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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F15·프랑스 라팔 '공중전'

정희상 기자 ㅣ hschung@e-sisa.co.kr | 승인 2001.03.15(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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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전투기 사업 로비전 격렬…
미국은 노골적 압력, 프랑스는 "기술 이전" 유혹


사진설명 '황금 시장' : 10조원대 무기 도입 결정을 앞두고 세계 무기업체의 방한 홍보전이 치열하다.ⓒ시사저널 백승기

한반도에서 때아닌 무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방부가 올 한 해 동안 국군전력증강사업을 위해 10조원 대에 달하는 해외 무기 도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재가로 이루어지는 사업이 8개에 총사업비 9조4천6백41억원이다. 천억원에서 5백억원 대에 이르는 국방부장관 결재 사업 추진에는 1조1천1백61억원이 책정되어 있다.

이런 상황은 국제 무기상들이 2001년 서울을 놓칠 수 없는 황금 어장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주요 무기 생산국은 한국 지사를 확장하고 주한 대사관과 자기 나라 정부 요인까지 동원해 총력 로비전에 들어갔다. 한꺼번에 천문학적 액수의 무기 도입 결정이 이루어지게 되면, 여기에 따르는 공식적인 무기 거래 수수료만도 3천억원을 웃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무기 거래와 검은 커넥션이라는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도 당연하다.

이런 잡음을 의식한 국방부는 장관이 직접 나서서 무기 도입 결정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파도처럼 밀려드는 국제 무기상과 로비스트들의 공세 앞에 국방부의 다짐은 작게만 보인다. 무기 생산국 정부까지 가세해 국력과 외교적 우위, 안보 특수성 등을 내세운 파상 공세로 한국 국방 수뇌부를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7월에 기종 결정이 예정되어 있는 공군 차세대 전투기(FX) 사업이 주요 타깃이다. 한국 공군이 4조3천억원을 들여오는 2008년까지 최신형 전투기 40대를 도입하는 것이 FX 사업이다. 공군은 통일 이후까지 내다보며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도전장을 낸 나라는 미국(보잉 사 F 15), 프랑스(닷소 사 라팔), 러시아(SU 37), 영국을 포함한 유럽컨소시엄(유로파이터 2000)이다.

이들 네 기종은 그동안 저마다 성능과 가격, 기술 이전 조건 등을 내세우며 낙점을 기다려 왔다. 보잉 사는 1970년대부터 미국 공군이 주력기로 사용해 온 F 15가 수 차례에 걸친 현장 전투에서 능력을 검증받았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걸프전 때 96대가 출격해 작전 성공률 96%를 과시했고, 최근 이라크 공습 주력 기종도 F 15였다고 자랑한다. 아울러 이스라엘·일본·사우디아라비아에 판매한 1천3백여 대가 각 나라의 주력 기종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한·미 연합방위전력을 중시하는 한국이 결국은 보잉 기종을 선택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보잉 사는 다른 경쟁 기종들이 실전에서 성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을 약점으로 물고늘어진다.


프랑스 "미국의 F 15는 구세대 기종"


사진설명 우리는 언제 저렇게 만드나…: 한국에 전투기를 판매하기 위한 로비전이 치열하다. 사진은 1998년 서울 에어쇼에 참가한 외국 항공기의 모습.ⓒ시사저널 백승기

프랑스 닷소측은 라팔이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되어 있어 조종하기가 매우 쉽고 스텔스 기능을 지닌 전천후 차세대 전투기라고 자랑한다. 프랑스 공군이 2040년까지 운용할 차세대 전투기라는 점을 강조하는 닷소측은, 한국이 라팔 기종을 선택할 경우 한국에서 합작 생산해 공동 수출하는 한편 항공 관련 첨단 기술을 대폭 이전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닷소측은 이번 사업에서 라팔의 가장 강력한 경쟁 기종인 F 15에 대해서는 '미국 공군이 새로운 차세대 전투기(F 22, JSF)를 배치하면서 도태시키고 있는 구세대 기종'이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3월 그리스에 90대를 처음 수출한 유럽컨소시엄측은 유로파이터 2000 기종이 한국이 요구하는 장·단거리 공중전 능력을 고루 갖춘 전천후 전투기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수호이(SU 37)를 내세운 러시아측은 전투 행동 반경이 3천3백km로 경쟁 기종 중 가장 넓다는 점을 들어 통일 이후까지 내다보아 가장 적합한 기종이라고 설득하고 있다. 그러나 공군과 국방 전문가들은 이들 4개 기종을 오래 검토한 끝에 사실상 F15와 라팔을 최종 경합 후보로 압축한 상태이다.


미국, 대통령·장관·의원 동원 '총체적 압박'


한국 정부는 이들 기종의 가격과 성능을 비교하고, 어느 기종을 선택해야 국내 항공산업 발전을 위한 기술 축적에 유리한지 따져 오는 7월까지 최종 낙점한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었다. 그러나 기종 결정 시점이 코앞에 다가오자 전투기 생산국들은 한국 처지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전방위 압력을 넣고 있다.

사진설명 차세대 전투기 도입 기종 후보로 경쟁을 벌이는 첨단 전투기 수호이.

