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좌불에 "이 뭐꼬?"
  • 합천 해인사·박병출 부산 주재기자 ()
  • 승인 2001.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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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청동불 조성에 불자들 반발…"청정 도량에 소모성 불사"


세계 최대 규모의 청동좌불 조성 계획을 밝힌 법보 종찰 해인사(주지 세민 스님)가 재가 불자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빈 속에 허세 부리는 정치판 같다' '해인사 스님들은 귀가 막혔나' 같은 비아냥에서부터 폭언에 이르기까지 당장 계획을 철회하라는 목소리 일색이다.




해인사는 지난 6월4일 오후 해인사 경내인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성보박물관 옆 공터에서 '세계 최대 석가모니 좌상 청동대불 봉안 기공식'을 가졌다. 2003년 3월 준공 예정인 이 불상은 좌불 높이 33m에 좌대 높이가 10m로, 현재 세계 최대로 알려진 홍콩 난타오 섬의 보련선원 좌불보다 불상 높이가 6m 더 높다.


조계종과 해인사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하루 수십 건씩 반대 의견이 오르고 있다. 해인사측은 해명 자료를 내고 불끄기에 나섰으나 여론은 더 악화했다. 대불 조성이 자운·성철 등 입적한 큰스님들의 뜻이었다는 발표에 네티즌들이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며 수행으로 일관했던 그들이 소모성 대형 불사를 바랐을 리 없다'고 의혹을 나타내자 '유훈 시비'로 번지고 있다.


법전 스님과 세민 스님 등 해인사 수뇌부는 예상 밖의 반발에 당황해 하면서도 계획을 계속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해인사 포교국장 종성 스님은 반대 여론에 대해 "사회 경험이 없는 스님들이 발표의 핵심을 잘못 택하는 바람에 빚어진 혼란이다"라고 해명했다. 재가 불자들을 위한 대규모 수행처를 조성하면서 신앙의 상징물을 세우는 것인데도, 불상 조성만 부각해 오해를 샀다는 것이다.


사실 해인사의 신도수련원 조성 사업은 해묵은 숙원이다. '산사 수련'을 희망하는 불자가 많은데도 해인사에는 마땅한 공간이 없다. 따라서 해인사는 성철 스님이 방장으로 있던 10여 년 전부터 박물관, 국제회의장, 재가 불자를 위한 선원 등 수련 시설 조성을 계획해 왔다. 대불은 거기에 딸린 시설이다. 따라서 청동대불 봉안은 10년 넘은 숙원 사업이라는 것이 해인사측 입장이다.


재가 불자들이 유독 해인사 대불 조성 계획에 강력히 반발하는 이유는, 해인사가 대각국사 의천·균여 등 고려 시대부터 사명대사, 경허선사, 용성·경봉·효봉·성철 스님 등 현대까지 한국 불교의 선맥을 이어 온 청정 도량이라는 상징성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불교계의 기복(祈福)과 소모성 불사가 비판받는 터여서 '법보 종찰마저…'라는 실망감이 커진 셈이다.


'45억원 시주자' 나타나자 대불 조성 서둘러


해인사가 청동대불 조성을 서두르게 된 데에는 속사정이 있다. '반가운' 시주자가 나타난 것이다. 주지 세민 스님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이 익명의 시주자는, 대불 조성 비용 60억원 중에서 45억원을 부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돈을 낸다는 사람이 있을 때 대불이라도 먼저 세우자는 생각과 시주자에 대한 '예우'로 불상 규모를 강조한 것은 있을 법한 일이다. 거액의 시주금을 낸 사람에 대해서는 '불교계 표를 의식한 정치인' '아무개 재벌' 등 갖가지 소문이 돌고 있지만 세민 스님은 '서울에 사는 평범한 남자 신도'라는 말 외에는 함구했다.


반대 여론이 인터넷을 타고 폭발적으로 확산되자 해인사 내부에서도 자성론이 대두하고 있다. ㅎ스님은 "수행자가 먼저 제기해야 할 문제점을 신도들로부터 지적당한 데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는 분위기이다. 의식 있는 승려들은 '죽비로 한 대 맞은 듯한 심정'이라고 토로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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