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질 듯 말 듯 민족 분쟁 화약고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3.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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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쿠크 지역 주민 반목 위험 수위 분리 독립·외국군 주둔 등에 견해 갈려'
 
12월26일 아침 11시,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 시 다윈 거리에서 사람들이 100명쯤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절반은 투르크(터키)족이었고 절반은 아랍계였다. 두 민족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공통된 정치적 목적 때문이다. 최근 쿠르드족 일부가 추진하는 키르쿠크 자치구 편입을 결단코 막겠다는 것이다. 자신을 아랍계라고 밝힌 카렘 마흐메드 알-타이 씨(43)는 시위 현장에서 기자에게 “우리는 북에서 남까지 단 하나의 이라크를 원한다. 만약 누가 나라를 나누려고 한다면 나는 자살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투르크족인 아흐산 하메드 알-베티 씨(28)는 “쿠르드족이 키르쿠크의 노른자위를 다 차지하고 있다. 그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기자가 처음 키르쿠크를 찾은 12월 중순만 해도 이 도시는 평화 그 자체였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변화가 생긴 것일까? 지난 12월 중순 쿠르드족 지도자인 탈란 잘란바니가 “키르쿠크는 술레마니아나 에르빌처럼 쿠르드 자치구로 편입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이 파문의 시작이었다. 이때부터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던 갈등이 슬슬 터져나왔다. 쿠르드족이 키르쿠크에서 세력을 넓혀가면서 투르크족과 아랍족들 사이에 불안감이 점점 확대된 것이다. 한 투르크계 시위 참가자는 “우리는 이라크 국기를 먼저 내걸고 다음에 투르크기를 거는데, 쿠르드족들은 오직 쿠르드기만 건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시위 참가자는 “쿠르드족의 뒤에는 미국이 있다. 지금 키르쿠크는 마치 시한 폭탄과 같다. 언제 갈등이 폭발할지 모른다”라고 주장했다.

한 투르크계 학생은 지난 12월23일(화요일) 있었던 키르쿠크 기술대학 사태를 들먹였다. 키르쿠크 기술대학 학생회장이 쿠르드족인데, 그가 학교 건물에서 이라크 국기를 내리고 쿠르드 국기만 거는가 하면, 투르크계 학생회 모임을 방해하기 위해 강당의 전원을 끄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 성난 아랍계-투르크계 학생들이 달려들자 그 학생회장이 권총을 꺼내들고 발포했고, 급기야 경찰이 학내에 들어가 말리는 사태로 이어졌다고 한다. 이 학생은 “다 그 학생회장이 잘못한 건데 경찰은 그를 풀어줬다”라고 주장했다.

 
키르쿠크는 분명 이라크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안전한 도시이고, 주민 대부분은 저항 세력이나 반미 운동에 관심이 없다. 그러나 복잡한 민족 분쟁이 문제였다. 키르쿠크는 현재 정확한 통계 자료가 없어서 전체 인구는 물론이거니와 민족별 분포도 파악하기 힘들다. 대체로 쿠르드족이 다수를, 그 다음이 투르크계, 그리고 아랍계가 소수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전쟁 이후 해외로 나갔던 쿠르드족과 투르크족이 대거 귀향하고 있어 하루가 다르게 도시의 민족 구성이 달라지고 있다.
12월26일 오전 키르쿠크 외곽에 있는 투르크 난민촌 캠프를 방문했다. 들판에 텐트 100여 개가 가지런히 있었다. 불쑥 솟아오른 언덕에는 터키 깃발과 시아파 깃발이 펄럭이는 가운데 한 남자가 해를 등지고 실루엣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석유가 아니라 자유”

“넉 달 전부터 이라크 각지에서 투르크족이 키르쿠크로 모여들었다. 모두 사담 시절에 강제로 쫓겨났던 난민들이다. 현재 1백50 가구가 모였다.” 투르크족 모디타키 씨(53)가 말했다. 그는 “우리는 키르쿠크 집문서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새 정부에 집을 되찾을 법적 권한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20년간 이곳에서 정착해온 아랍인들이 순순히 집을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샴스 알딘 씨는 “4일 전 밤에 누군가가 이 난민촌에 기관총 20여발을 쐈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랍계의 짓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쿠르드족에 대항해서는 연합전선을 펴는 아랍계와 투르크계이지만, 돌아서면 또 서로 부딪친다.

 
기자가 난민촌을 둘러보던 12월26일 오전 11시께 이라크 과도통치위원 중 한 사람인 상굴 샤푹이 수행단을 이끌고 이곳을 방문했다. 투르크계를 대표하는 그녀는 “과도통치위원회와 미군행정청(CPA)에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군은 너무 천천히 행동한다”라고 말했다. 쿠르드 지도자 잘란 탈란바니의 자치 독립 주장에 대해서는 “단지 그의 상상일 뿐이다. 불가능하다. 이곳은 쿠르드 땅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그녀는 정치인답게 난민 가족과 사진을 한 장 찍고 사라졌다.

텐트가 너무 가지런하게 세워져 있어서 누가 이들을 지원하고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난민들은 “투르크자파당(PTJ)이 도와준다”라고 말했다. 1주일 전 기자가 쿠르드계 집을 방문했을 때 시완 씨(74)가 “투르크자파당은 터키의 스파이다”라고 주장한 기억이 떠올랐다.
키르쿠크의 주도권 다툼에서 가장 열세인 집단은 아랍계이다. 키르쿠크 변두리의 아랍인 거주 지역에 가보았다. 언덕에 코란의 한 구절을 새겨 넣은 표지가 보였다. 이 마을에 사는 한 아랍인은 “그냥 조용히 살고 싶다. 아랍계 정치 조직은 드물다”라고 말했다.

아랍계 신도가 많은 알-테메미 모스크를 찾아가 보았다. 이 모스크의 지도자(이맘)인 사이드 압드 알-파타 씨는 “우리는 힘이 있다. 이라크인들이 분리독립주의자들을 막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군 파병에 대해서 “미군을 비롯해 어떤 군대의 주둔도 반대한다”라고 말했다. 키르쿠크 시에서 이렇게 단호하게 외국군 주둔 반대를 과감히 말하는 사람을 기자가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시아파 지도자인데도 “후세인이 잡혔기 때문에 더 이상 외국 군대가 있을 필요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통신 사업을 하는 쿠르드족 셔완 씨(31)는 “모든 문제는 기름 때문이다. 여기에 석유가 없다면 사실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덧붙여서 “만약 이라크인들이 석유를 원한다면 우리는 석유를 그들과 나눌 용의가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석유가 아니라 자유다. 이라크가 쿠르드인들에게 자치를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봉기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겉으로 평온해 보였던 키르쿠크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군 3천여명은 2004년 4월부터 바로 이런 곳에 주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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