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청계천’은 아찔했다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2.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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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개 구간 안전 실태 점검/교각·상판 부실, 구조적 결함 ‘심각’
청계천이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시장에 입후보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면 임기 내에 청계천을 복원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자, 김민석 민주당 후보는 교통·환경 대책을 마련한 뒤에 시민 동의로 추진해도 늦지 않다고 맞받아쳤다. 취재팀은 복원 논란이 되고 있는 청계천 내부 복개 구간의 안전 실태를 점검했다.





복개 도로 밑 지하 청계천을 찾기는 출발부터 쉽지 않았다. 서울시 산하 건설안전관리본부의 청계천 구조물 담당자는 예정에도 없는 출장을 간다고 핑계를 대며 기자를 따돌렸다. 청계천 복개 구간의 유지·보수를 맡고 있는 성동 도로관리사업소 관계자 역시 ‘선거 때문’이라며 청계천 복개 구간 안내를 사양했다. ‘청계천 문제’가 선거 정국에서 민감한 현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취재팀은 청계천 내부 시설물 사정에 밝은 콘크리트 건축 구조물 전문가 정동양 교수(53·공학박사·한국교원대 기술교육과)의 안내로 6월7일 지하 청계천 탐사에 나섰다. 청계천은 1955년부터 1978년까지 무려 2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복개되었다. 광화문에서 광교를 거쳐 마장동 신답 네거리 마장철교 부근 하류까지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복개 구간만 총 5.5km에 달한다. 6월7일 아침, 취재팀은 중랑천과 합쳐지는 마장철교에서부터 출입구가 있는 청계천 3가까지 복개 구간 약 4km를 거슬러올라가기로 했다. 마장철교 부근은 1970년대에 시공한 구조물이어서 상대적으로 안전할 것이라고 여겨 전문가들조차 안전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 왔다.



오전 9시30분, 청계천 복개 구간으로 들어가는 마장철교 인근 하천은 운동화를 신고 건너기 어려울 정도로 하천수가 많이 흘렀다. 모래와 자갈로 뒤덮인 청계천의 밑바닥에서 솟아나온 물이었다. 아직까지 청계천이 하천이라는 증거였다.



입구에서 멀어져 갈수록 복개 구간 내부는 손전등 없이는 길을 찾기 힘들 정도로 어두웠다. 마치 거대한 하수 터널을 지나는 것과 같았다. 복개 구간 내부는 차량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입구는 너비가 80∼90m는 족히 되어 보였다. 복개 도로를 떠받치는 교각들이 열을 지어 서 있고, 천장 격인 복개 도로 부분에는 도로 상판들을 연결하는 보가 설치되어 있다.



바닥에는 상류에서부터 흘러 내려온 질 좋은 모래가 잔뜩 깔려 있고, 그 위로 차량이 드나든 흔적들이 있었다. 불법으로 모래를 채취하는 차량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나중에 내부 공사 현장에 투입된 굴삭기와 트럭이 남긴 자국인 것으로 밝혀졌다.



복개 터널 구간의 양쪽 끝에는 서울시가 시공한 하수관로가 따로 설치되어 있다. 하천의 제방 격인 양안(兩岸)에 하수가 흐를 수 있도록 콘크리트 상자 형태의 구조물을 이어 붙였다. 하수가 흐르는 일종의 수로(水路)인 셈이다. 기존 하수관로 용량이 부족해 한쪽에 하수관로를 또 하나 만들었다.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에 하수관로는 공사장 인부와 사람이 통행하는 인도 구실을 했다.






“1년 내내 보수 공사 하고 있다”



그러나 외부의 하수구와 복개 구간 하수로가 엉성하게 연결되었거나 구멍이 뚫린 모습이 더러 눈에 띄었다. 이 때문에 곳곳에서 흘러내리는 썩은 물이 악취를 뿜었다.
복개 구간의 기둥과 상판 등 구조물들은 겉으로는 도로를 떠받칠 만큼 튼튼해 보였다. 그러나 성북천과 합류 지점인 신설동 부근을 지나자 녹슨 철근이 앙상하게 드러난 상판과 교각 기둥이 나타났다. 기둥 사이 사이에 청계 고가 도로를 떠받치는 대형 교각도 눈에 띄었다. 서울시 북부도로관리사업소가 유지·보수를 맡고 있는 ‘청계 고가 도로’는 마장동에서 남산터널까지 총 5.8km에 달한다.



