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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 언론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폭탄주 밀월' 끝내고 벼랑끝 대립…
검사들 손해배상 소송 제기 '봇물'

권은중·차형석 기자 ㅣ jungk@e-sisa.co.kr | 승인 2001.11.12(Mo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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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와 기자는 얼마 전까지 폭탄주 잔을 주고받던 술친구였다. 검찰 출입 기자가 되면 1년 동안 폭탄주를 5백잔쯤 마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검찰과 기자는 폭탄주를 나누어 마시며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검찰과 기자는 언제부터인가 서로 폭탄주 잔을 돌리지 않는다. 대신 기자들은 검사들을 혹독하게 씹고 검사들은 이런 기자에게 억대 소송을 걸고 있다. 칼로 물베기라던 검찰과 기자의 갈등과 견제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지 오래다. 그동안 밀월 관계를 맺어 오던 검사와 기자 들이 DJ 정권 말기에 폭탄주도 마시지 않고 이별가를 구성지게 부르고 있다.





지난 10월30일 서울지검 특수1부 이경훈 검사를 비롯한 검사 11명은 〈조선일보〉가 검찰이 업무 협조를 의뢰하는 방식으로 영장 없이 계좌 추적을 했다고 보도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10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또 지난 9월25일에는 서울지검 특수부 김인원 검사가 G&G그룹 이용호 회장의 비망록을 입수하고도 은폐했다고 보도한 〈문화일보〉를 상대로 3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대검 과장급 검사들이 〈조선일보〉를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소송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표 참조). 지난 10월24일 대검 검사 20명은 "〈조선일보〉가 우리 가운데 18명이 로비를 통해서 대검 과장에 발령되었다고 보도해 명예를 훼손했다"라며 〈조선일보〉와 담당 기자에게 1인당 5천만원씩 10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서울지방법원에 낸 것이다.


대검의 간부급 검사 20명이 한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낸 것 자체가 이례적인 데다, 소송을 낸 사람 가운데 대검 공보관까지 끼어 있어 눈길을 끈다. 검찰이 언론을 상대하는 유일한 공식 창구가 바로 공보관이다. 공보관이 소송 당사자인 검찰 식구에게 언론의 입장을 전달하며 자제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오히려 공보관이 소송을 낸 원고의 한 사람이 된 것이다. 공보관의 이런 행동에 대해 기자들 내부에서는 '지나치다'는 의견이 많다.


검찰 간부 "소송말고 언론 상대할 방법 없다"


〈조선일보〉는 문제가 된 내용을 가판인 10판에만 싣고 배달판에서는 삭제했다. 그런데 검찰이 이 가판 기사에 대해 명예훼손 소송을 낸 것이다. 〈조선일보〉의 한 관계자는 "기사를 뺐는데도 검찰이 소송을 걸었다. 가판 기사에 대해 소송을 건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라고 불만스럽게 말했다. 이에 대해 대검의 한 과장은 "몇만 부를 찍든 가판도 엄연히 독자가 읽는 신문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조선일보〉 기자와 대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 사건을 둘러싸고 불편한 말들이 오가기도 했다.


검찰과 언론의 이런 신경전은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일이다. 예전에는 잘못된 보도가 나가면 검사가 언론을 상대로 직접 소송하지 않고 부장 검사급 이상이 알아서 처리했다. 아는 기자를 통해 기사를 빼는 것도 능력으로 평가되던 시절이었다.


이런 관행을 깨고 검사들이 언론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본격적으로 내기 시작한 것은 1999년 MBC가 대전 법조 비리를 보도하면서부터이다. 1999년 4월 서울 남부지청 검사 22명은 MBC가 검찰을 부패의 온상처럼 보도해서 명예를 훼손했다고 11억원 소송을 걸었다. 소송 결과 MBC는 당시 대전지검 근무 판사 4명에게 각자 3천만원씩 모두 1억2천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게다가 대전 법조 비리 사건은 재판부가 원고의 고액 손해배상금 청구를 인정한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그 전까지 재판부는 명예훼손 손해배상금으로 적으면 몇백만원, 많아야 2천만∼3천만 원을 선고했었다. 하지만 대전 법조 비리 이후 억대에 이르는 원고의 손해배상 청구액을 인정하는 판결이 속출하고 있어 언론사 관계자들을 당혹하게 하고 있다. 법조 3륜 중 하나인 사법부 역시 대전 법조 비리 때 언론에 호되게 당했기 때문인지 언론에 결코 우호적인 분위기가 아니다.




