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와티, 인도네시아 대통령 오를까
  • 金鎭華 편집위원 ()
  • 승인 1999.06.2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총선 이겼지만 정권 교체 어려워… 복잡한 선거제도 탓
총선거 전부터 메가와티가 이끄는 인도네시아 민주투쟁당(PDI-P)의 승리는 예견되었으나, 그가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은 것은 예상 밖이다. 이제 정국의 초점은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에 쏠려 있다. 총선에서 승리한 메가와티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 상식일 듯싶으나 정치 현실은 다르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도네시아의 복잡 기묘한 대통령 선거법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국민협의회(MPR)에서 간접·비밀 선거로 선출된다. 국민협의회는 국회의원 4백62명과 대통령이 임명하는 임명직 2백38명을 합쳐 7백명으로 구성된다. 임명직은 각 주에서 1백35명을 뽑고 나머지 1백3명은 군부(ARI)에 65명, 학생 및 다른 단체에 38명이 배정된다.

지난주 실시된 총선은 국회의원 4백62명을 뽑는 선거였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비례대표제로 선출된다. 즉 후보 개개인을 직접 선거로 뽑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가 입후보자 명단을 보고 그들이 속한 정당에 투표한다. 각 정당은 득표율에 따른 비례 대표 의원을 국회로 보낸다.

하비비, 자금력 막강해 어려운 상대

그렇다고 해서 비례 대표제가 모든 선거구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극단적인 예는 수도 자카르타와 농촌이 대부분인 이리안자야의 경우다. 이 두 지방에서 득표율 1위인 정당은 각각 12명의 비례 대표(국회의원)를 배정받는다.

그러나 문제는 이리안자야의 인구가 백만이며 자카르타의 인구는 천만이라는 데 있다. 야당인 민주투쟁당은 대도시가 많은 자바 섬에서 강세이고, 집권 골카당은 농촌이 대부분인 수마트라·갈라마탄·이리안자야·술라웨시 등지에서 강하다. 따라서 민주투쟁당이 자바에서 압도적 득표를 해도 농촌 지방에서 압승하지 못하면 전체 의석 수가 골카당보다 적을 수 있다.

이렇듯 복잡한 선거 절차는 수하르토 전 대통령이 집권당의 영구 집권을 위해 만들어낸 제도이다. 이 선거 제도에서 대통령에 당선하려면 국민협의회 정원의 과반수인 3백51표 이상을 얻어야 한다. 골카당은 이번 총선에서 25%만 득표하면 대통령을 낼 수도 있다는 속셈이다. 즉 총선에서 당선된 비례 대표, 대통령 임명직 의원, 그리고 군에 배당된 의원을 모두 합치고, 군소 정당 출신 의원들을 영입한다면 3백51석을 확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골카당은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해 48개 정당 중 군소 정당과 연합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골카당의 파델 무하마드 재정국장은 벌써부터 연합 작전으로 하비비 현 대통령을 차기 대통령에 당선시킬 자신이 있다고 장담한다.

30여 년의 수하르토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44년 만에 자유 선거를 치른 인도네시아 국민들에게 돌아올 선물이 현 집권당의 재집권이라면, 그것은 너무도 가혹한 ‘악몽’이 아닐 수 없다.

민주투쟁당은 총선 직전 국민자각당(PKB)·국민수권당(PAN)과 연합 전선을 폈다. 그러나 연합 전선은 집권 골카당을 패배시키려는 전술적 제휴였을 뿐 11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와는 별개 문제이다. 국민자각당과 국민수권당은 각각 대통령 후보를 낸 상태이다.
메가와티의 수권 능력 의심하는 사람 많아

총선에서 1등한 메가와티가 선두 주자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에 점차 회의론이 일고 있다. 그의 인기 기반은 빈민층과 소시민이다. 인도네시아 독립의 아버지 수카르노 대통령의 장녀로 태어난 메가와티는 아버지가 수하르토에게 축출된 이후 32년간 정치의 음지에서 살아왔다.

오랜 세월 수하르토 일족의 탐욕 때문에 빈곤과 정치 부재를 체험하며 살아온 서민들은 박해받는 여인 메가와티에게서 심리적 연대감과 위안을 찾으려 했다. 서민층의 인기를 끄는 메가와티를 정치적으로 매장하기 위해 수하르토는 96년 그를 민주당(PDI) 당수 직에서 강제 축출함으로써 ‘고난받는 여인상’을 서민들 마음 속에 더욱 깊게 자리매김해 주었다.

말수가 적고 차분한 메가와티는 부잣집 가정주부 인상을 줄 뿐 재야 투사의 풍모는 아니다. 조용하고 수동적인 그는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편이어서 열광적인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하는 것조차 거북해 하며, 선거 유세에도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

국민들은 부패 부정 부조리 불의 가난으로 얼룩진 50년 역사와 확실히 단절하기를 열망하고 있다. 과연 메가와티는 개혁과 변화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킬 지도자 자질과 의지를 갖춘 인물인가?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권 능력과 통치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소극적이며 강단이 부족한 여인이라고 평가 절하한다.

그가 민주당 당수 직에서 강제 축출되었을 때에도 그는 지지자들을 동원해 거리로 나서지 않고 법원을 찾았다(인도네시아 법관은 모두 대통령이 임명한다).

