연을 맺었다. 전라북도와 경상북도처럼 아예 광역 자치단체끼리 자매 결연을 맺은 경우도 있다.

영·호남 지역의 이같은 흐름은 지난 10월8일 부산·대구·광주·전남 단체장들이 서로 모여 ‘영·호남 시·도지사 협력회의’를 구성해 상호 교류와 협력을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현재 ‘영·호남 시·도지사 협력회의’ 간사도(幹事道)를 맡고 있는 전라남도가 동서 화합 추진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허경만 전남도지사는 이달 말 영·호남 시·도지사 협력회의에서 대구·경북·울산·전북 단체장까지 참여하는 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광주시도 ‘영·호남 교류 협력에 관한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인터넷에 ‘영·호남 한마당’ 홈페이지 개설을 서두르는 등 전라남도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

그러나 소외당했던 피해자가 먼저 손 내밀자는 호남 지역의 적극적인 동·서 화합 추진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영남 쪽의 미묘한 거부감과 반발 심리를 낳기도 한다.

화합에 찬물 끼얹은 ‘호남 호황설’

대구에서 열린사회연구소를 운영하는 김석순씨(42)는 “호남 정권이 탄생한 뒤 영남 지역민들이 가지는 상실감을 고려해야 한다. 더구나 IMF까지 겹쳐 대구·부산의 경기가 불황이고 죽을 맛인데, 호남 지역이 동서 화합을 강조한다고 해서 흥이 날 리 없다”라고 지적한다.

한나라당 권오을 의원(안동 갑) 역시 “서독은 독일 통일을 추진하면서 20∼30년 동안 ‘통일’ 이라는 말을 굳이 거론하거나 강조하지 않았다. 행사를 할 때마다 떠들썩하게 영·호남 화합을 들먹이고 말끝마다 동서 화합을 갖다 붙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영·호남 상호 간에 공통된 주제를 찾아 자연스럽고 내실있게 만나야 한다”라고 말한다.

영남 지역의 이런 미묘한 분위기는 지난 10월 이후 한동안 호남 호황설과 이에 맞서는 ‘호남 역차별론’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기현상을 낳기도 했다. 호남 호황설은 경주 문화 EXPO에 참석하기 위해 경북도의회를 찾은 광주시의회 대표단에게 경북도의회 한 의원이 “호남은 건설 경기도 좋고 백화점도 생기고 호황이라 카더라”는 대구 지역 건설업자들 사이에 돌고 있던 소문을 전하면서 비롯되었다. 급기야 광주시와 전남도 의회 의원들이 오해를 풀기 위해 지난 13일 호남 지역을 방문한 대구시의회 의원들을 건설 현장에 동행해, 사실을 확인시키는 촌극까지 빚었다.

호남 호황설은 또 때마침 정부의 ‘광양항 2단계 사업 추진 2년 연기’ 방침이 전해지면서 호남 쪽의 분위기를 호남 역차별 논쟁으로 치닫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았다. 국토 균형 발전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광양항과 목포 신외항, 율촌 산업단지 건설 등 호남 지역의 대형 국책 사업이 대부분 연기되거나 예산이 삭감된 것이야말로 호남 호황설을 의식한 역차별이 아니냐는 논리다. 결과적으로 호남 호황설과 역차별론은 동서 화합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 되고 말았다.

이와 관련해 호남 호황설의 진원지로 알려진 경북 지역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기가 얼어붙어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인데, 호남 지역 건설업체가 올해 들어 수십개 씩 생긴 게 뭔가 건설 수요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측에서 그런 말들이 퍼진 것 같다. 실제 확인해 보니 관급 공사 입찰 방식이 추첨제로 바뀌면서 더 많은 기회를 얻기 위해 기존 건설회사들이 면허를 여러 개 등록한 것이었다”라고 밝혔다.

초등학생 민박 교류 큰 성과

지난 13일 광주와 전남도의회를 방문해 광주 지역 상무 신도심 개발 현장을 둘러본 대구시의회 이덕천 운영위원장은 “영·호남 모두 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구 지역 일부에서 흘러다니는 근거 없는 호황설을 호남 지역에서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영·호남 정서를 동시에 꼬집었다.

호남 호황설이나 호남 역차별론의 파장에도 불구하고 영·호남 지방 자치단체의 동서 화합 노력은 꾸준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조성되고 있는 동서 화합 분위기 역시 과거처럼 관의 일방적인 주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치단체들 간의 자매 결연은 대부분 동서 화합을 위한 첫 걸음마 단계로, 10여 년 이상 교류해 온 대구 달성군과 전남 담양군과 같은 실질적인 교류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왼쪽 상자 기사 참조). 빈번하게 열리고 있는 민간 단체 교류 행사 역시 1회성 이벤트 위주인데다, 오고 가는 데만 7∼8시간이 걸리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실질적인 친선과 교류 협력의 장을 마련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와 관련해 김태홍 광주시 정무부시장은 “초등학생들끼리의 민박 교류·체험 행사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 시장·도지사가 몇 번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간 부문의 교류로, 자치단체 예산과 인력을 들여 민간 교류를 지원해야 한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부산 동아대 교수 시절부터 민간 차원의 영·호남 교류에 앞장서온 권철현 의원(부산 사상 갑)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권의원은 “영·호남 학술·문화 교류를 하면서 자녀와 가족들이 함께 만나다 보니까 굳이 영·호남 교류를 들먹이지 않아도 서로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영·호남 교류는 꾸준히 인내심을 갖고 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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