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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직장인, 밤엔 암웨이 사업자

‘투잡 시대’ 다단계 판매 열풍…전문직 종사자도 ‘부업’…“인간 관계 망칠 수도”

차형석 ㅣ papapipi@sisapress.com | 승인 2002.02.26(Tue)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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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직장인이 암웨이 ‘명예의 전당’에 오른 높은 등급 회원들의 사진을 부러운 듯 쳐다보고 있다.


지난 2월6일 오후 6시. 대기업 ㅎ사에 다니는 김병민 대리(가명·33)는 퇴근하자마자 서울 강남에 있는 센트럴시티로 달려갔다. 다단계 판매업체 암웨이 사의 사업설명회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5층 설명회장은 빼곡했다. 최소한 4백명은 넘어 보였다. 대부분 직장인이었다. 김씨의 아내가 먼저 가 자리를 잡아놓고 있었다. 암웨이를 새로운 삶을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김씨 부부는 1년 반 전부터 매주 설명회에 참석하고 있다.


김대리는 2000년 7월부터 암웨이를 부업으로 삼았다. 낮에는 대기업체 정규직 사원으로 일하고, 밤이면 다단계 판매 사업자로 변신한다. 재정 담당 부서에서 근무하는 그는 회사의 자금 사정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다. 하루하루 부도 위기를 넘겨오던 회사는 2000년 6월 급기야 구조 조정이라는 칼을 휘둘렀다. 김씨는 살아 남았지만 언제까지 월급을 받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대안을 찾지 않으면 안되었다.


때마침 외삼촌이 암웨이 사업을 권유했다. 외삼촌 집에서 다른 초심자들과 함께 ‘홈미팅’을 하게 되면서 김씨 부부는 ‘열혈 암웨이족’이 되었다. 그후 김씨는 바빠졌다. 퇴근하고 나서는 거의 매일 사람들을 만난다. 1주일에 한번씩 3백~4백 명 정도 모이는 사업설명회에 참석하고, 김씨 자신이 끌어들인 회원들과 함께 홈미팅을 갖는다.


김씨가 다단계 판매를 통해 한 달에 버는 돈은 1백~1백50만 원. 제품을 판매할 때마다 암웨이가 지급하는 수당이다. 회사 월급의 절반 수준이다. 김씨는 “지난해 말 차·부장급 3백 명이 직장을 떠나는 모습을 보고 부업을 시작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외환 위기 이후 고용 불안은 일상화하고 있다. 일자리에서 밀려난 실직자는 실직자대로, 살아 남은 직장인은 또 그들대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불확실성의 시대인 것이다. 김병민 대리는 “하루 종일 컴퓨터에 주식 창을 띄워놓고 일하는 동료도 있다. 그에 비하면 여가 시간을 이용하는 나는 매우 생산적이다”라고 말했다.





피부과 전문의 최병익 원장은 “미래에 대한 안전 장치로 암웨이를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김씨가 특별한 경우는 아니다. 김씨처럼 다단계 판매에 뛰어드는 직장인이 부쩍 늘고 있다. 대기업체에서 구조조정본부장으로 근무하는 송현석씨(가명·45)도 미래에 대한 불안을 견디다 못해 다단계 판매를 부업으로 삼았다. 십수 년간 기획실에서 일하다가 구조조정본부장으로서 악역을 맡게 된 그는 ‘언젠가 나도’라는 강박증에 시달렸다. 그동안 그가 내보낸 직원이 줄잡아 천명이 넘는다. 그는 “회사가 개인의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실감했다”라고 말했다.


고용 불안 반영…30~40대 남성 회원이 30%


한국암웨이에 따르면, 2000년 9월 현재 총등록회원 60만명, 활동성 회원(한 달에 한 번 이상 제품을 구입하는 회원) 16만명이던 것이, 1년 뒤인 2001년 11월에는 총등록 회원 1백10만명에 활동성 회원 22만명으로 늘어나 급속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30~40대 남성이 전체 회원의 30%를 차지한다. 한국암웨이 박찬호 홍보부장은 “IMF 이후 고용이 불안해지면서 암웨이를 하는 30~40대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다단계 판매사업은 몇가지 새로운 특징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다단계 판매를 전업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기존 직업을 유지하면서 다단계 판매에 뛰어드는 이른바 투잡(Two-Job)족이 늘고 있다. 저소득층이나 실업자 혹은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직장인이 선호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교사·의사·회계사·기자 등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도 상당수 눈에 띈다.


