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 전쟁 생태계 무차별 파괴 실담
  • 프랑크푸르트/허 광 (rena@sisapress.com)
  • 승인 1999.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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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공장 파괴해 독가스 유출… 베트남전과 닮은꼴
나토가 벌이고 있는 유고와의 전쟁이 제2의 베트남전쟁이 될지 모른다는 분석이 있다. 과거 미국이 압도적인 화력을 투입하고도 베트남에서 패한 것처럼 나토 역시 유고와의 전쟁에서 승산이 없다고 보는 시각이다. 아무리 나토의 공습이 지속된다고 해도 결국 승패를 가르는 것은 지상전인데, 나토가 유고의 파르티잔 전술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공습만으로 승리한 전쟁이 없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같은 판단은 무리가 아니다. 과거 서방의 식민 세력들이 피식민지였던 약소국의 민족 내부 분쟁에 개입했다는 점에서도 두 전쟁은 일치한다.

물론 전쟁 결과가 똑같이 되풀이되리라고 예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첫째, 유고 연방은 과거의 북베트남과 달리 내부적으로 취약한 정부를 갖고 있다. 유고 연방에는 최근까지 반정부 세력이 강력한 힘을 모아 가고 있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유고의 반정부 세력들은 88일 간의 가두 시위 끝에 밀로셰비치의 부정 선거를 무효로 만들고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50년 만에 비공산계 정치인을 시장으로 선출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서방측, 공습 빌미 꾸민 혐의 있다”

그간 꾸준히 힘을 모아오던 이들 반정부 세력은 이제 전시 체제에서 다시 지하로 잠적하거나 밀로셰비치 정부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유고 정부가 전시 체제를 통해 어느 정도 지지 기반을 굳힌다고 해도 안정을 찾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유고 연방이 군사적으로 고립되는 추세에 있기 때문이다. 독일 통일 이후 점차 동유럽 지역으로 세력권을 확장해 온 나토는 이제 유고 주변국들까지 주둔 지역으로 확보해 놓았다. 나토는 헝가리처럼 이미 나토에 가입했거나 알바니아·불가리아·루마니아처럼 나토 가입을 서두르고 있는 지역에 포진해서 유고를 완전 포위하고 있다. 앞으로는 나토에 새로 가입하게 되는 하위 동맹국들의 지상군이 유고 연방에 투입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처럼 유고가 처해 있는 상황이 과거의 북베트남과 다른 점을 고려할 때 두 전쟁의 유사점을 확인할 수 있는 시점은 ‘전쟁의 끝’이 아닌 ‘시작’ 시점이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할 때 북베트남이 미국 군함을 공격했다는 ‘통킹 만 사건’을 꾸며내서 베트남 공격을 합리화했다.

나토가 유고전쟁을 앞두고 이와 유사한 수법을 쓴 흔적이 있다. 지난 1월15일 코소보 지역 라카크에서 시체 45구가 발견되고 그 사진이 세르비아측의 민간인 학살을 입증하는 증거로 서방의 언론에 보도된 사건이다.

독일의 주간 신문 <디 차이트> 최근호(5월12일자)는 5면에 걸친 특집 기획에서 이 사건이 서방의 세르비아 공격을 결정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나토의 유고 공습이 시작되기까지 1년에 걸친 평화 협상의 내막을 다룬 이 기사는, 이 시체들이 코소보 알바니아계 지하 무장 조직원들이라는 세르비아측의 주장을 소개하면서 ‘이 사건을 조사한 유럽연합(EU) 대표단이 조사 결과 공개를 오늘까지 꺼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 이유인즉 ‘이 조사 결과를 발표하게 되면 세르비아측을 또다시 비난하는 여론이 일어 밀로셰비치와의 평화 협상이 지장을 받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똑같은 사진이 한편에서는 이미 유고 공습을 결정한 전환점이 되었는데 또 한편으로는 세르비아를 자극할 우려가 있어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논리가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지난 95년에 끝난 보스니아 내전에서도 나토측이 공습을 시작하기 전에는 예외 없이 ‘세르비아계의 만행’이 벌어졌다. 그렇게 벌어진 사건 중 어느 한 건도 유엔이나 국제조사단이 조사를 벌여 결과를 분명하게 발표한 사례가 없다. 이같은 의문의 사건이 반복되면서 서방 여론이 반(反)세르비아 정서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여론 조작은 유고 전쟁이 시작되는 시점까지도 되풀이되었다. <디 차이트>의 특집 기사는 코소보 문제를 다룬 랑부예 평화 협상에 대해서도 사실과는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랑부예 협상에서 서방측은 유고 연방에 사실상의 항복을 요구해서 평화 협상 중단을 의도적으로 유도했다. 서방측이 내놓은 랑부예 평화조약 7조의 부속 조항 B는 나토군이 코소보의 자치를 보장하기 위해 유고 연방 전지역에 주둔하며 유고의 법률에 구속받지 않는 일종의 치외법권을 요구했다.

