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에 휘말린 센카쿠 열도
  • 베이징·이기현 통신원 ()
  • 승인 2004.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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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재연…반일 감정 고조돼 중국측 강경 대응
한동안 잠잠했던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열도) 분쟁이 재연될 조짐이다. 지난 3월 말 중국인 7명이 타이완 남부 해역의 이 무인도에 상륙했다가 일본 해경에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부터다.

댜오위다오는 중국·타이완·일본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는 민감한 지역이다. 타이완에서 동북쪽으로 120해리(222km), 일본 오키나와에서 남서쪽으로 200해리 떨어진 해상에 있는 댜오위다오는 섬 5개와 암초 3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지역이 분쟁의 중심지가 된 것은 원래 중국 영토였던 댜오위다오가 19세기 말 청일 전쟁 이후 타이완과 함께 일본에 강제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2차 세계대전에 패한 일본은 타이완을 중국에, 댜오위다오는 미국에 이양했다. 미국은 1972년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하면서 댜오위다오까지 포함해 줄곧 중국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댜오위다오는 군사 전략상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처지에서 댜오위다오 선점은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군 기지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군사 대국화하려는 일본의 해양 진출을 막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일본 또한 군사 전략상 이 섬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처지이다.

중국은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줄곧 의심해 왔다. 중국의 한 외교 전문가는 미국이 동북아 지역의 안정을 위해 일찍부터 일본의 지역 패권을 은근히 부추겼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면서 “최근 양국 불화의 쟁점이 되는 댜오위다오 문제의 배후에는 미국이 존재하고 있는데, 미국은 이른바 이일제중(以日制中, 일본으로 중국을 제압함)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라고 분석한다.

댜오위다오 문제는 여러 측면에서 독도 문제와 유사하다. 결정적 차이라면 독도와 달리 댜오위다오는 일본이 실제로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댜오위다오에는 일본이 설치한 등대가 작동하고 있으며, 일본 해경이 호위를 맡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역사상 명백한 중국 영토를 일본이 청나라가 쇠약한 틈을 타 훔친 것이라며 국제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지역을 둘러싼 중·일 신경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96년 일본 정부가 이 지역 주변에 배타적 경제 수역을 설정하자 중국인들은 섬 주변에서 대규모 해상 시위를 벌였다. 이후 중국측 운동가들의 댜오위다오 비밀 상륙 작전이 줄곧 시도되어 왔다. 일본의 우익 단체들도 1990년 이래 10여 차례 섬에 상륙해, 자국 영토임을 주장하는 시위를 벌였다.

문제는 이번 사건이 중국 내 반일 감정이 한껏 고조된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지사의 과거사 망언에 이어 일본인들의 집단 매춘 관광, 올 초에는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기습 참배 등으로 중국 내 반일 여론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황이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국인의 90% 이상이 일본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중국인들의 반일 감정에 호응이라도 하듯, 중국 원자바오 총리까지 일본에 대한 불만을 공개 표명했다. 그는 지난 3월 폐막한 전국인민대표자대회 기자 회견장에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댜오위다오 사건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중국 정부의 대응 또한 강경했다. 쿵취안(孔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댜오위다오와 그 부속 도서는 중국의 영토이다”라면서 “일본측이 중국인들을 강제로 억류한 것은 국제법을 위반한 불법 행위이며, 중국의 영토 주권과 중국 공민의 인권에 대한 중대한 도발 행위다”라고 일본을 강력 비난했다.

중국의 강한 반발에 비해 일본은 다소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직접 나서서 이번 사태에 대해 “전체적인 양국 관계를 해치지 않도록 처리하고 싶다”라며 한 발짝 물러선 것이다. 일본 정부는 체포한 중국인들을 단순 불법 입국자로 분류해 특별한 절차 없이 강제 송환하기로 결정하고, 일본의 보수 우익 단체들이 댜오위다오에 상륙하려는 시도를 원천 봉쇄했다.

일본의 이러한 소극적 반응에는 나름으로 이유가 있다는 것이 중국측 분석이다. 중·일 문제 전문가에 따르면, 현재 중국보다는 일본이 아쉬운 입장이다. 최근 중국 내에서 일고 있는 반일 감정이 중·일 경제 교류 확대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중·일 양국의 교역 규모는 지난해 1천6백20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일본의 대중국 수출도 40%나 늘어 경제 회복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일본 기업의 대중국 투자도 동시에 증가하고 있다. 도요타와 닛산 등은 중국 현지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했고, 조만간 현지 채용 인원이 본국 내 채용 인원 규모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본은 또한 베이징-상하이 고속철도 사업 등 굵직굵직한 프로젝트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 커버린 중국으로부터 얻는 이익이 커질수록 일본에 대중국 외교가 갖는 비중은 갈수록 커진다. 그러나 과거사 망언과 일본 총리의 신사 참배 문제가 중·일 정상 외교를 사실상 중단 상태로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은 일본에게 달갑지 않은 일이다. 일본 내 보수 우익 세력의 강력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이번 사건에 강경 대응하지 않은 배경에는 이미 냉랭해진 양국 관계를 더 악화시켜서는 안된다는 일본 정부의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대중국 외교에 신중을 기하는 또 다른 증거는 가와구치 노리코 일본 외상의 행보이다. 지난 3월 중순, 가와구치 외상은 일본을 방문한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만난 자리에서 4월 초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가와구치 외상은 고이즈미 총리의 중국 방문을 성사하기 위한 외교적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방문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이 대중국 외교 정상화를 절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4월 초 중국을 방문한 가와구치 외상은 그러나 중국측으로부터 전례 없는 푸대접을 받아야만 했다. 한 국가의 외교부 수장의 공식 방문 일정이 절반 이상이 확정되지 않았고, 회담 시간조차 정식으로 통보되지 않는 등 ‘외교 결례’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일본 외상을 맞이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댜오위다오가 중국의 영토임을 강력히 주장했고,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중·일 관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중단을 촉구했다. 리자오싱 외교부장도 댜오위다오 문제에 대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등의 직설적 표현을 사용했다. 이처럼 중국의 반응이 워낙 냉담해 고이즈미 총리의 중국 방문 등 양국 정상 상호 방문 문제는 아예 얘기도 꺼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중국은 반일 감정을 이용해 대일 외교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으로 평가된다. 댜오위다오 분쟁에 대한 중국측 대응은 일본과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 정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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