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때려잡고 그녀가 웃네
  • 차형석 (papapipi@sisapress.com)
  • 승인 2002.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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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반·기동수사대 여형사들 ‘맹활약’



서울 동대문경찰서 강력2반 이인영 형사(28)는 지난 3월25일 새벽 3시부터 아침 8시까지 경기도 한 마을에서 강력2반장과 함께 잠복 근무를 했다. 특수 절도 혐의를 받고 있는 용의자를 잡기 위해서였다. 남녀가 함께 잠복하면 의심을 덜 받는다. 좁은 차 안에서 용의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뻣치기’에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형사들은 하염없이 용의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잠복 근무를 뻣치기라고 부른다.


살인범 체포와 마약 조직 소탕은 ‘기본’


3년 전까지만 해도 안경사로 일했던 이씨는 1999년 5월 경찰에 입문했다. 파출소 근무부터 시작한 그녀는 강력반 근무를 지원했다. 절도·강도·강간·방화·살인 5대 사건을 담당하는 강력반 업무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야전 생활에서 살아 남아야 진짜 경찰이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태권도 3단에 유도 초단인 이씨는 2001년 9월 드디어 강력반 형사 생활을 시작했다.


강력반에 가자마자 이형사는 자칫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을 해결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이화동에서 50여 일 만에 변시체가 발견되었다. 워낙 많이 부패된 뒤 발견되어 신원을 확인하기 힘들었다. 이형사는 변사자가 치아 치료를 받은 것에 착안해 치과를 돌아다니며 탐문 수사를 했다. 마침내 신원을 확인하고 피해자의 통화 내역을 조회해 범인을 검거했다. 이 일로 이형사는 강력계 여형사로서는 처음 경장으로 특진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형사는 “고참 형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라며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탐문 수사를 나갈 경우, 남성 형사에 비해 우호적으로 수사에 응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카드 절도 사건 용의자를 잡기 위해 이형사는 인천 주안 일대 PC방을 돌아다니며 탐문 수사를 했다. 용의자는 ‘떳다방’이었다(주거지가 일정치 않은 용의자를 그렇게 부른다). 이형사가 오전 2시까지 PC방을 돌아다닌 그 다음 날, 한 PC방 주인에게서 제보가 와 범인을 바로 검거할 수 있었다.





이형사는 “잠복 근무를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들어갈 때면 가끔 편하게 근무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만, 내가 중간에 포기하면 앞으로 여성 형사가 나올 길이 막힌다. 고참 형사들에게 수사 비결을 배워 인정받는 강력반 형사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현재 전국에는 여경이 2천7백12명 활동하고 있다. 경찰청 인사계의 한 관계자는 “예전과 달리 지금은 형사과 강력반에 여경이 배치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 마포에 있는 서울지방경찰청 기동수사대(기수대)도 지난해 10월 ‘금녀(禁女)의 벽’이 무너진 곳이다. 현재 형사 1백37명이 근무하는 기수대는 마약·조직 폭력배 사건 등 오랫동안 수사력을 집중해야 할 큰 사건과 신종 범죄 수사를 주로 담당한다. 관할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기수대 형사들은 전국을 무대로 뛰는 ‘전국구’ 형사이다. 기수대 12개 반 중에서 6개 반에서 여경 6명이 근무하고 있다.


기수대에서 여형사들은 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형사1계 2반은 서울 이태원을 중심으로 아랍계 외국인들이 마약 거래를 한다는 첩보를 입수해 수사에 들어갔다. 용의자는 이란인 무스타파(가명). 남자 형사들은 수 차례 미행해서 용의자가 택시를 매번 다른 곳에서 타지만 내리는 곳은 일정하다는 것을 파악했다. 최종 거주지 확인 미행은 김미영 형사(29)가 맡았다. 김형사는 무스타파가 택시에서 내리는 부근에 서 있다가 택시에서 무스타파가 내리자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무스타파는 김씨를 형사라고 의심치 않았고, 김형사를 앞질러 올라가 한 집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기수대는 용의자 거주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후 수사가 급진전해 기수대는 26명으로 구성된 내·외국인 마약 조직을 일망타진했다.


기수대 여형사의 맏언니 격인 함연자 경사(35)는 강력 범죄 수사가 “더 이상 금녀 지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검거 현장에서 격투가 벌어지는 일은 많지 않다고 그녀는 말했다. 경찰들 사이에 도는 말로 경찰은 ‘일단 무술 3단을 먹고 들어간다’. 늘 무기를 가지고 다니는 경우를 제외하고 피의자의 80% 정도는 검거에 들어가면 대부분 저항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여형사가 드물다 보니 간혹 황당한 일을 겪기도 한다. 50대 피의자가 와서 소란을 피운 적이 있었다.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었더니 ‘여자가 어디 감히’부터 시작해 ‘옛날에는 여자가 어땠다’ 하며 일장 연설을 했다”라고 황태희 형사(27)는 웃으며 말했다.


룸살롱 잠입해 ‘인신 매매 업주’ 구속


형사2계 1반에서 근무하는 이양숙 형사(27)는 서울 마포서 형사관리계에서 내근 업무를 했다. 다른 경찰처럼 교대 근무를 하지 않고, 출퇴근 시간이 일정해 비교적 편한 ‘일근’ 근무를 했지만 형사가 하고 싶어 기수대에 자원했다. “일반 내근직 경찰인 남편과 서로 근무 시간이 달라 보지 못하는 날도 많지만, 그이가 같은 경찰이어서 그런지 이해를 많이 해준다.”


‘막내’ 이주영 형사(25)의 손가방에는 특별한 물건이 있다. 화장품과 수첩이야 그 또래 여성들이 가지고 다니는 물품이지만 이씨가 열어 보여준 손가방 안에는 또 다른 ‘필수품’이 들어 있다. 수갑과 가스총이다.
이형사는 기수대에 와서 ‘짜릿한’ 형사 경험을 했다. 신분을 속이고 룸살롱에 잠입해 들어갔다. 선금에 묶여 지방으로 팔려갈 처지에 놓인 여성의 친구를 가장해 들어가 룸살롱 업주와 2시간여 마주했다. 업소 사장은 상대가 경찰인 줄도 모르고 어디어디가 돈 많이 준다면서 마구 정보를 흘렸다. 이 업소 사장은 꼬리가 잡혀 결국 구속되었다.


강력 범죄를 수사하는 일선 현장에서 여형사들에 대한 평가도 좋은 편이다. 김종석 기수대 관리반장(54)은 “남성 형사들과 2인 1조로 근무하는 여형사들은 목욕탕 가는 것말고는 모두 함께 움직인다”라고 말했다. 여형사가 필요한 수사가 점점 많아져 앞으로 6명 정도를 더 보강할 계획이라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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