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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프랑스,학문 자존심 놓고 한판 싸움

앨런 소컬·장 브리크몽 공저 <지적 사기>, 프랑스 인문학 향해 직격탄

파리·高宗錫 편집위원 ㅣ 승인 1997.10.16(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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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세계 인문학 이론의 중요한 산실이다. 몇년 전부터 우리 나라에 불어닥친 프랑스 철학 열풍도 그렇지만, 철학과 인문 과학의 프랑스제 이론들은 주로 미국을 경유해서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예컨대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자기 나름의 의미를 담아 사용한 ‘해체’라는 말은 런던에서 뉴욕을 거쳐 도쿄와 시드니에 이르기까지 세계 모든 나라의 대학 강의실에서 일상어가 되었다. 영어와 미국 경제, 미국 대중 문화,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에 맞서서 프랑스의 체면을 겨우 살려주고 있는 것은 그런 인문학적 토양에 대한 자부심이다.

그러나 얼마전 프랑스 인문학의 근저까지 초토화할지 모르는 대륙간 탄도탄이 대서양 건너편에서 발사되었다. 뉴욕 대학의 이론물리학 교수 앨런 소컬이 벨기에 루뱅 대학 교수 장 브리크몽의 도움을 받아 파리에서 펴낸 <지적 사기> (오딜 자콥 출판사)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이 그 미사일이다.

소컬과 브리크몽은 이 책에서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과 펠릭스 가타리, 철학자 질 들뢰즈와 폴 비릴리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 기호학자 쥘리아 크리스테바 등 프랑스 인문학의 스타들이 사용한 상당수 용어들이 독자들에게 저자의 지적 권위를 뽐내기 위해 화려하게 치장된 무의미한 말들이라고 지적했다. 요컨대 가장 지적으로 쓰인 듯이 보이는 책들이, 알고 보면 지적 부정직과 몽매주의의 박물관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지난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듀크 대학의 학술지 <소셜 텍스트>에 발표되어 미국 인문사회과학계에 큰 논란을 일으킨 소컬의 논문 <경계를 위반하기:양자 인력의 변형해석학을 향하여>를 확대, 발전시킨 것이다. 그 글 제목에 보이는 양자 인력의 변형해석학이라는 ‘무시무시한’ 용어는 (프랑스) 인문학자들이 자연과학에서 빌려다가 겉모양만 그럴듯하게 조립해 내고 있는 무의미한 인문학 용어들을 비꼬기 위해 소컬이 만들어낸 말이다. 이 글을 쓴 뒤 소컬은 미국 사회에서도 ‘반(反)유럽적 쇼비니스트’‘지적 경찰’‘반동적 보호주의자’‘상징적 분석의 옹호자’라는 등 격한 비난을 받았다.

소컬과 브리크몽이 <지적 사기>에서 꼽고 있는 ‘지적 사기꾼들’은 주로 저자들이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이라고 판단한 인문학자들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성운(星雲)의 비판에 제한적이지만 창조적으로 기여하기 위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힌 저자들은,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자들이 계몽주의 시대의 이성주의적 전통을 거부한 채 물리학이나 수학을 단순한 ‘이야기’로 취급하면서 마구잡이로 용어를 쓰고 있다고 비판한다.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이나 혼돈이론이나 위상기하학의 개념들이 이들의 저서에서 어지럽게 사용되고 있지만, 그것들이 대개는 저자의 박식을 과시하고 이론의 권위를 만들기 위한 도구일 뿐, 무의미하거나 적실성이 없어서 정작 자연과학자들에게는 웃음거리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프랑스 맹종하는 미국 좌파 지식인 일깨우고자”

소컬과 브리크몽은 이들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용어 남용을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첫째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문장들을 조작하면서 말장난에 몰두하는 것이다. 보드리야르가 포스트모던 사회를 은유하기 위해 만든 ‘다굴절 초공간’이라는 말이 이 유형에 속한다. 물리학에서 ‘공간’이나 ‘초공간’이나 ‘굴절’이라는 용어는 사용되지만, 다굴절 초공간이라는 말은 수학이나 물리학의 관점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장난이라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특히 보드리야르에 대한 저자들의 비판은 수학이나 물리학과 무관한 분야에까지 번진다. 보드리야르의 글은 산문이라기보다는 어설프게 쓰여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시(詩)에 가깝다고 소컬은 비판한다.

