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도 ‘좌파적’이다
  • 최재천 ()
  • 승인 2002.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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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의 취임 선서는 이렇다. “나는 합중국 대통령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나의 능력의 최선을 다하여 합중국 헌법을 보전하고 보호하고 수호할 것을 엄숙히 선서(또는 확약)한다.”(미국 헌법 제2조 제8항) 우리 헌법도 취임 선서를 정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과 복리의 증진 및 민족 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제69조) 또한 우리 헌법 제66조는 대통령의 ‘헌법을 수호할 책무’(제2항)까지 정했다. 미국이나 우리나 헌법을 준수하고 수호하는 것이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임을 알 수 있다.


119조 2항·120조 1항이 대표적 사례


일반인의 생각과 달리 우리 헌법에는 사회국가적 요소, 요즘 어법으로, 특히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일부 대권 주자의 논법으로 말하면 ‘좌파적’ 내용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먼저 헌법의 경제 조항을 보자. 헌법은 사유재산권을 보장하고 시장 경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어느 정도 사회국가적 요소를 도입하고 있다.

헌법 제119조 제2항이 가장 대표적인데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까지 되어 있다. 이 규정의 ‘위험성’을 충분히 이해한 일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이 조항을 고치기 위한 개헌을 주장할 정도이다. 이러한 사회주의 성격을 띤 시장 경제 질서는 우리 헌법에서 ‘자연자원의 사회화’(헌법 제120조 제1항) ‘경제계획’(제120조 제2항 후단) ‘중소기업 보호 육성’(제123조 제3항 제5항) 등을 통하여 구체화되어 있다.




우리 헌법 기본권 보장 조항에도 사회국가 원리가 광범위하게 포진한다. 그래서 대통령이라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는 것 못지 않게 사회 국가를 건설할 수 있도록 국가의 정책 방향을 정해야 할 의무가 있다(허 영<한국헌법론>). 헌법이 ‘국가는 사회 보장·사회 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가 있다’(제34조)고 정하고 국가에게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 향상 정책 실시 의무, 국가의 주택 개발 정책에 의한 쾌적한 주거환경 조성, 모성 보호와 여자의 복지 및 권익 향상 의무 등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본보기이다.

이렇듯 우리 헌법은 경제 질서나 기본권 보장에서 어느 정도의 사회적 요소 또는 사회국가적 원리를 도입하여 극단적인 자본주의 위험성으로부터 경제 주체와 시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것을 그 목표로 삼는다. 그런데도 일부 경제 정책을 놓고 좌파적 정책이라며 몰아붙인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에 대해서는 실용주의의 전형이라고 극찬하면서도 헌법에 근거한 정책에 대해서는 경직된 이념의 잣대를 들이댄다.

급기야는 헌법이 ‘연좌제 금지’와 ‘사생활 비밀 보호’를 정하고 있는데도 거기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온갖 비방이 검증을 핑계로 난무한다. 원래 좌파와 우파는 단순한 좌석 배치 형태에서 비롯된 우연일 뿐이었다. 헌법이 정한 직책인 대통령에 출마해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선서할 사람들이 헌법에 대해 무지하다.
변호사 (법무법인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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