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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일본은 '신흥 종교' 천국

사린 독가스 사건은 일본인들의 무신앙이 부른 비극이나 다름없다. 정통 종교 세력이 빈약한 일본의 종교 풍토가 그같은 전대미문의 사건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도쿄·蔡明錫 편집위원 ㅣ 승인 1995.04.06(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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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지하철에 사린 독가스가 뿌려진 이후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제2, 제3의 범행을 경계하듯 차내를 두리번거리는 눈동자들이 끊임없이 마주친다.

차내 안내 방송도 그런 위기감을 증폭시킨다. 신문·잡지나 빈 깡통은 선반 위에 올려놓지 말고 들고 내리라는 지시다. 특히 사린 가스가 담겨져 있었다는 비닐 주머니와 비슷한 꾸러미를 들고 전철을 타는 사람들은 마음이 불안하다. 독가스 살포 범인으로 오인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다.

올해 들어 일본은 재난의 연속이다.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신화는 1월 지진과 이번 독가스 사건에 의해 빛을 잃었다.

다행한 것은 독가스 사건이 일어난 이튿날 경찰이 신흥 종교 단체를 급습해 이번 사건과 관련돼 보이는 각종 증거물을 압수한 것이다. 특히 사린은 만드는 데 필요한 인화합물 등 기본 원료를 대량으로 발견했다.

이 종교 단체가 독가스 사건과 관련돼 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그 동기다. 다시 말해서 종교 단체가 왜 하필이면 무고한 시민을 사린 가스로 대량 살상하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오우무 신리쿄(AUM 眞理敎)’라는 종교 단체는 도대체 어떤 단체인가. 오우무 신리쿄의 ‘오우무’는 우주의 창조·유지·파괴를 뜻하는 ‘옴(aum)’의 일본식 발음이다. 이 교단이 최고 신으로 모시는 신은 바로 힌두교의 세계 파괴 신으로 알려진 ‘시바’인데, 창조·파괴와 같은 문구에서 보듯 힌두교·불교·티베트 밀교의 교리가 뒤섞여 있는 신흥 종교다.

교주의 피 마시는 데 헌금 백만엔

이 교단의 모체는 84년 교주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가 설립한 요가교실 ‘오우무 신선의 회’이다. 맹인 학교에서 지압을 배우다 상경한 아사하라가 약국을 경영하다 파산하자 생계를 위해 세운 단체로 알려져 있다.

아사하라는 신도 수가 열댓 명에 불과하던 이 요가 교실을 89년 ‘오우무 신리쿄’로 개명하고 도쿄도에 종교 법인으로 정식 등록했다. 종교 법인으로 등록하려면 예배당·교리 등 수십 가지 구비 조건이 필요한데, 때마침 불기 시작한 신흥 종교 붐을 타고 5년 사이에 종교 법인으로 등록할 정도로 급성장한 것이다. 현재 신도 수는 약 9천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단이 세인의 눈길을 끌게 된 것은 종교 법인으로 등록한 직후인 89년 10월. 마이니치 신문사가 발행하는 주간 <선데이 마이니치>가 ‘오우무 신리쿄의 광기’라는 제목으로 이 교단의 실체를 파헤치면서부터다.

이 기사에 따르면, 아사하라는 자칭 티베트 불교의 최고 지도자 달라이 라마로부터 불교의 정통 후계자로 인정 받았다고 선전해 왔다고 한다. 또 히말라야 산속에서 최종 해탈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신도들을 속여 왔다.

특히 교주 아사하라의 DNA에 특별한 성분이 들어 있다고 속여 그의 피를 마시는 의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신도들이 이 영적 에너지를 고양시키는 의식에 참가하려면 백만엔을 교단에 헌금해야 했다.

