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전쟁' 피었습니다
  • 권은중 기자 (jungk@e-sisa.co.kr)
  • 승인 2001.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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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행자부, '월드컵 무궁화 심기 사업' 놓고 티격태격




지난 5월11일 행정자치부·부산시·대전시 공무원 10여 명이 서울 가회동 '함께하는 시민행동'(시민행동) 사무실을 찾았다. 지난 4월 시민행동은 행정자치부의 무궁화 심기 사업을 최악의 선심성 예산 낭비 사례로 선정해 '밑빠진 독 상'을 수여했었다. 이 날 행자부 공무원들은 무궁화 심기가 선심성 행사가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고 시민행동에 반론 게재와 수상 취소를 요구했다. 시민행동은 반론 게재만을 수용하고 수상 취소는 거부했다.


공무원이 시민단체를 직접 찾아가 부처 입장을 설명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행자부가 이처럼 '몸을 굽히며' 시민행동을 찾은 것은 그만큼 다급했던 까닭이다. 행자부는 선심성 행정을 편다는 비판뿐만 아니라 중국산 무궁화 수입을 방조한다는 오해마저 사고 있다. 이에 대한 감사원 감사도 곧 시작될 예정이다.


사건은 행자부가 지난해 2월 월드컵을 앞두고 전국토공원화 사업의 하나로 무궁화 심기 사업계획을 세우면서부터 시작되었다. 2002년 월드컵 전까지 모두 5백50억원을 투입해 무궁화 2백72만 그루를 전국에 심을 계획이었다. 예산이 많이 투입되자 무궁화 관련 업자들이 이익을 챙길 궁리를 했다. 또 전직 대통령들과 미국에 진출한 프로 야구 선수를 회원으로 영입했다고 광고하는 무궁화 선양 단체들도 생겨났다.


무궁화 사업 벌이자 중국산 수입




정부가 무궁화 심기 사업을 벌인다고 하자 국내 무궁화값이 뛰었다. 그러자 지난해 10월 무궁화 보급운동을 벌여온 사단법인 대한무궁화중앙회 홍보처장이 대표로 있는 한 업체가 중국 무궁화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중국 산둥 한국인 농장에서 22만 그루를 수입해 전국적으로 6만주를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산 무궁화는 그루당 국산(키 2m 기준 9천원)보다 싼 3천원 정도여서 마진이 크다.


국내 무궁화 운동가들과 묘목상들이 일부 지자체가 중국산 무궁화를 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우리 꽃을 중국에서 사다 심는다는 정서적 반감도 작용했지만 실제로 중국산 무궁화에는 결함이 있었다. 중국산 무궁화는 식물검역법상 흙을 묻힌 채로 들여올 수가 없다. 따라서 뿌리를 소독해야 한다. 검역 절차를 거치면서 중국산 무궁화는 뿌리가 잘리거나 방치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중국산 무궁화는 추위에 약하다. 행자부측은 이런 이유로 부산·경기도 등 일부 지자체가 심은 중국산 무궁화는 개화도 하지 못하고 90% 이상 말라 죽었다고 밝혔다.


또 여름꽃인 무궁화는 25℃ 이상 온도가 유지되는 7월에야 꽃이 핀다. 그러나 월드컵 기간은 5월31일부터 6월 한달 간이다. 따라서 대회 기간에는 무궁화꽃을 볼 수 없다. 행자부는 16억원을 들여 온실에서 무궁화를 일찍 꽃피우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시민행동은 중국산 무궁화를 둘러싸고 업계가 시끄러웠던 것이 행자부가 묘목의 수요와 공급을 정밀하게 예측하지 않고 사업을 벌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시민행동 정창수 팀장은 "별 준비 없이 5백50억원을 투입해 월드컵 기간에 꽃이 피지 않는 무궁화를 전국에 심고, 조기 개화까지 시키려는 것은 예산 낭비의 전형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행자부는 이미 무궁화 사업이 지난 20년간 진행되어 왔고, 전국체전 같은 행사에서도 조기 개화된 꽃을 해마다 사용했는데, 유독 이번에만 왜 문제를 삼느냐고 반격했다. 또 행자부는 지난해와 올해 무궁화 묘목 전수(全數) 조사를 했으며, 중국산 무궁화 수입은 무궁화 수요와 무관한 일부 업자의 과욕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 앞으로는 원산지를 속이고 중국산 무궁화를 한국산으로 파는 것을 철저하게 단속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행자부 공무원들은 무궁화 심기 사업이 중국산 무궁화 파동이 일어난 것을 빼고는 별 탈 없이 진행되고 있는데 시민단체와 일부 언론이 발목을 잡아 사업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행자부 의정담당관실 관계자는 "지금까지 관이 무궁화의 90% 이상을 구매해 왔고, 20년간 관련 사업을 진행해 왔다. 시민단체가 무궁화에 대해 뭘 아는가"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하지만 무궁화운동가들은 중국산 무궁화만이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제대로 심지 않고 관리되지 않는 수많은 국산 무궁화가 더 큰 문제라고 말한다. 1970년대부터 무궁화운동을 벌여온 진무상씨는 전문 업체가 아닌 일반 인부가 무궁화를 성의 없게 심으면 무궁화는 죽기 십상이라며, 모든 무궁화 행사가 이를 간과한다고 답답해 한다(위 상자 기사 참조).


무궁화는 생존하는 데 많은 햇빛과 물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성의 없이 나무를 촘촘히 심는 이른바 '밀식'을 하면 금세 죽어 버린다. 행자부도 담당 공무원 교육 자료에서 밀식을 금기 사항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지자체와 시공 업체의 성의 부족으로 밀식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완공한 인천 가좌 인터체인지에 만들어진 무궁화 동산이 그 예다. 높이 2m 무궁화 2백50여 그루 가운데 5월 현재 싹이 튼 것은 채 10그루도 되지 않는다. 바닥마저 바짝 말라 있어 그대로 방치하면 모두 고사할 상황이다. 1억원이 소요된 이 공사는 명색이 전문 업체의 작품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아직 죽었다고 볼 수는 없고 죽더라도 시공 업체가 보수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부분 지자체가 무궁화 심기 사업을 전문 업체에 위탁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민간인을 고용해 진행하고 있어 밀식과 관리 소홀이 우려된다. 한 예로 홍천군은 6억7천만원을 들인 무궁화 심기 사업 57건 가운데 45건을 군 차원에서 처리했고 12건은 수의 계약을 통해 사업을 진행했다. 공개 입찰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대한무궁화연구회 한 위원은 "추가 보수를 시공 업체가 무료로 해준다고 해도 결국은 국력 낭비다. 행자부가 사업 계획 전에 주관 부서인 산림청과 민간 전문가들을 불러놓고 꼼꼼하게 계획했다면 이런 소동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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