청계 고가 도로가 지나는 복개 구간에는 보수 공사를 하는 장비와 인원이 많아 마치 대규모 토목 공사 현장을 방불케 했다. 곳곳에서 부실공사의 흔적들을 땜질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보수 공사를 맡고 있는 ㅇ토건의 한 인부는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곤 1년 내내 보수 공사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보수 공사는 주로 상판에서 부식된 철근 주위를 걷어내고 콘크리트를 덧씌우는 작업이다. 복개 도로 상판은 맨눈으로 보기에도 철근과 철근 사이를 콘크리트로 제대로 메우지 않아 갈라지고 터진 곳이 많았다.
처음 복개할 때의 부실을 보수공사 업체들이 하루가 멀다고 계속 보강하고 있는 셈이었다. 녹슨 철근이 밖으로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 거의 모든 구간의 복개 도로 상판과 기둥 부위의 콘크리트 피복 단계에서 부실 공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완전히 걷어내고 땜질 처방을 한다 해도 상판 내부에서부터 콘크리트 부식과 균열이 진행되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듯했다. 특히 지하 하수로에서 나오는 가스와 습기가 콘크리트 부식 속도를 더 높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보강 공사 현장을 지켜 보던 정동양 교수는 “콘크리트를 덧씌우는 방법은 미봉책일 뿐이다. 철근의 녹을 완전히 제거하고 아연 도금을 한 뒤 새로 콘크리트를 타설해야 한다. 공사를 할 때는 기존 철근 콘크리트와 새로 만든 특수 몰타르가 잘 엉겨붙도록 복개 도로 차량 진출입을 완전히 차단해 진동을 막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교각 기둥의 윗 부분과 밑둥뿐만 아니라 중간부까지 보강 공사를 해 누더기가 된 교각도 여럿 눈에 띄었다. 이런 교각 기둥들은 원래의 모습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수술을 받은 흔적이 역력했다. 복개 도로 구간을 이런 교각이 떠받치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고가 도로 교각과 복개 도로 상판의 구조적인 결함도 드러났다. 고가 도로를 지나는 차량들의 진동이 그대로 복개 도로에 전달되어 교각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고가 도로 교각과 도로 상판의 피로와 부식이 가속화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맞붙어 있는 고가 도로 교각과 복개 도로 교각을 분리하고 빈 공간을 실리콘 같은 물질로 메우는 작업이 시급했다.






덧씌우기 공사 등으로 도로 붕괴는 막아



출발한 지 2시간이 지난 오전 11시30분께 청계 7가 복개 구간 통로가 좁아지고 하천 밑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의 높이도 줄어들었다. 상가가 많은 이곳에서는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환풍기 구실을 하는 조그만 구멍 바닥은 사람들이 버린 담배 꽁초와 쓰레기로 넘쳐났다. 복개 구간을 가득 메운 모래와 쓰레기를 제대로 수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홍수를 맞는다면 한순간에 물이 역류해 도로 위로 넘칠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청계 7가에서 3가까지 복개 도로 구간에서도 역시 땜질 처방한 교각과 도로 상판을 볼 수 있었다. 그나마 도로 밑의 복개 구간을 지속적으로 유지·보수하고 있기 때문에 청계 고가 도로와 복개 도로가 무너지는 최악의 사태는 막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정동양 교수는 “부식된 부분을 콘크리트로 덧씌우기하는 현재의 보수 공사만으로는 5.5 km 전구간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복개된 전구간을 엑스레이 찍듯이 내부 촬영해 샅샅이 조사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이 안전 점검을 한 결과에 따르면, 청계 3가∼광교 지역에서도 부실 공사 흔적이 역력하다고 한다. 특히 복개 도로의 교각 기둥 뿌리와 기둥 머리, 상판보의 부식 상태가 심각했다. 초기에 시공한 철근 콘크리트가 매우 불량해서 지속적으로 보수하더라도 전체적인 구조물 안전을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울시는 해마다 20억원을 들여 청계천 복개 구간과 고가 도로를 계속 보수하고 있다. 그러나 하천은 치수과가, 하수 관리는 하수계획과가, 복개 도로의 지하 구간은 성동도로관리사업소가, 고가 도로는 북부도로관리사업소가 따로 관리하는 실정이어서 청계천 전체의 현황조차 파악하기 힘든 형편이다.



지난 6월7일 취재팀이 들여다본 지하 청계천에서는 어둠을 밝히고 부실을 땜질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마치 재난당한 도시의 복구 현장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그 위 고가 도로와 복개 도로에서는 수많은 차량이 그런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질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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