법조인 대 언론사 손해배상 청구 소송 일지















































































소송
제기일
원고/피고 손해배상 청구액/내용 결과
1999.3.26 당시 성남지청 조영선
검사/문화방송
5억원/
'검찰 이중 기소' 보도
2심 6천만원 손배 판결,
3심중
1999.4.16 서울 남부지청 22명/
문화방송
11억원/
'대전 법조 비리' 보도
원고 일부 승소 총 1억2천만원 손배 판결, 2심중
1999.9.6 서울지검 검사 12명/
조선일보
36억원/
'검찰 감청 의혹' 사설
총 1억2천만원 손배 판결, 2심중
1999.10.19 서울지검 검사 10명/
한겨레
22억원/
'검찰 자기 식구 감싸기' 보도
원고 일부 승소 총 3천만원 손배 판결 2심중
2000.1.12 이종기 변호사/
문화방송
60억원/
'대전 법조 비리' 보도
계류중
2000.11.6 당시 서울지검 이봉상
검사/대한매일
2억원/
'감사, 변호사 커넥션'
보도
계류중
2001.8.15 안동수 전 법무부장관/
10개 어론사
19억 6천만원/
'아들 병역 비리 및 땅투기 의혹' 보도
계류중
2001.9.24 김태정 변호사/
조선일보
10억원/
'이용호씨 불법 전화 변론' 보도
계류중
2001.9.25 서울지검 김인원 검사/
문화일보
3억원/
'이용호 비망록 은폐 의혹' 보도
계류중
2001.10.24 대검 부장검사 20명/
조선일보
10억원/
'승진 앞둔 검사들 인사청탁' 보도
계류중
2001.10.27 서울지검 이귀남
부장검사/동아일보
3억원/
'이용호씨와 전화 통화'
실명 보도
계류중
2001.10.30 특수부 검사 11명/
조선일보
11억원/
'검찰의 무영장 계좌 추적' 보도
계류중


검사들은 '오보는 바로잡아야 한다'라며 법원의 이런 판결을 반기는 분위기다. 그동안 언론이 해도 너무했다는 소리가 검사들 사이에서 이구동성으로 터져 나온다. 서울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신문이 그렇게 떠들던 게이트의 실체가 밝혀진 것이 뭔가? 아무 것도 없다. 정치인이 아무렇게나 한 말을 확인도 안하고 1면 머리 기사로 올리다 선거가 끝나니까 이제 조용하다. 신기할 정도다"라고 말했다. 한 검찰 간부는 "소송말고 검찰이 언론 보도를 상대할 방법은 없다. 미국에서는 오보를 낸 회사가 소송에 걸려 망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소송에 뛰어든 것은 현직 검사뿐만이 아니다. 안동수 전 법무부장관은 10개 언론사 법인과 편집국장·기자 들을 상대로 19억6천만원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아울러 안씨는 이들을 형사 고발까지 했다. 현재 서울지검 형사4부가 각사 담당 기자를 소환해 조사 중이다. 조만간 형사 고발된 편집국장을 불러 조사하는 상황마저 벌어질 판이다. 김태정 전 장관도 지난 9월 자신의 전화 변론이 불법이라고 보도한 〈조선일보〉를 상대로 10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명예훼손 소송을 담당하는 서울지법 민사합의 25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언론 관련 명예훼손 소송이 80건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조선일보〉가 20여 건으로 가장 많은 소송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48쪽 상자 기사 참조). 한 신문사 사회부장은 "우리 회사만 이곳저곳에서 한 100억원쯤 걸렸다. 하도 걸리다 보니 다 기억도 못한다. 소송 불감증이 생길 정도다"라고 혀를 찼다.


