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흰돌고래를 누가 죽였나
  • 토론토·김상현 (자유기고가) ()
  • 승인 2004.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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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로드의 흰돌고래 운명 30여년 추적기
미국 알래스카 주 남부의 쿡 만에 있는 흰돌고래는 해양 생태계의 급속한 변화상을 보여주는 산 증거이다. 이 연안의 카리스마적 존재로 여겨져온 흰돌고래는 지난 30년 사이 급속히 수가 줄어들어 멸종 위기에 이르렀다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해당 정부기관과 고래잡이 어부·환경운동가·생물학자 들은 저마다 그 책임을 전가하며 1990년대를 논쟁으로 보냈다.
최근 ‘네 탓’이라고 외쳐대는 논쟁의 심층을 탐사한 책이 나왔다. 낸시 로드가 쓴 <흰돌고래의 운명>이 그것이다. 이 책은 흰돌고래의 돌연하고 급속한 쇠퇴가 정말로 어디서 비롯했는지, 차분하고 냉철하게 짚어낸다. 저자는 흰돌고래에 직·간접으로 연결된 여러 기관과 단체, 과학자, 알래스카 원주민의 목소리를 주관적 첨삭이나 비판 없이 전달한다.

로드는 “처음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쿡 만의 흰돌고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내가 책을 쓰면서 배운 사실은, 흰돌고래에만 해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의 대부분이 실제로는 그 외의 다른 것들, 또는 흰돌고래를 포함한 생태계 전체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흰돌고래에 대한 로드의 남다른 관심과 열정은 몇십 년에 걸친 그녀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 뉴햄프셔 태생인 그녀는 30년 전 알래스카로 이주해 캄차카 만이 바라다보이는 인구 1만 명 안팎의 작은 도시 호머에 살면서 연어잡이로 생계를 이어왔다. 그녀는 쿡 만의 서부 해안에 그물을 던지면서 이곳에 서식하는 흰돌고래를 관찰할 기회가 많았다. 그 때문인지 그녀의 책 <흰돌고래의 운명>도 흰돌고래를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흰돌고래의 멸종 위기가 초래된 연원을 찾으려는 로드의 여정은 쿡 만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미국 시카고의 셰드 해양박물관으로부터 캐나다 퀘벡 주의 생 로랑 만, 베링 해 포인트레이 지역의 어촌인 아누피아크에 이르기까지 흰돌고래의 운명을 좇는 로드의 열정은 실로 놀랍다. 그녀의 교육적 배경이 해양학이나 생물학과 거리가 먼 인문학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흰돌고래의 첫인상은 귀엽거나 코믹한 쪽이다. 둥글고 땅딸막한 머리 부위와 웃는 듯한 입모양 때문이다. 로드는 그러나 땅딸막한 몸매에 비해 흰돌고래가 물 속에서 얼마나 우아하고 날렵한지 설명한다. 또 수족관을 통해서만 보아 온 일반 사람들이 흰돌고래의 본성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도 지적한다. “흰돌고래는 다른 고래들은 물론 어떤 해양 포유류보다 더 정교하고 민감한 생물학적 위치 감지 능력을 지니고 있다. 깜깜한 북극해에서 자유자재로 유영하고 먹이를 찾아낼 수 있는 것도, 얕은 수로에 서식처를 마련하는 것도 그러한 능력 덕분이다”라고 로드는 말한다.

<흰돌고래의 운명>은 고래 못지 않게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생물학자, 정부의 어업 규제 담당자, 원주민의 연장자들, 석유업계 대표들, 환경 문제 전문 변호사 등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예컨대 고래잡이를 생업으로 삼아 온 티오네크 원주민의 지도자인 피터 메리맨, 전문 고래잡이에서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조엘 블래치포드 같은 인물들인데, 로드가 흰돌고래의 운명을 좇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그녀는 주관적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차분하게 그들의 주장, 그들의 삶, 엇갈린 이해를 가진 사람들 간의 논쟁을 전달한다.
이를 통해 그녀는 과학자들의 모호하기 짝이 없는 이른바 ‘과학적 발견’들, 환경운동가들의 근거가 부족한 과장, 원주민들의 완고한 회의와 냉소주의 등을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녀가 거의 유일하게 직설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한 대목은 미국 국립 수산국의 미온적이고 비현실적인 흰돌고래 보호 정책이다. 그녀는 관료주의와 정치적 이해 관계, 지도력 부재 등에 의해 발목이 잡혀 수산국이 실질적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1920년 무렵만 해도 흰돌고래는 넘쳐났다. 케나이족 같은 원주민들은 1960년대까지도 마을 피크닉에 흰돌고래 바비큐를 내놓을 정도였다. 미국 오클라호마에 사는 켄 탭은 당시 흰돌고래 떼가 너무 많아 물 위에 가득 내려앉는 흰기러기떼 같았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채 100년이 안된 지금, 쿡 만의 흰돌고래는 멸종 위기에 몰려 있다. 공식적인 개체 수는 3백50~4백50 마리 정도. 멸종 위기 종 목록에 올려야 한다는 환경단체의 주장이 제기될 지경이다. 그나마 이들의 대부분이 사냥꾼과 바다 오염의 위협이 심한 쿡 만 위쪽에 집중되어 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 생존 고래들이 각기 다른 이해에 따라 대립하는 여러 이익 집단들의 정치적 볼모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흰돌고래의 현실에 대해 더 많이 알아 갈수록 로드의 심기는 불편해진다. 그녀는 책 곳곳에서 그 불편한 심사를 내비친다. 그럼에도 <흰돌고래의 운명>은 ‘고래를 보호하자’는 류의 웅변과는 거리가 멀다. 흰돌고래를 다루는 그녀의 시각은 신중하고 공평하다. 그녀는 감상에 젖지 않으며, 화를 내지도 않는다. 스스로도 “무슨 애완 동물처럼 흰돌고래의 머리를 쓰다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라고 고백한다.

역설적이게도 로드가 유지하는 냉정함과 객관적 태도는 독자들로 하여금 더 깊이 흰돌고래에 빠져들게 한다. 그녀는 흰돌고래의 운명이 곧 인간의 운명, 더 나아가 지구 생태계의 슬픈 운명이 될 수도 있음을 설파한다. 흰돌고래의 명을 재촉하는 바로 그 위협이, 먹이사슬의 맨 위에 있는 인간에게도 치명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같은 ‘상호 연관성’에서 ‘고래는 보호하되 새우는 마음대로 잡자’는 식의 대안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 <흰돌고래의 운명>이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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