오용의 두번째 유형은, 인문학 이론가들이 자연과학 용어를 인문과학에 빌려오면서 그 과정에 아무런 경험적·개념적 정당화 절차를 부여하지 않는 경우다. 정신병의 구조를 수학의 면(面)에다가 자의적으로 비유한 라캉이 이 유형에 속한다. 라캉은 “원환면(圓環面)은 정확하게 신경증 환자의 구조다”라고 말했지만, 이런 비유에는 정당성이 없다는 얘기다.
세번째 유형의 오용은, 저자가 박식을 드러내기 위해서 적실성이 없는 문맥에서 학술 용어들을 마구 쏟아놓은 것이다. 철학자이자 건축 이론가인 폴 비릴리오의 글들이 이런 ‘사이비 과학적 수다’의 예로 꼽혔다. 비릴리오의 글들에 자주 나오는 ‘도형’ ‘형상’ ‘차원’ ‘초월’ ‘초현실주의적 정점’ 따위 말들은 대체로 글의 맥락에 적실성이 없는 말들이라고 소컬과 브리크몽은 지적한다.

이 책의 저자들이 거론하는 용어 오용의 마지막 유형은 자연과학에 대해 거의 지식이 없으면서도 자연과학 이론들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젊은 시절의 쥘리아 크리스테바가 시적 언어의 형식 이론을 구축하면서 수학의 기초 개념 중의 기초 개념인 ‘집합’과 ‘구간’을 혼동하는 어처구니없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한 뒤, 이 유형의 오용이 인문학자들 사이에 가장 널리 퍼진 것이라고 덧붙인다.

저자들은 질 들뢰즈의 주저로 꼽히는 <차이와 반복>에서 수학과 관련된 부분을 물리학 석사 출신으로 철학을 전공한 프랑스 학생에게 읽혔지만, 이 학생은 들뢰즈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는 일화를 덧붙이기도 했다.

시사 주간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는 이 책이 출간되기 직전에 기자를 뉴욕으로 보내 소컬을 인터뷰했는데, 그 인터뷰에서 소컬은 프랑스든 미국이든 모호한 글일수록 심오한 글이라는 생각이 독서계에 퍼져 있다고 개탄했다. 지식인들의 의무는 지배적 담론을 탈신화하는 것인데도, 이런 분위기 때문에 많은 지식인들이 모호한 말투로 신화를 덧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다룬 학자들이 모두 프랑스 사람인 것에 대해서는, 그들이 미국의 지식인 사회, 특히 좌파 지식인 사회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자신은 프랑스 지식인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좌파 지식인들에게 그들이 전범으로 삼고 있는 프랑스인들의 지적 불성실을 명료한 언어로 일깨우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책의 표적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이런 사기를 용인하고 고무하는 문화라고도 말했다.
그는 이 책이 미국에서보다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된 이유를 묻자 대상이 된 프랑스 지식인들에 대한 예의 때문이라고 대답하면서도, 예컨대 라캉의 문장들을 배꼽을 쥐지 않고 영어로 옮길 수는 없을 것이라는 비아냥을 잊지 않았다.

소컬이 비판한 사람들이 대체로 미국의 좌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프랑스 지식인들이기는 하지만, 소컬 자신이 우파는 아니다. 그는 니카라과에 좌파 산디니스타 정권이 들어섰을 때, 혁명이 성공한 니카라과에 열광해 그곳의 수학 교사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 신사회운동의 페미니즘이나 다문화주의나 게이 운동이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모호한 언어로 쓰인 프랑스 철학이 아니라 권리의 평등과 계몽주의의 유산에 대한 일깨움이라고 말한다. 자유주의가 극복할 수 없는 이 시대의 대세라고 판단한 일부 좌파 이론가들이 자본의 권력을 직접 공격하기를 포기하고 더 손쉬운 길, 즉 언어를 비틀며 은어와 암호의 고치 속으로 숨는 길을 택했다는 것이 소컬의 판단이다.

프랑스, 무시·수용 엇갈린 반응

이 책에 대한 프랑스 지식인 사회의 반응은 여러 가지다. 이 책 출간이 미국 지식인 사회 일각의 ‘프랑스 공포’에서 나왔다고 보며 노골적으로 혐오감과 경멸감을 드러내는 크리스테바의 호들갑스러운 시각이 있는가 하면, 학술 저널리스트 디디에 에리봉처럼 저자들의 선의를 충분히 존중하면서 그들의 (자연과학에 대한 ) ‘권위 남용’을 지적하는 온건한 시각도 있다. 에리봉은 또 예컨대 들뢰즈의 영향력은 그의 글 가운데 미적분에 관한 부분이 아니라 정신분석학 비판이나 문학에 대한 성찰에 힘입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책 제목의 ‘지적 사기’라는 표현이 과장된 것이든 적절한 것이든, 이 책은 최근에 프랑스 철학의 영향이 최근에 커진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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