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
  • 연합뉴스 ()
  • 승인 2000.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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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개막식 동시 입장 이후 화합 분위기 무르익어…
“시드니의 코리언들은 이미 하나다.”
“올림픽이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너무 감격적이다. 서먹서먹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오히려 북쪽 동포들이 더 친절하고 서로 어울리는 데 적극적인 것 같다.”

새 천년 첫 지구촌 축제인 시드니올림픽 경기가 후반으로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시드니 한인 사회는 남북이 하나가 된 ‘작은 통일’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다.

개막식이 치러진 지난 9월15일 저녁, 남북 선수단이 동시에 입장하면서 싹튼 이같은 분위기는, 경기가 시작되고 시드니 현지 교민은 물론 한국에서 온 단체 응원단이 남북 선수들의 경기장을 찾아 뜨겁게 ‘코리아 파이팅’을 외치면서 점점 무르익어 가고 있다. 특히 ‘코리아’ 여자 궁사 4명(김수녕·김남순·윤미진·최옥실)이 1∼4위를 휩쓴 9월19일은 남북의 동포들 서로가 ‘한 민족 한 핏줄’임을 확인한 날이었다.

동메달을 가리는 김수녕과 최옥실의 3·4위전이 끝나자 김수녕은 최옥실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넸고, 최옥실도 축하 인사를 해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했다. 북한 선수단 임원인 장경호씨는 “(남북 간에) 이기고 지는 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라고 말해 북한 선수단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 주었다.

‘통일 분위기’는 경기장 밖으로 이어졌다. 이번 올림픽 기간에 북한 선수단과 함께 시드니를 방문해 체육시설을 시찰하고 있는 북한 체육계 및 평양시 체육시설관리국 고위 인사들은 각 경기장 시설은 물론 주요 건축물들을 둘러보는 바쁜 일정인데도 시드니 한인교민 단체가 마련한 행사에 참석해 교민들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들은 시드니의 환경 친화 건축에 상당한 관심을 표했다. 건설 부문에서 일하는 한 고위 관계자는, 대동강에 다리를 놓을 때 참고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개막식 다음날인 9월16일 시드니 산돌교회가 한인 밀집 지역 중 하나인 스트라스필드 공원에 마련한 북한 선수단 지원 바자회에는 북한의 배달준 건설상, 평양시 시설관리국 함송도 국장을 비롯한 관리국 임원들이 교민과 함께 바자회 물품을 둘러보고 교회측이 마련한 음식을 함께 먹기도 했다.
이 날 북한 정구협회 박호용 부처장은 “동포들을 만나기 위해 (스트라스필드 공원에) 왔다. 남북이 하나가 된 것 같아 좋다”라고 말했다.

9월18일 역시 한인 밀집 지역 가운데 하나인 캠시에서 열린 교포 사진가 백남식씨의 <백두산 사진전>에서도 ‘하나가 된 코리아’가 자연스럽게 연출되었다. 이번 사진전 개막 행사에는 김운룡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해 조선체육지도위원회 김영진 국장 등이 참석해 한인 교민과 함께 한민족의 성산인 백두산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함께 즐겼다.

시드니의 한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도 남한 사람들은 북한 동포들과 만나면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술잔을 나누기도 했다. 스트라스필드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가 북한 선수단 임원들과 어울리게 되었다는 교민 이수형씨는 “서로가 한인임을 알아보고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부담 없이 어우러지고 쉽게 친해지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라는 말로 화합 분위기를 전했다.
캠시의 한인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한 유학생은 남북이 너무 오래 떨어져 살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한다. 북한 선수단 임원으로 보이는 동포들이 식당으로 와 쟁반국수를 시키기에 한국식 쟁반국수를 갖다 주었더니 이들이 주문한 음식과 다르다고 말하더란다. 다시 한번 주문표를 확인하고 “이것이 쟁반국수 아니냐?”고 하자, 그 중 한 사람이 자기들이 시킨 쟁반국수를 설명하는데 듣고 보니 한국식 ‘물냉면’이더라는 것이다.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엉거주춤 서 있자, 북한 사람들은 웃으며 “이제 곧 통일이 될 텐테 이렇게 말이 안 통해서야 되갔습네까?”라고 농반진반의 말을 건넸다고 한다.

코리아에 대한 각국 기자단의 취재 경쟁 또한 치열하다. 지난 9월10일, 남북 선수단이 공동 입장하기로 공식 발표되자 이에 대한 시드니 한인들의 분위기를 취재하려고 필자의 회사로 찾아온 일본의 신문·통신 기자들은 그 뒤에도 수시로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어 왔다. 올림픽 각 경기장에서의 남북 응원이라든가 시드니 교민들의 북한 선수 접촉, 동포 사회 분위기 등과 관련한 작은 동정도 각국 언론의 취재 표적이 되고 있다.

“(남북이 화합하기가) 이렇게 쉬운 걸 그동안 왜 못했을까.” 이번 올림픽 기간에 경기보다는 북한 선수들을 보고자 경기장을 찾는다는 한 이북 출신 교민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또 “시드니 한인 중에는 북한에 고향을 두고 있는 이가 꽤 많다. 이들 역시 본국의 실향민·이산가족과 마찬가지로 큰 아픔을 겪고 있다. 올림픽의 이같은 분위기가 본국 및 북한으로 이어져 조속히 통일을 이루는 값진 기틀이 되었으면 한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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