이같은 요구는 전쟁 당사국 중 한 국가가 항복하고 나서 점령군이 확보하게 되는 권리이지 평화 협상 내용으로는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슈피겔> 발행인 아우구스타인은 최근호 (5월3일자)에서 이같은 조약은 ‘초등학교를 마친 세르비아인이라면 누구라도 서명할 수 없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그런데 <디 차이트>는 랑부예 조약의 군사 조항을 미국이 제안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토군의 주둔 지역이 유고 연방 전지역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실제로 랑부예 협상에서 세르비아측의 고문역을 맡았던 베오그라드 대학 교수 시미츠는 <디 차이트>에 실린 기고문에서, 이 군사 조항을 둘러싸고 유럽과 미국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고 전한다. 유럽측은 코소보 문제 해결을 나토가 아닌 유럽연합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는 것이다. 러시아까지 끼어든 논쟁 끝에 미국측은 협상 마지막 날에 그 때까지 70% 이상 합의를 보았던 조약안의 절반 이상을 고쳐서 새 조약을 내놓고 유고의 서명을 강요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이 군사 조항을 일방적으로 관철했다고 해도 유럽측이 거기에 동의했다는 책임은 면할 수 없다. 밀로셰비치가 랑부예 조약이 서방측의 ‘사기’라고 비난하며 유고가 ‘항복 문서’에 서명할 수 없다고 버틸 때도 ‘랑부예 조약이 코소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평화조약’이며 유고가 이를 거부하면 공습하겠다는 위협을 되풀이한 것도 유럽측이었다.

군사 조항이 협상에 오르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나토가 군사 조항을 타협 불가능한 최종안으로 강요했고 그래서 유고측이 협상 자체를 거부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지 군사 조항이 협상 결렬의 원인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디 차이트>의 논조는 유럽이 미국과 함께 평화 협상을 중단시킨 책임을 회피하면서 군사 조항의 문제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독일 정부의 입장을 비호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우라늄 포탄 사용, 수질·토양 무차별 오염

유고전쟁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전쟁이라는 점에서도 제2의 베트남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다.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전쟁 역사상 최초로 생태계 파괴를 군사 전략에 통합시켰다. 통킹 만을 폭격해 베트남전쟁을 시작한 미국은 베트남의 정글 생태계를 파괴하는 무기를 개발했다. 정글은 북베트남 보병에게 미군의 공습을 피하는 방어막이자 미군의 저공 비행을 숨어서 격추할 수 있는 요새였기 때문이다.

이때 미군이 개발한 대표적인 화학 무기가 황색 고엽제이다. 베트남에서 황색 고엽제로부터 나오는 독극물(다이옥신)에 감염되어 전쟁 후 괴질에 걸린 병사들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바로 이같은 베트남전쟁의 참화를 되풀이할 수 없다는 목적에서 유엔은 75년 생태계 파괴를 금지하는 전쟁국제법을 결의했다. 유엔은 ‘자연 환경을 군사적 목적으로 파괴 대상에 포함하는 행위를 전쟁 범죄’로 규정하고 이 자연 환경이라는 개념에 수질이나 토양뿐 아니라 민간인·문화재·산업시설 등 광범한 분야를 포함시켰다. 그만큼 전쟁의 피해 범위를 축소하는 데 국제적인 합의가 있었던 것이다.

유고전쟁이 이같은 합의를 깨고 생태계 전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다음 몇 가지 사실에서 드러난다. 먼저 유독 물질이 포함된 산업시설이 파괴되고 있다. 판체보를 비롯한 주요 공업 도시에서 폭탄과 미사일 공격을 받아 파괴된 화학공장에서 암 유발 물질이 대량으로 방출되고 있다. 이미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에서도 유고에서 흘러들어간 다이옥신이 검출되고 있다.

