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6.25는 위대한 전쟁이었다"
  • 주장환 ()
  • 승인 2000.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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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 50주년 기념 행사 성대… ‘중국에 영광 안겨준 승리한 전쟁’ 재평가
10월25일은 중국의 캉메이위안차오(抗美援朝) 전쟁 기념일이다. 이는 중국이 ‘6·25전쟁’을 공식으로 일컫는 말로 미국에 대항하고 조선을 도운 전쟁이라는 뜻이다. 펑더화이(彭德懷)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중국 인민 지원군’은 1950년 10월19일 압록강을 넘었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군 제6사단 2연대와 첫 교전을 벌여 승리를 거둔 10월25일을 기념일로 잡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 날은 중국 정치 일정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민간 조직들에 의존해 간단히 기념식을 치르는 정도였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50주년을 맞아서일 수도 있지만, 중국 정부와 언론은 마치 자신들의 전쟁인 양 부산하게 여러 가지 행사를 벌였다.

우선 국가 주석 장쩌민(江澤民)이 직접 나서서 정부 주최 기념사업들을 챙겼다. 장 주석은 10월 초, 전국의 지방 정부에 성대한 행사를 치르라고 지시했다. 또 예년과 달리 10월25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참전 50주년 기념 행사에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들을 대동해 참석했다. 10월22일에는 군부에서 ‘북한통’으로 알려지고 이 전쟁에 참전했던,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겸 국방부장 츠하오톈(遲浩田)을 단장으로 하는 ‘중화인민공화국 고위 군사대표단’을 북한에 보냈다. 여태껏 없었던 이례적인 조처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르바오(人民日報)>는 10월25일 ‘정의의 전쟁은 반드시 승리한다(正義戰爭必勝)’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캉메이위안차오 전쟁을 ‘정의의 전쟁’이라고 규정하고, 중국은 이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또 국영 CCTV 방송은 참전 초기에 전사한 마오쩌둥(毛澤東)의 아들 마오안잉(毛岸英)을 주인공으로 한 30부작 다큐멘터리 드라마 <조선 전쟁>을 방영 중이다.

중국은 왜 갑자기 한국전쟁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것일까? 아직까지는 중국이 승리한 전쟁이 아니라 단지 인민지원군이 중국 국경에서 미군이 물러나도록 하고 승리자 없이 휴전협정이 체결된 전쟁으로 평가했었다. 한때는 참전 인민군의 사상자 수(자세한 통계는 없으나 전체 참전자 90여만 명의 절반)가 너무 많아 이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와서는 완전히 바뀌었다. ‘자위 전쟁’에서 ‘승리한 전쟁’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리고 많은 언론이 아편전쟁과 비교하면서 ‘아편전쟁은 중국에 굴욕과 고통을 가져다 주었지만 캉메이위안차오 전쟁은 중국에게 영광과 자신감을 주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사 전문가 차이청위안(蔡成原) 씨는 중국 지도부의 의도에 대해, ‘당과 군의 희생을 강조함으로써 현재의 실추한 이미지를 회복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중국은 지난 20여 년 간의 개혁·개방 과정에서 당과 군에 대한 신뢰가 계속 떨어졌다. 최근에는 당 이론지 <홍치(紅旗)> 출판사 사장도 부패 혐의로 구속되었다. 군도 마찬가지여서 고위 관계자들이 부패 사건에 줄줄이 연루되었다.

중국 국제전략연구소 퍄오젠이(朴建一) 연구원은 “중국이 대대적으로 벌인 이번 캉메이위안차오 전쟁 50주년 기념 행사는 안보와 주권 문제에 관한 한 결코 타협할 수 없고 어떠한 희생도 감수할 수 있으며 심지어 가장 강력한 적국과도 싸울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덧붙여 그는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이 방북하기 직전 고위 군사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한 것은, 변화무쌍한 한반도 정세에서 중국의 고유한 위치를 고수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사실 중국은 김정일 위원장의 ‘통일후 주한미군 계속 주둔 가능’ 발언 등에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어려웠던 시기에 중국이 도운 사실을 망각하지 말라고 주지시키면서 북한측에 긴밀한 관계 유지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기대를 잠시 저버린 것 같다. 김정일 위원장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에 비해 하루 앞서 북한으로 달려간 츠 국방부장을 10월25일에나 만난 반면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경우 초대소로 직접 찾아가서 만난 것이다. 이를 두고 <런민르바오>는 평론 문장을 통해 ‘친구가 서방에서 왔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느냐!(有朋自西方來, 不亦樂乎!)’라고 비꼬면서 ‘고의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배은망덕하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렇다면 일반 시민들은 캉메이위안차오 전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이번 50주년 기념 활동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시민 96명을 만나서 조사해 보았다. 먼저 ‘캉메이위안차오 전쟁의 당사국은 어느 나라인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66.7%(64명)가 중국과 미국이라고 답했다. 다음으로 ‘캉메이위안차오 전쟁은 왜 발발했는가’라는 질문에 87.5%(84명)가 ‘미국이 중국 국경을 침범했기 때문에’라고 답했다. 세 번째로 ‘캉메이위안차오 전쟁은 누가 일으켰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62.5%(60명)의 응답자가 ‘미국’이라고 답했다. 네 번째로 ‘중국이 참전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는 67.7%(65명)가 ‘잘했다’, 20.8%(20명)가 ‘실수다’라고 대답했다. 다섯 번째로 ‘이번의 캉메이위안차오 전쟁 50주년 기념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대해서, 40대 이상 연령층에서는 ‘북한과는 혈맹 관계이므로 당연하다’가 대부분을 이루었다. 40대 이하 연령층에서는 ‘기념 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제한된 공간과 시간에서 적은 인원을 대상으로 행한 조사였지만, 결론적으로 대부분 정부의 입장과 유사하거나 오히려 캉메이위안차오 전쟁의 원인에 대해서는 정부보다도 더 확실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한국이 중국과 수교한 지 8년이 지났다. 그 사이 중국은 어찌 보면 대국답지 않게 북한과 한국을 오가면서 자신들의 실리를 챙기는 식의 외교 전술을 구사해 왔다. 일반 시민들 역시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중요한 것은 중국의 실리라고 생각한다. <런민르바오>가 마련한 캉메이위안차오 전쟁 50주년 기념 토론방에는 이런 글이 올라와 있다. ‘영원한 친구는 없다. 오직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이다’. 철저히 실리적인 중국이 장차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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