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낳으면 돈 드립니다"
  • 합천·산청·함양/박병출 부산 주재기자 ()
  • 승인 2001.01.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농촌 자치단체, 인구 줄자 '출산 장려금' 지급…전입자 혜택도 '푸짐'

사진설명 이보다 더 쓸쓸할 수는 없다 : 자식·손자 모두 떠난 썰렁한 시골집을 홀로 지키는 어르신이 그릇을 씻는 모습이 애달프다

1996년 6월, 김양배당시 보건복지부장관은 '3자녀 이상에 대한 의료보험 분만급여 제한과 불임수술 가정에 주어왔던 공공주택 우선 입주권을 없애기로 했다'고 발표했다.정부가 가장일관되게, 가장 오랜기간 유지해온 정책인 산아제한을 폐지한 것이다. 그로부터 채 5년이못되어, 농촌지역에서는 오히려 가족계획을 후퇴시키기 위한 갖가지노력이 펼쳐지고 있다. '농촌 붕괴'가 가속화하는 데 따른 위기감 때문
이다.

지리산 권역인 경남 서북부 지방 자치단체들은, 개발이 안되어인구가 계속줄자 돈까지 내걸며 아기 낳기를권장하고 있다. 1970년대 초 20만명에 가까웠던경남 합천군의2000년 말 현재 주민수는 6만1천여명이다. 해마다 1천2백∼2천4백 명이 줄어들고 있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말에는 6만명아래로 내려갈 것이 확실해 보인다. 결국 합천군은 지난해를 '인구 최저점의 해'로 정하고, 인구 늘리기를 올해 중점 시책으로 선정했다.

그래도 합천군은 사정이나은 편이다. 같은 기간 함양군은 12만4천명에서 4만6천명으로, 산청군은 12만명에서 4만1천명으로 줄었다. 두 지역 인구를 합해도, 같은 경남의 중소 도시인김해시 내외동 동민8만9천명보다 적다. 인접한 거창·의령·하동 군도사정이 비슷해, 해마다 전체 인구의 2.5∼4%가 줄어들고 있다.

소규모 자치단체들은 정책적인 불이익을받는 데다 그로 인해 인구 감소가 빨라지는 악순환에 시달리고 있다.15대 총선때까지 같은 선거구였던 함양군과 산청군은,16대 총선 직전 선거법이 개정되어서로 갈라섰다. 유권자수를 짜 맞추어선거구를 조정하는 과정에서,생활권이나 지역 정서가전혀 다른함양군과 거창군, 산청군과 합천군이새로운 짝이 되었다. '어색한 만남'도 문제지만, 약세지역 주민은 덩지 싸움에서 밀리는 불리한판짜기에 더 큰 불만을 갖고 있다.선거가 지역 대결 양상으로 치달을 수밖에없어, 언제나다른 지역 출신 후보에게 당선을 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의 고민은 좀더 현실적이다. 합천군의 한 계장급 공무원은 "개발사업이나 예산 배정 때, 해당 자치단체의 세(勢)를가름하는 가장 큰 기준이 인구이다. 당장 지방교부금만 해도 인구 한 사람당 20만∼30만원이 왔다갔다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자치단체들은 몸집을 늘리기 위해 갖가지 대책을 짜내고 있다.

합천군은 올해부터 새 전입자에 대해서는 주민등록과 토지대장 등각종 등·초본발급과 쓰레기 수거 수수료를받지 않고,무료 건강 검진까지 해주고 있다. 50여 세대 규모 황토집 마을을 조성하는 적극적인 '전입유인책'도 추진 중이다. 농업기반공사가 시행하는 문화마을 사업과 연계해, 집값의 일부를지원하고, 대도시 향우회를 통해 전입 희망자를 모집하겠다는 구상이다. 함양군은전입희망자에게 빈집을 소개하고 수리비도 지원해준다. 일부 지역은 전입자를 많이 유치하는 면(面)의 숙원 사업을 우선적으로 시행하고,연말에는순위를 매겨 상금을 주기로 했다.공직자들에게는 주소 옮기기, 출향인사들에게는 '고향주소 갖기'도 권유하고 있다.주소지와거주지를 달리하는 것이 주민등록법 위반이라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는 도리밖에 없다.

인구 유입 시책에 총력을 기울이는이들 자치단체가 특히 '모시고 싶은'세대는 취학연령층이다. 몇 년 사이 경남도에서는 전체의 절반을 훨씬 넘는4백50여 개 초·중학교가문을 닫았다. 1998년 경남개발연구원연구 결과 서부 경남에서 인구가 감소하는 가장큰 원인이 2세 교육을 위한 도시전출로 조사되자, 이들 지역은 예산과 모금을 통해 장학제도 시행, 명문 학교 육성 지원에 열심이다. 실제로 거창군의 경우는 거창고등학교가 100% 가까운 4년제 대학 진학률을 보이며 명문 고교로떠오른 덕분에, 인근 군에서 천 명이 넘는 '인구'가 전입해 왔다. 심지어 거창군역시 인구 감소 지역인데도 읍소재지에 있는 거창초등학교는전교생 1천8백 명으로 군 단위 지역 중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87개 자치단체, '출산 도우미' 제도 시행

각 자치단체들은 더 쉽고 더 확실한 인구 증가책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인적 자원을 '자체 생산'하는 출산 장려 운동이다.산청군은 아기를 낳으면 군수가 축하 전보를보내고 만원짜리 '내 고장 상품권'을선물한다. 함양군은 아기를 한 명 낳을 때마다 10만원씩 지급하는 출산 양육비 지원제도를 만들었다. 합천·하동·거창군에서는 농촌 여성이 임신하면출산일을 전후해 최장 1개월까지 '출산 도우미'가 농사일을 대신해 준다.국비와 도비지원을 포함해 하루 2만1천6백원씩 최고 64만8천원을도우미 품삯으로 내준다. 이 제도는 지난해 일부 자치단체가 시범 실시한 데 이어 올해는 전국 87개 자치단체가 시행 중이다.

정부가 1961년부터 '가족계획'이라는이름으로 시행한 산아 제한정책은, 세계에 모범 사례로 꼽혔다. 30여 년 사이 가임 여성 1인당 6명에서 1.75명으로 떨어진 출산율은, 각종 사회지표 중 가장먼저 선진국수준에 진입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사망자와 출생자가균형을 이루는 대체출산율(가임 여성1인당 2.1명)을 적정 인구증가율로 잡고 있다. 돈을 대주며 출산을 장려하는 것은,심각한 이농 현상으로 가임 여성층을 도시에 빼앗긴 농촌지역이 그나마 남아 있는 여성 자원을'풀 가동'하기 위해 짜낸 묘책이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구호가, 바야흐로 '힘 닿는 대로 낳아 보자'로 바뀌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