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자 인권은 단속 대상?
  • 蘇成玟 기자 ()
  • 승인 1995.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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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 최정환씨 ‘장사 밑천’ 압수에 항의 분신…“생존권 박탈 말고 합법적 일터 마련을”
행상 장애인 최정환씨(37)는 3월8일 오후 9시30분께 서울 서초구청 당직실을 찾아갔다. 그의 품 속에는 1ℓ짜리 시너 한 통이 숨겨져 있었다. 최씨는 구청 단속반이 오후 8시50분에 압수해 간 행상용 확성기 축전지를 돌려달라고 당직 근무자에게 요구했다. 요구는 간단히 묵살됐다. 당직 근무자는 단속반이 자정이 넘어야 돌아오니 내일 아침에 오라고 말한 뒤 다시 텔레비전에 열중했다. 9시45분 최씨는 머리부터 시너를 뒤집어쓴 뒤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자세히 연구하면 도움 줄 방법 많아”

최씨는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다. 그와 처지가 비슷한 동료 장애인들은 분노했다. 최씨가 회원으로 몸 담았던 대한성인장애자복지협의회(성장협) 회원 40여 명은 9일 서초구청에 몰려가 항의했다. 그러나 책임질 일이 없다는 구청의 답변만 들어야 했다.

성장협은 10일 전국노점상연합회·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와 연대해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리고 11일에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철거민연합회 등 재야 단체와 대학 특수교육학과 학생들과 함께 오전 11시부터 2시간 동안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장애인들은 구청의 대형 유리창 8장을 깨고 최씨의 생명줄이었던 음악 테이프 판매대를 불태운 뒤 도로 진출을 저지하는 전경들에게 목발을 휘둘렀다. 평소 맺히고 쌓인 한과 울분이 터져나와 서초구청과 그 일대는 한동안 수라장이 됐다. 16일 오전 11시에는 종로 4가 종묘공원에서 전국노점상연합회 주최로 규탄대회를 벌였다.

분신한 최씨가 소속한 성장협은 행상 장애인들이 한달에 한번씩(매월 둘째주 월요일) 모여 친목을 다지는 임의 단체이다. 차종선 조직부장(44)에 따르면, 이 단체는 91년 가출 청소년들을 불구로 만들어 앵벌이가 되게 한다고 주장해 물의를 빚은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장기철 회장 퇴진 운동을 벌이며 조직됐다. 성장협 회원들이 자신들의 단체를 ‘성인자리패’라고 부르는 점만 보아도 이 단체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이 단체의 요구 사항은 단순하다. 대책 없이 노점상을 단속해 생존권을 박탈하지 말고 거리의 가판점이나 구두 수선점 등 자신들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달라는 것이다. 성장협 김도현 회장(58)은 “정부가 연구하려는 자세만 제대로 돼 있으면 혜택의 방법은 다양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름 밝히기를 꺼리는 보건복지부 장애인복지과의 한 관계자는 성장협의 요구 사항에 대해 “임의 단체의 요구 사항까지 어떻게 알겠는가. 우리는 허가 받은 제도권 단체만 관장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요구 사항을 알려주자 “현장에 가본 적은 없지만 우리가 보고 받은 바로는 정상인들 생각과 다른 것 같다. 악용하려는 사람도 있는 것 같고…”라는 식의 무책임한 답변만 했다.
구체적인 장애인 실태가 조사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실효성 있는 복지 정책은 공염불이다.한국이 장애인 복지 후진국 소리를 면치 못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장애인복지공동대책위원회 김성재 위원장(한신대 교수·신학과)은 “근본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보건복지부가 장애인 실태를 조사한 뒤 생계를 위협 받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차적인 책임을 져줄 것을 전부터 요청했지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정부의 무관심을 지적했다.