특히 올 들어 미국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 F 15를 생산하는 보잉 사는 물론 새로 들어선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 의원들까지 나서 노골적으로 압력을 넣고 있다. 1월11일과 12일에는 보잉 사 공장이 있는 미국 미주리 주 출신 공화당 상원 의원 크리스토퍼 본드 일행 10여 명이 조성태 국방부장관과 국회 국방위원, 외교통상위원 들을 연쇄 면담하면서 F 15를 홍보했다. 1월29일에는 방한한 제리 대니얼 보잉 사 군용기 부문 사장이 계룡대를 방문해 육해공 3군 참모총장을 잇달아 면담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지난 2월7일 한·미 외무장관 회담 때 의제에 없던 F 15 구입을 거론했다. 미국의 파상 공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3월7일 김대통령의 방미 때 대북 정책과 무기 판매 문제를 연계할 듯한 인상마저 풍기고 있다.

보잉 사는 객관적으로 성능이 우세하기 때문에 미국 정부 인사들이 지원하는 것일 뿐이라며 자기네와 상관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든든하다는 표정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이런 흐름에 가장 당혹해 하는 쪽은 라팔 생산업체인 프랑스 닷소 사이다. 서울 용산에 한국지사를 둔 닷소 사는 최근 미국 정부까지 가세한 전방위 압력을 보고는 한국에서 미국의 위세를 절감한다는 분위기이다. 닷소 사 한국지사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한·미 관계의 특성을 잘 아는 프랑스가 이번 사업에 승산이 있다고 뛰어든 계기는 미국이 미국 공군의 차세대 기종인 F 22와 JSF를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기종을 내놓았더라면 한·미 간의 특수 관계까지 의식해 일찌감치 포기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 연말까지 승산 있는 게임이라고 자신했는데, 미국 정부의 태도를 접하면서 허를 찔린 느낌이다." 그러나 닷소측은 미국 정부의 전방위 압력이 한국 여론에 결코 좋게 작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들어 라팔이 선택되리라는 희망을 강하게 붙들고 있다.

물론 프랑스라고 해서 정부를 동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아셈 정상회의 때 방한한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김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외규장각 도서 반환 가능성을 거론하는 등 은근히 라팔을 선정해 주기를 희망했다. 같은 기간에 서울에 온 세르주 닷소 사장은 한국이 라팔을 선정할 경우 합작 생산 수출은 물론, 전세계 비즈니스용 개인 제트기 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는 닷소 사가 한국에 민간 개인 비행기 합작공장도 설립할 용의가 있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미국이 그동안 한국에서 무기 판매의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지만 한국 항공산업 발전을 위한 핵심 기술을 제대로 이전한 적이 없었다는 약점을 파고든 것이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올 들어 미국만이 아니라 프랑스 정부와 군도 로비를 시도했다. 지난 2월 초에는 프랑스 국방부와 닷소 사가 공동으로 한국 국방위원 전원에게 닷소 사 공장 시찰 명목으로 초청장을 보냈다. 그러나 일부 국방위원들이 시기가 민감하다며 집단 보이콧하자고 주장해 성사되지 않았다.

보잉 사와 닷소 사는 저마다 한국 하늘을 자사 전투기로 누비겠다며 한국민을 상대로 한 홍보에도 열심이다. 지난해 가을 닷소 사의 라팔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한국인들이 프랑스가 첨단 전투기를 생산하는 국가라는 점을 잘 모른다고 판단한 닷소 사는 지난해 11월3일 방영된 KBS <도전 지구탐험대> 프로그램에 라팔 전투기를 선보이는 데 성공했다. 당시 탤런트 김 아무개씨가 출연해 라팔 전투기를 타고 각종 공군 훈련에 도전해 성공하는 모습이 방영되자 보잉 사는 발칵 뒤집혔다. 여기에 맞서 보잉은 지난해 11월부터 한국의 중앙 일간지에 자사 전투기를 홍보하는 전면 광고를 실어 왔다. 심지어 국방부가 발행하는 <국방일보>에까지 보잉 사 전투기 전면 광고가 등장했다. 이렇게 시작된 양사의 홍보전은 기종 선정 시기가 임박하자 양국 정부와 군 관계자까지 가세한 불꽃 튀는 로비전으로 격화한 것이다.


"11월 한·미 안보협의회 마친 뒤 기종 정해야"


최근 군 안팎에서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둘러싸고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우선 투명성이다. 율곡사업 비리와 린다 김 사건 등에서 드러났듯이 무기를 도입할 때마다 정부는 결백을 강조했지만 커미션과 로비자금 수수를 둘러싼 부정부패로 얼룩진 역사를 갖고 있다. 공식 커미션만도 3천억원대에 이르는 올해 무기 도입 사업이 벌써부터 걱정을 낳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경민 교수(한양대·국제정치학)는 "국방부는 말로만 투명성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이번만큼은 민간 대표들도 참여시켜 밀실 담합 결정을 막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복잡한 이 시기에 굳이 무기 대량 도입 결정을 내려야 하느냐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특히 공화당이 집권한 뒤 군·산 복합체로부터 신세를 진 부시 정부가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한반도 정책을 무기 구매와 연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때에 무기 도입을 서둘러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무기를 구매할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사는 쪽 마음인 만큼 도입 시기를 아예 늦추자는 제안이 국방부 내에서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최소한 오는 11월에 열리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 회의를 마친 뒤에 기종을 결정하는 것이 잡음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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