작년 2월 반 수하르토 학생·시민 데모가 절정에 달했을 때 학생은 물론 대학 교수·종교 지도자·퇴역 장성들이 수하르토 즉각 하야를 요구하고 나선 상황에서도 메가와티는 앞장서지 않았다. 당시 기자가 그의 집으로 찾아가 ‘왜 수하르토 하야를 공개 요구하지 않는가’ 하고 두 차례 물었으나, 그는 수하르토의 정책을 비판했을 뿐 ‘하야’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군부에까지 손짓

메가와티는 출신 성분상 기득권 세력과 완전히 단절하기 어려운 배경을 갖고 있다. 자카르타 남쪽 30㎞ 케바쿠 산 지역 넓은 동물원 근처에 있는 그의 집은 4,000㎡ 대지 위에 세워진 건평 2백여평의 2층 양옥집이다. 이 넓은 저택에서 그는 막내딸(26) 부부와 하인 및 추종자 50여명과 함께 살고 있다. 그의 두 아들은 호주에 유학했으며 그의 집은 서민 구역에 있으나 그의 생활 스타일은 여전히 ‘부유한 토후의 딸’이다.

수하르토 체제에서 제도권 국회의원으로 10년을 지내며 한 번도 투옥된 적이 없는 그는, 체제와 적당히 타협하며 적당히 살아온 정치인으로 평가 절하되기도 한다. 그가 정치에 적극 뛰어든 것은 5년 전부터이다.

자카르타 국제전략연구소 마르쿠스 미츠너 교수는 “그는 지금껏 인도네시아의 앞날에 관해 뚜렷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한 적이 없다. 수하르토가 물러간 직후 개혁 요구가 거세게 일었을 때도 그는 비켜서서 관망했을 뿐이다. 복잡 다양한 대국 인도네시아의 앞날을 이끌어갈 자질과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라고 혹평한다.

보수적 민족주의 성향인 메가와티는 군부의 정치 개입과 사회적 역할에 대해 단 한 차례 비판한 적이 없으며, 독립을 원하는 동 티모르와 아체 지방에 대한 군부의 무자비한 진압 작전을 지지해 왔다. 얼마전 그는 영국 신문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군 총사령관 위란토 장군을 부통령 러닝 메이트로 영입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언론·지식인과 관계 불편

메가와티가 오랫동안 몸담아 왔던 민주당(PDI)은 제도권 야당 3개 중 하나였다. 현재의 민주투쟁당(PDI-P)은 당수직 축출 이후 작년에 결성된 신당으로, 당내에는 친여 성향의 기득권 세력이 만만치 않게 자리잡고 있다.

메가와티는 언론과 지식인층과도 편안한 관계가 아니다. 기자 만나기를 꺼리는 그는 특히 국내 언론을 기피한다는 불평을 사고 있다.

자카르타에서 만난 한 인도네시아 언론인은 “대학을 중퇴한 메가와티는 국가 지도자로서의 통치력과 비전이 모자란다. 특히 경제에 밝지 못해 기자들과 토론하기 어려워하며, 서투른 영어 때문에 외신 기자와의 회견에서도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전달하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평했다.

그러나 메가와티의 법률 고문 목타르 부소니 박사는 최근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반론했다. “그는 용기, 특히 도덕적 용기를 갖춘 지도자이다. 정치적 비전도 있으며 경제 문제는 주위의 유능한 보좌관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것이다.”

대통령 선거는 민주투쟁당과 골카당을 주축으로 한 양대 연합 세력 간의 싸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막대한 자금과 조직력, 30여년 기득권을 바탕으로 골카당이 군소 정당들과 연합에 성공한다면 하비비는 만만치 않은 적수가 될 것이다. 순전히 산술적으로 계산한다면 그가 당선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연정 파트너 잘 고르면 당선될 수도

그러나 하비비에게도 약점은 있다. 수하르토 이후 군부가 그를 적극 지지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이번 총선에서 민의가 메가와티에게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만큼 25%밖에 얻지 못한 골카당이 해괴한 선거 제도를 이용해 또다시 집권을 시도한다면 민중은 다시 한번 거리로 쏟아져 나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현재 군부는 어느 편에도 눈길을 주지 않고 ‘의도적인 관망’ 상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혼란이 재현될 경우 개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메가와티의 당선 여부는 연정 파트너로 누구를 끌어들이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최대 이슬람 조직을 이끄는 온건파 압둘 와히드(일명 구스투르)의 국민자각당과 연합전선을 더욱 굳히고, 개혁 성향인 국민수권당 아민 라이스 교수의 지지를 끌어내지 못할 경우 골카당에게 ‘당할‘ 위험도 적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여성 대통령’을 선출해서는 안된다는 전단을 뿌리고 있는 일부 이슬람 세력을 설득하는 일과, 당내 분열을 막는 것도 그가 넘어야 할 과제이다. 과거 당수직 박탈을 둘러싼 갈등으로 당은 3파로 분열되어 있으며 그 중 퇴역 장성파는 메가와티의 자질에 대해 회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가와티의 최측근이며, 민주투쟁당 재정국장 락사마니 수카르디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메가와티 여사가 “그의 아버지와 함께 50∼60년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대통령궁으로 반드시 돌아갈 ‘숙명’을 타고 났다” 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과연 메가와티는 대통령궁을 되찾을 수 있을까. 국제전략문제연구소 유스프 와난디 소장은 이렇게 걱정한다.

“인도네시아의 차기 대통령 앞에 놓인 최대 위험은 엄청난 국민의 기대감이다. 앞으로 5∼10년은 난국의 연속이란 사실을 국민에게 솔직히 알리고 강력한 개혁 의지로 난국을 돌파할 지도자를 이 나라는 필요로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