정부가 어림하는 국내 장애 인구는 96만5천명으로 전체 인구의 2.2%이다. 그러나 장애인 단체나 연구소는 10% 정도 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세워놓은 기준에 근거한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는 전세계 인구를 50억으로 기준할 때 대략 5억 정도를 장애 인구로 추산한다. 특히 이 가운데 70%는 개도국 이하에 분포한다고 본다. 이 연구소 신용호 간사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장애인 발생 요인이 많다. 산업 재해나 교통사고 세계 1위, 후진국형 보건 정책 등으로 미루어 보아 다른 나라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다”고 말했다. 국제재활협회는 장애 인구가 매년 6% 가량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해 본 적이 없는 상황에서 복지란 산 너머 저편이다. 노동부 산하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취업 장애인은 정부가 추산하는 전체 장애인 96만5천명 중에서도 22.5%에 불과하다. 신용호 간사는 많은 장애인이 절대 빈곤에 허덕이는 이유를, 정부의 정책 의지가 약한 데다 전체 장애인의 90% 이상이 공부를 제대로 못한 탓으로 돌렸다. 분신한 최씨처럼 나이만 들고 배운 것이 없는 중증·영세 장애인들은 생존권 문제가 절박하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복지 예산은 같은 해 GNP의 0.13%에 불과한 5백50억원(전체 사회복지예산 2천1백50억)이었지만 70% 이상이 장애인 수용 시설을 관리·유지하는 비용으로 쓰였다. 재가 장애인들에게는 혜택이 거의 없다. 휠체어나 목발·흰지팡이(맹인용) 등의 보장구와, 생활보호 대상자이면서 1급(또는 중복 장애자) 장애인이 받는 월 3만원의 생계비말고는 아무런 지원책이 마련돼 있지 않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주최로 3월17일 서초종합사회복지관 강당에서 열린 ‘지방자치시대의 장애우복지 실현과 참여 방안’에 관한 토론회에서 조흥식 교수(서울대·사회복지학과)는 “장애우를 단순히 도움을 받기만 하는 사람으로 생각해서는 안되며, 더불어 같이 살아야 할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들일 때, 즉 지역 주민이 하나로 통합될 때 진정한 지역 복지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연대 정신’을 강조했다.

신용호 간사는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고 있는 행상 장애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설 지원 위주의 복지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 대안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선진국형 연금 지급이다. 일본은 자립 능력이 없는 장애인에게 중앙 정부가 8만엔, 지방자치단체가 5만∼7만엔, 합해서13∼15만엔 가량을 생계비로 지급한다(대졸 초임은 약 17만엔). 휠체어를 탄 중증 장애인에게는 정부나 지자체가 간호 비용까지 추가로 지급해, 한달에 60만엔 넘게 받는 장애인도 있다. 둘째, 연금 지급이 어려울 경우 생계비를 최저 임금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장애인 수당이라는 형식을 취해서라도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해 주어 거리로 나오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 셋째, 장애인에게 맞는 직업을 면밀히 분석해 우선적으로 알선해 주고, 자영업일 경우 무이자나 싼 조건으로 사업 자금을 융자해 준다.

법 제정보다 시행 의지 중요

이런 점에서 ‘서울시 공공시설내 신문·복권판매대·매점 및 자동판매기 설치 계약에 관한 조례안’(3월3일 제정)은 고무적인 조처로 여겨진다. 장애인이나 65세 이상 노인에게 시나 시 소속 기관의 청사, 시가 관리하는 공공시설 등에 설치되는 각종 수익사업에 우선적으로 계약할 권리를 준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제정보다는 시행 의지가 중요하다. 장애인고용촉진법에 따른 의무적인 장애인 선발 및 고용 제도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91년부터 의무고용제도가 시행됐지만 고용률은 지난해까지 의무고용률 2%의 절반에도 못미치고(기업 0.39%·정부 0.78%) 있다.
분신한 최씨는 현재 강남시립병원에서 치료 받고 있는데 얼굴에 3도, 신체에 2∼3도, 전신 80% 화상을 입은 채 고 통스러워하고 있다. 치료를 받으며 의식이 약간 돌아오기는 했으나 묻는 말에 가끔 고개를 끄덕 이는 정도이다. 담당 주치의 한성환씨는 소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행상 장애인을 방치하면 주변 업소에서 항의 전화가 쇄도한다는 것이 단속하는 서초구청측의 변명이다. 장애인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거리로 나오면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 아닌 일방적인 동정의 대상이나 골칫거리가 될 뿐이다. 성한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행상 장애인의 생활 터전을 빼앗는 태도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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