정유공장과 석유 수송관 등에서 누출되는 석유와 독극물은 하천으로 흘러들어 도나우 강에는 수 ㎞에 이르는 기름띠가 형성되었다. 하천 오염이 지속되면 불가리아·루마니아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의 냉각 시설이 파손될 위험이 있다. 주요 공업 도시의 주민들은 산업시설이 파괴될 때마다 유독 물질로 덮인 독가스 구름에 노출되고 있다. 이 중 대다수가 만성 질병에 걸리게 될 위험성을 안게 된다. 파종기인 농업지대에서 토양이 오염되는 것도 심각한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두 번째 생태계 파괴 요인은, 나토의 폭격에 투입되는 무기 자체다. 대표적인 무기가 전차 파괴용 폭격기 A10, 공격용 아파치 헬기가 사용하는 포탄이다. 우라늄 원료를 사용하는 이들 포탄은 목표물을 파괴하면서 우라늄 방사능 입자를 방출해 주변 지역의 수질과 토양을 오염시킨다. 미군이 이미 걸프전쟁에서 사용하기도 했던 우라늄 포탄은 이라크 주민뿐만 아니라 미군들 사이에도 괴질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 피해 결과를 조사한 캐나다 화학자 샤르마씨는 이라크 주민 3만5천여명이 수년 내에 사망할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 4월7일, 우라늄 포탄이 유고전쟁에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제기한 ‘국제 반핵 의사협회’는 미군측 자료에 근거해 방사능 오염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나토는 5월14일 우라늄 포탄이 유고 전쟁에서 사용될 것이라고 시인했다. 지상전이 시작되고 아파치 헬기가 투입되면 코소보 난민이 돌아가야 할 땅은 돌아가지 못할 방사능 오염지대가 될지도 모른다. 전쟁 끝나면 ‘세르비아인 대탈출’ 일어날 수도

나토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대도시에서 교통·통신 시설도 파괴하고 있다. 그 한 가지 사례는, 누전 물질을 포함한 흑연 폭탄을 투하해 한 지역 전체의 전기 공급을 두절시키는 것이다. 나토는 군수 시설에 사용되는 전력 공급을 차단하기 위해 흑연 폭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결과 유고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의료 시스템 붕괴이다. 도로·철도 시설이 파괴되어 환자 수송은 물론이고 지속적인 전기 공급이 필수인 중환자실과 신생아실도 유지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4월 말 독일에서 기자회견을 한 유고의 녹색당 대표들은 실제 유고 현지의 생태계 파괴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는 추정조차 할 수 없다고 전하고, 전시 체제에서는 환경운동가들의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오스트리아 경제학자들의 통계에 의하면, 현재 유고의 산업 생산은 89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1인당 소득은 1900년 수준으로 떨어졌다. 나토가 공습하기 이전에도 유고의 산업 생산은 매년 25%씩 후퇴하는 추세였다. 지난 10년 간의 내전과 서방의 경제 봉쇄 정책이 여기에 한몫을 했다. 이제 유고전쟁이 끝난 후 환경 오염의 결과가 드러나는 시점이 되면 세르비아에서 서유럽으로 탈출하는 난민 행렬이 줄을 이을지 모른다.

러시아는 4월 말, 유엔 개발위원회로 하여금 유고 사태를 조사하도록 하자고 긴급 제안했다. 유고에서 기간 산업 시설 파괴로 일어날 문제를 조사하고 생태계 파괴를 막는 방안을 유엔이 논의하자는 것이다. 유럽연합 대표들은 유엔의 위원회에서 유지해 왔던 관례와는 달리 표결을 하자고 요구해 러시아의 안을 부결시켰다. 서방측은 유고를 가능한 한 철저히 파괴하고 나서야 전후 유고 부흥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속셈인지 모른다.

베를린 기술대학의 환경·평화 연구원 크루제비츠는 유고전쟁이 생태계 파괴라는 악몽을 되살리고 있다고 말한다. 냉전 시기에 개발된 무기를 사용하는 전쟁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전쟁일 수밖에 없으며 ‘인도주의’라는 이름을 내건 전쟁 또한 ‘인류에 대한 범죄’라는 지적이다. 4월15일자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이 ‘인류에 대한 범죄’를 온몸으로 막으려 했던 피에르 앙리 부넬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그는 프랑스의 나토 연락 장교로서 지난해 말 나토 당국에 체포되었다. 부넬은 그가 수사받는 과정에서 쓴 편지에서 나토의 위협이 단순한 위협이 아님을 알리기 위해 지난해 나토의 공격 목표가 담긴 비밀 문서를 유고 외교관에게 넘겼다고 말했다. 그는 나토의 폭격과 그 이후에 따를 난민 추방이 가져올 비극을 막고자 기밀누설죄를 감수했다는 것이다. 유고전쟁은 그의 희생에도 아랑곳없이 시작되었다. 베트남 전쟁과 유고전쟁은 참혹한 생태계 파괴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에서는 분명히 닮은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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