기자들 소속사 따라 엇갈린 반응





일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검찰 내에 있는 기자실을 폐쇄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검찰 관계자들의 소송이 늘자 기자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호남 검찰의 마지막 자충수라는 비판과, 검찰이 그럴 수도 있겠다는 공감이다. 기자들의 출신 지역이나 소속 신문사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판단이 다르다. 한 법조 기자는 "검찰 기자실은 지금 정치부보다 더한 전쟁터다"라고 표현했다. 야당과 입장을 같이하는 보수 언론과 속보 경쟁을 반성하자는 진보 언론 사이에 뚜렷한 시각 차가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권 말이 다가오자 그 시각 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 그 때문에 기자들 사이에 냉기가 흐르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기자들이 내놓는 원인 분석과 처방도 다르다. 일부 기자들은 검찰이 호남 편중 인사로 인한 모든 원죄를 언론 탓으로 돌리고 있다며 흥분한다. 기자실 한편에서는 "어차피 신승남 총장 체제의 검찰은 식물이다. 신총장 탄핵도 시간 문제이고, 그렇게 되면 모든 문제가 풀린다"라는 말마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한겨레〉의 한 기자는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은 검찰이 맞을 만하니까 조진다는 태도인데 이는 옳지 않다. 검찰의 원죄와 언론의 과장 보도는 따로 풀어가야 할 별개 문제다"라고 말했다. 〈중앙일보〉의 한 기자는 "세무 조사 이후 언론이나 검찰 모두 신경이 날카롭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매파가 득세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소송이 잇따르고 의혹 부풀리기 보도가 나온다. 언론이나 검찰이 모두 숨고르기를 할 필요가 있다"라고 진단했다.


법조 기자 중 비둘기파는 의혹만 날탕으로 보도하는 취재 관행에 소송으로 제동이 걸리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속보 경쟁 시스템에서 검찰뿐만 아니라 기자도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 대검 출입 기자는 "나도 이용호 게이트 기사로 소송에 걸렸다. 다들 쓰는데 안 쓸 수는 없지 않는가. 이번 기회에 잘못된 속보 경쟁 관행이 개선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부분 기자들은 검찰의 태도 역시 지나치다는 데 동의한다. 그 예로, 사정의 핵심 역할을 하는 대검 중수부가 이용호 사건의 엠바고를 깼다는 이유로 지금까지도 기자들과 접촉하기를 피하고 있는 점을 든다. 유창종 중수부장의 개인적 성향까지 보태져 중수부가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되었다는 것이 기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한 신문사 법조캡(선임 기자)은 지금 가장 우려되는 것은 검찰과 언론과의 커뮤니케이션 단절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음지에만 있던 호남 검찰 가운데 언론의 속성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그러니까 검찰이 피해 의식만 갖고 자꾸 언론을 피하는데 이러면 둘 다 손해다"라고 말했다. 엘리트 코스만 밟았다는 신총장도 예외가 아니다. 신총장은 취임 초 평검사 방에 기자 접근을 금지하라고 전국 검찰 조직에 지시했는데, 이 지시는 아직 유효하다.


"검찰과 언론 모두 반성해야"





언론과 갈라선 신승남 검찰 총장.


따라서 검찰과 언론의 관계는 악화일로이다. 일부 대검 간부들 사이에서 기자들의 출입을 검사장급 이상인 대검 부장 방으로 제한하는 일본 검찰식 브리핑 제도를 도입하자는 논의까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검찰 내부에서는 '맨날 검찰만 조지는 기자들을 위해 혈세를 쓰면서 기자실을 운영할 필요가 있냐'며 기자실을 폐쇄하자는 여론도 높아가고 있다. 이대로 가면 검찰과 언론은 한바탕 큰 파열음을 낼 전망이다.


이에 대해 한 대법원 출입 방송기자는 "검찰이 국민 신뢰를 회복한 다음에 기자실을 폐쇄하고 브리핑 제도를 도입하면 우리도 받아들인다. 그러나 검찰은 여전히 성역으로 남아 있고 현정권에서 많은 의혹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기자실을 폐쇄하면 기자들의 반발만을 부를 뿐이다"라고 말했다.


한 검찰 간부는 "언론의 신중한 보도와 검찰의 정치 중립 모두 우리 사회의 오래된 숙제다. 이번 소송은 서로 정도를 가겠다는 결별 선언으로 봐야 한다. 이 절호의 기회를 검찰과 언론이 살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 신문사의 사회부장은 "검찰은 왜 언론이 비판하는지 반성해야 하고 언론도 무엇이 진정한 알 권리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둘 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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