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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교황청이 나섰을까

성가롤로병원 사태 직접 조사…수도자들의 갈등·항명에 ‘경고’

순천·소종섭 기자 ㅣ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5.01.03(Mo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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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28일 오후 5시. 성가롤로병원 4층 대강당에서는 병원장 박정숙(세례명 아그리피나) 수녀 퇴임식이 열렸다. 박씨는 “순명(順命)이라는 단어를 생각한다”라며 감정을 억눌렀으나 “우리는 수녀님을 잊지 못할 것이다”라는 한 직원의 송사를 들으며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박씨의 퇴임은 지난해 12월22일 이 병원 상부인 까리따스 수녀회 한국 관구가 퇴임을 지시하는 한 장의 팩스를 보내옴으로써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박씨는 약재부장 박 아무개 수녀와 대립각을 세워온 인물이다. 약재부장 박씨 또한 12월30일 전남 광주에 있는 까리따스 수녀회 한국 관구로 인사 이동 되었다.

외부에 리베이트 횡령 의혹 사건으로 알려진 ‘성가롤로병원 사건’의 막후에는 까리따스 수녀회 수녀들 간의 내부 갈등이 있다. 한 신부가 이 병원 노조 관계자에게 “깊이 들어가면 천주교회가 다치니 약재부장 박씨에 대한 고소를 취하해 달라”고 말한 것은 이 사건이 갖고 있는 또 다른 폭발력이 무엇인지를 예상케 한다. 사건이 병원 울타리를 넘어 까리따스 수녀회 한국 관구와 천주교 광주대교구에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다.
성가롤로병원에 근무하는 한 수녀는 “가톨릭계에 회의를 느낀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드러내놓고 해결해야 하는데 체면을 생각해 쉬쉬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곪아터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1년 전만 해도 이만한 공동체가 없다고 평가되던 이 병원은 지금 수녀 60명이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기를 두려워할 정도로 갈등이 심해진 상태이다.

병원장·약재부장 대립이 파국의 씨앗

병원·노조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이번 사건이 본격화한 것은 병원의 ‘병’자도 모르던 박정숙 수녀가 1997년 병원장으로 온 뒤, 22년을 이 병원에서 근무해 병원 안팎 사정에 밝은 약재부장 수녀 박씨와 리베이트 문제로 갈등하면서부터다. 병원·제약 업계 사정에 어두웠던 병원장 박씨는 2001년 한 모임에 갔다가 ‘제약업체와 도매상·병원 간에 리베이트가 오가는 것이 업계 관행’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약재부장 수녀를 믿었던 병원장 박씨는 도매상이 약재부장 수녀를 속이고 있다고 보고 도매상을 바꾸라고 지시했으나 약재부장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도매상을 바꾸는 문제를 놓고 갈등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지난해 6월 병원장 박씨가 우연히 한 제약회사 직원으로부터 약재부장 수녀가 리베이트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뒤부터 심해졌다.

업계 사정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병원장 박씨가 약품 구매 과정을 알아보고 직접 제약회사 직원과 약국 직원을 만나 사정을 파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병원장 박씨와 가까운 수녀들도 8개 제약회사 관계자들을 만나 이들이 병원에 제공한 리베이트 내역을 조사했다. 병원장 박씨가 제약회사들이 병원에 주는 리베이트가 제대로 병원 경리과에 입금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병원장 수녀는 이런 내용을 관구장 수녀에게 알리고 “언론에서 알면 좋지 않으니 조용하게 약재부장 수녀를 인사 이동시키겠다”라고 보고했다. 이어 7월5일 열린 수도원 참사회에서 병원장 박씨는 약재부장 박씨에게 해고를 통보하고 동시에 약재부장이 자신의 서랍에 보관하고 있던 현금 8백93만원과 리베이트 내역을 기록한 장부를 확보했다.

그러나 이 사건 직후 약재부장 수녀를 만난 관구장 수녀는 약재부장을 복직시키라고 병원장 수녀에게 전화로 지시했다. 하지만 병원장 박씨는 “병원 직원에 대한 인사권은 병원장에게 있다”라며 응하지 않았다. 병원장 박씨는 다음 날 계속 이렇게 하면 이 문제는 법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최후 통첩을 약재부장 수녀와 관구장 수녀에게 문서로 보냈다.

병원장과 한국 관구장의 갈등은 일본 총원장과 한국 관구장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파문이 커질 조짐을 보이자 일본에 있는 까리따스 수녀회 총원(본부)에서는 병원으로 조사관을 파견했고, 병원장이 책임지고 사태를 수습하고 약재부장은 해임하라고 한국 관구장에게 지시했다. 그러나 한국 관구장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신부와 수녀는 왜 수액 교체 결사 반대했나

급기야 불똥은 까리따스 수녀회가 속한 로마 교황청에까지 옮겨붙었다. 로마 교황청은 지난해 8월 초 마크 맥브리드 수사를 파견해 조사한 뒤 일단 병원장과 약재부장을 10월 말까지 직무에서 물러나도록 했다. 교황청은 문서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문제의 주역들이 수도자 자신들이었다는 상황이 염려를 자아낸다. 병원 내에서 일어난 사건들에서 직·간접으로 주역이 된 수도자들에게 사목적 경고를 보낸다. 화해와 상호 용서의 구체적 몸짓이 따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수도자 각자에게 청빈 서원에 대한 충실성을 주의 깊게 재점검하도록 호소한다.’

이런 와중에 ‘수액 사건’이 터졌다. 성가롤로병원 간호부가 유리병 수액을 비닐팩 수액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천주교 광주대교구 순천지구 지구장인 남 아무개 신부와 일부 수녀들이 “수액을 바꿔서는 안된다”라며 수액 창고를 지키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성가롤로병원의 한 수녀는 “수액 하나를 바꾸는데 관구장 수녀와 신부까지 동원되어 막았다는 것은 무언가 커다란 커넥션이 있다는 의혹을 갖게 한다”라고 말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 김 아무개 주교도 이 일 때문에 두 차례나 병원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신부는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나중에 하자”라며 거절했고, 김주교는 연락처를 남겼지만 응답을 주지 않았다. 이번 사태 와중에 남신부는 기자회견을 하고 병원 성당의 미사를 집전하는 등 약재부장 수녀를 옹호하는 데 앞장섰다.

‘수액 사건’으로 수녀들 간의 갈등은 직원들에게까지 알려졌다. 직원들은 약재부장 수녀를 인사 이동시킨다면 가만히 있겠다는 입장이었으나 11월 초 약재부장 수녀가 직무에 복귀하자 11월6일 직원 비상총회를 열어 대응책을 모색한 뒤 12월7일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약재부장 수녀를 검찰에 고발했다. 김정수 노조위원장은 “약재부장 수녀가 퇴진을 거부한 것이 오늘의 사태를 불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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