교단은 또 이 무렵부터 신도들에게 출가, 즉 재산과 가족을 버리고 교단의 집단 생활에 참가하도록 강요해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독가스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에는 공증서사와 대학생이 교단에 의해 납치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출가와 교단 탈퇴를 둘러싼 마찰이 원인이었다. 일본 경찰은 대학생 납치의 경우 즉각 오우무 신리쿄 오사카 지부를 가택 수색해 대학생을 구출해 냈다. 공증서사의 경우도 오우무 신리쿄의 범행이라는 심증을 굳히고 곧 강제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었다.
‘이상 세계 파괴하는 경찰’에 복수한 듯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 보면, 오우무 신리쿄는 국가 권력(경찰)이 자신들의 이상 세계를 파괴하려 한다는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사린이 집중적으로 뿌려진 곳은 가스미 가세키 역과 쓰키지 역이었는데, 가스미 가세키 역 주변은 일본의 관청가로서 경찰청과 도쿄 경시청 건물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또 쓰키지 역 근방은 <아사히 신문> 사옥이 있는 곳이다. <아사히 신문>은 오우무 신리쿄에 대한 비판적 보도 때문에 공격 목표로 선정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경찰 집계에 따르면, 독가스 사건에 휘말려 해를 입은 경시청 직원은 45명, <아사히 신문> 사원은 4명이다. 이런 피해 상황을 미루어 보더라도 오우무 신리쿄의 공격 목표가 경찰과 <아사히 신문>이었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오우무 신리쿄는 일종의 종말 사상을 신봉하는 교단이다. 교주 아사하라는 최근 발간된 <일출의 나라에 재앙이 다가온다>라는 책에서 97년에 아마겟돈, 즉 세계 최후의 전쟁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또 독가스 사건이 일어난 직후에는 블라디보스토크 교단이 소유하고 있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신도들에게 “죽음을 눈앞에 두고 후회 없는 삶을 영위하라”고 외치고 있다. 이렇게 보면 가이아나 인민사원 집단 자살(1978년), 브런치·데비디언이라는 미국 종교 집단의 집단 자살(1993년)처럼 집단 자살용으로 사린을 보유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경제 대국 일본에서 왜 이런 신흥 종교 단체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가. 종교 학자 시마다 히로미(島田裕巳)씨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바쿠후가 붕괴했을 때나 패전 직후에 각각 맹렬한 신흥 종교 붐이 일었다. 사회가 불안해짐에 따라 신도 불교와 같은 기성 종교보다는 현세적 이익을 강조하는 신흥 종교가 더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시마다씨에 따르면 1차 석유 위기 직후에 일어난 신흥 종교 붐은 또 다른 종교 붐이다. 그것은 경제적 풍요가 보장된 반면 정신적 빈곤이 상대적으로 커지면서 일어난 종교 붐이다. 특히 정신적 불안을 경험하는 젊은 세대들이 초능력·신비적 현상에 이끌리면서 이른바 ‘新 신흥 종교’붐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 시마다씨의 분석이다.

특히 기독교·불교·이슬람교· 노스트라다무스 등의 예언을 뒤섞은 교리를 갖고 있는 ‘행복의 과학’은 자칭 신도 수가 5백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종교 학자 이노우에 노부다카(井上順孝)씨는 일본인의 무신앙이 이런 신흥 종교 붐을 일으키는 또 다른 원인이라고 본다. 일본 문화청 집계에 따르면, 일본의 종교 단체는 모두 18만4천여 개에 달한다. 이들이 보고한 신도 수는 약 2억2천만명. 전체 인구의 거의 두배에 달하는 숫자다.

그러나 NHK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31%에 불과하다. 그 중 신도계가 51.3%, 불교계가 42.8%이고, 기독교 신자는 전체 인구의 약 1%인 1백50만명에 불과하다.

이렇게 보면 사린 독가스 사건은 일본인들 스스로가 부른 비극이나 다름없다. 다시 말해서 정통 종교 세력이 빈약한 일본의 종교 풍토가 그런 전대미문의 사건을 불러일으켰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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