서울의 한 중소기업체 이사인 지명찬씨(가명·49)도 명함을 2개 가지고 있다. 낮에는 회사 이사 직함이 새겨진 명함을 사용하고, 밤에는 IBO(암웨이에서 개인사업자를 뜻하는 용어)라고 적힌 명함을 돌린다. 회원이 된 지 3년째인 지씨는 부부가 함께 다단계 판매 사업을 하고 있다. ‘체면이 있지, 어떻게 치약이나 비누 따위를 파느냐’며 만류하던 아내도 이제는 ‘암웨이 전도사’가 되어 있다.


지씨의 핸드폰에는 ‘I HAVE A DREAM’이라고 적혀 있다. 청소년들에게 인성을 교육하는 기관을 설립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는 지씨는 “직장에서 받는 월급만으로는 내 꿈을 실현할 수가 없다. 지금은 돈 버는 재미를 넘어 사명감까지 갖게 되었다. 다단계 판매를 만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1950∼1960년대에 태어난 세대에게 일은 곧 삶의 전부였다. 일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이들은 대개 일중독증에 걸려 있다. 한때 ‘회사 인간’으로까지 불렸던 이들에게 고용 불안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다. 신경정신과 병원 ‘마음과 마음’의 정혜신 원장에 따르면, IMF 직후 급속도로 확산되었던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만성적 증상으로 일상화하고 있다.


정혜신 원장은 일상화한 고용 불안이 다단계 판매나 술, 도박에 빠지게 한다고 본다. 정원장은 “암웨이 같은 사업은 자본이 필요 없는 데다 꿈과 희망을 내세우기 때문에 위안을 받고 싶어하는 중년 남성들이 관심을 갖기 쉽다. 경제 행위라기보다는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한 선택인 경우도 적지 않다. 새로운 종교처럼 보일 때도 있다”라고 말했다.


암웨이 IBO 중에는 고소득을 올리는 전문직 종사자도 상당수 있다. 다른 의사와 함께 서울 강남과 경기도 분당에 피부과 병원 4곳을 운영하고 있는 최병익 원장도 그 중 한 명이다. 1995년 10월, 증권회사에 다니는 친구의 소개로 암웨이 제품을 쓰기 시작한 최원장은 이듬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최원장은 “일반인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나는 의사가 수입이 많은 3D 직종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수입이 안정적이긴 하지만 세상이 너무 급박하게 변한다. 의료 시장도 마찬가지다. 보험에 든다는 기분으로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다단계 판매하던 교사, 중징계 받아


김성훈씨(가명·42)는 1년4개월째 다단계 판매를 하고 있는 회계사이다. 그는 전문직이 다단계 판매를 하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 사회 인식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17년째 회계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회계사 일을 해서 번 돈 천만원보다 다단계 판매 수입 100만원을 훨씬 더 소중하게 여긴다. 그는 “이자 수입으로 월 100만원을 받으려면 은행에 3억원은 넣어두어야 한다. 나는 오로지 교육과 정보 전달만으로 3억원짜리 네트워크를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다단계 판매 열풍은 교단에까지 번지고 있다. 최근에는 다단계 판매를 하던 교사가 중징계를 받아, 사회 문제로 떠오른 바 있다. 지난해 12월 충남도교육청은 다단계 판매 활동을 해온 천안의 한 고등학교 이 아무개 교사(36)를 해임했다. 국가 공무원은 영리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금지 규정을 어겼기 때문이다.


교육청에 따르면, 이교사는 다단계 판매를 통해 1억원에 가까운 연봉을 받았고, 포상으로 받은 해외 여행을 가기 위해 수업까지 빼먹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직장인들이 퇴근 후 암웨이 물류센터에 와서 주문한 물건을 찾아가고 있다.


암웨이 열풍이 거세지자, 일부 기업체에서는 이를 규제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입사할 때 겸업 금지 서약서를 작성한다. 1회 적발되면 경고, 이후 계속적으로 활동하면 인사 조처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일과 후에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근무 기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온라인 상에는 안티 암웨이 사이트(www. antimlm.net)까지 만들어졌다. 지난해 7월, 이 사이트를 개설한 운영자 권철훈씨(가명·28)는 “주변 사람들이 처음에는 꿈이니 비전이니 하며 한참 떠들다가 1년이 채 안되어 제 풀에 지쳐 그만두곤 했다”라고 말했다. 안티 사이트를 통해 다단계 판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피해를 줄이는 방법을 일러주고 있는 권씨는 “성공한 일부 사례만 보고 무분별하게 뛰어들었다간 인간 관계를 모두 잃어버리고, 자기 자신은 황폐해질 우려가 있다”라고 경고했다.


다단계 판매로 대표되는 투잡 시대는 고용 불안 시대의 또 다른 얼굴이다. 명함을 몇 개씩 갖고 다니는 것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다만 (교사나 기자처럼) 본업을 이용해, 본업은 물론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부업이라면 심각한 본말전도가 아닐 수 없다. 이제 막 열리고 있는 투잡 시대는 새로운 윤리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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