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CNN, 한반도 주목한다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4.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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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자지라 방송국 르포/북한 핵 문제 취재 위해 도쿄 지국 3월 개설
 
“10분 전 바그다드에서 대형 폭발 사고가 터진 것 같습니다.” “이런! 장소가 어디야? 사상자 숫자 확인해! 속보 자막 올리고… 현지 화면 들어오고 있나? 아무래도 이걸 메인 뉴스 톱으로 올려야 할 것 같으니 스튜디오 준비 서둘러!” 2003년 12월31일 저녁 9시30분께(현지 시각) 카타르 도하 시에 있는 알 자지라 본사 보도국에 비상이 걸렸다. 그 날 저녁 이라크 바그다드의 한 식당에서 폭탄이 터져 7명이 죽고 35명이 크게 다쳤다. 보도국장 이브라힘 힐랄 씨는 기자에게 “미안하다. 지금 돌발 상황이 터졌다. 나 대신 대외협력국장이 인터뷰하면 안 되겠느냐?”라고 양해를 구했다.

아랍의 CNN. 1996년 창립 이래 4천만명이 넘는 시청자를 확보하며 아랍인들의 눈과 귀를 장악한 알 자지라 방송국을 취재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란 대지진 취재를 마친 기자가 선약 없이 밤에 방문한 탓이겠지만, 연말 테러 경계령으로 방송국 출입 검문도 엄해졌다. 이날 VIP 방문도 있었다. 정문에서 영어를 못하는 경비원과 한창 실랑이를 벌이던 밤 9시께, 검은색 승용차 행렬이 기자 옆을 지나 알 자지라 본사로 들어갔다. 경비원은 잔뜩 긴장해 부동 자세로 경례했다. 카타르 외무장관인 세이크 하메드 빈 자심 왕자였다.

어렵사리 정문을 통과해 본사로 들어가니 보도국 기자들은 바그다드 테러 상황을 보도하느라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보도국장 대신 아테프 달가무니 대외협력국장이 안내해 주었다. 그는 “이번 식당 폭발 사건도 알 자지라가 가장 빨리 보도했다”라고 강조했다.
2층 건물인 알 자지라 본사는 빌딩이 아니라는 점만 빼면 뉴욕 월 스트리트의 사무실을 연상시켰다. 깔끔하고 세련된 건물 뒤에 위성 송·수신 안테나가 우뚝 서 있었다. 신라 범종 문양과 비슷한 알 자지라 마크가 곳곳에 보였다. 보도국 내부 벽에 대형 세계 지도가 걸려 있고, 기자들의 책상 위 모니터에는 실시간 속보 시스템이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수십 개의 모니터가 막 입수된 바그다드 폭탄 테러 현장과 카타르 외무장관 생방송 인터뷰 영상을 교차해 띄우고 있었다. 보도국 벽 포스터에 적힌 짧은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당신이 CNN을 볼 때, CNN은 뭘 볼까?’(If everybody whtches CNN, what does CNN watch?)

보도국을 둘러보고 있을 때 “안녕하십니까?”라며 반갑게 한국말로 인사하는 아랍인이 있었다. 자말 레이얀이라고 이름을 밝힌 그는 1979년부터 1985년까지 KBS에서 일했다고 한다. “나 여의도 사람이에요.” 그는 알 자지라 창립 멤버이다. 뉴스 앵커인 그는 밤 10시 정각 스튜디오에 앉아 무인 카메라를 앞에 두고 방송을 시작했다.

알 자지라 직원은 전세계를 통틀어 1천1백명이 넘지만, 한국인 기자는 없다. 한국인 시청자도 거의 없다. 그러나 최근 알 자지라는 극동 지역 문을 두드리고 있다. 베이징 지국이 이미 문을 열었고, 오는 3월께 도쿄 지국을 신설한다. 도쿄 지국 개국을 앞두고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2003년 12월25일 알 자지라 방송과 인터뷰했다. 달가무니 국장은 “도쿄 지국을 개설하게 된 계기는 북한 핵 문제였다. 한반도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알 자지라는 카타르 왕실로부터 재정 후원을 받고 있다. 앞으로 5년간 카타르 정부가 5억QR(약 2천1백억원)를 지원한다. 홍보국장 칼리드 씨는 “방송국 전체 예산 가운데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30~40% 정도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특정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는데 독립성이 보장될까? 기자가 보도국을 탐방하던 그 시각 카타르 외무장관은 생방송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인터뷰라지만 1시간30분이 넘는 일종의 대담이었고, 중간중간에 카타르 시민과 전화 통화도 했다. 이 카타르 정부의 실력자는 방송 도중 “알 자지라는 너무 편향적이다. 항상 정부 정책을 비판만 한다”라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후원자조차도 알 자지라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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