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이등휘 총통의 미국 방문 파장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5.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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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휘 총통 16년 만의 방미로 관계 삐걱…중국 반체제 인사 탄압설 등 갈등 요인 첩첩
지난해 5월4일 李登輝 대만 총통을 태운 비행기가 미국 호놀룰루 공항에 잠시 기착했다. 코스타리카로 가던 도중 연료를 공급 받기 위해서였다. 여정에 지친 이총통은 호놀룰루에서 하룻밤 쉴 수 있는지 미국 정부에 문의했다. 그러나 대답은 ‘노’였다. 그가 미국 땅에 발을 디딜 경우 중국이 반발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의 5대 교역국이자 ‘전통적 우방’인 대만의 국가 원수는 기내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수모를 겪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상원은 즉시 대만 관리들의 미국 방문을 허용하라는 결의안을 제출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국무부는 대만 정책을 조심스레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79년 미국이 대만과 단교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난해 9월 미국 정부는 대만과의 통상 관계를 강화하고, 대만의 각료급 관리가 미국을 방문하거나 미국 관리와 만나는 것을 허용했다. 미국의 대만 정책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작은 신호였다. 그러나 그때도 대만 총통의 방미는 허용되지 않았다.

이등휘 총통이 호놀룰루에서 수모를 겪은 지 1년 뒤인 지난 5월22일 클린턴 대통령은 그가 개인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는 6월7일부터 6일 동안 모교인 코넬 대학 졸업식에 참석해 연설한다. 68년 이 대학에서 농업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로서는 27년 만의 모교 방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의미는 미국과 외교 관계가 단절된 지 16년 만에 처음으로 대만 총통이 미국 땅을 밟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대만 입법원(국회) 외교위원회 패리스 장 공동소집위원은 이총통의 미국 방문이 대만 외교의 확고한 승리이며 중국에게 패배를 안겨준 사건이라고 환영했다.

비공식 방문이지만 실체 인정 받는 의미

중국 외교부는 즉시 미국을 비난하는 장문의 성명을 발표했다. 뒤이어 錢其琛 외교부장은 로이 미국 대사를 불러 “이총통의 방미를 허용할 경우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이 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는 미국을 방문한 于振武 인민해방군 공군사령원(사령관)을 즉시 소환했고, 6월로 예정된 李貴鮮 국무위원의 워싱턴 방문 계획도 취소했다. 또 상황에 따라서 주미 중국 대사를 소환하는 것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이처럼 강력히 반발하는 이유는 미국이 미·중 관계의 기본 틀을 깨려 한다는 의구심 때문이다. 79년 양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중국의 대표권은 중화인민공화국에 있고 대만은 중국 본토의 한 성(省)에 불과하다는 데 합의했다. 그 때문에 미국은 대만과 비공식으로 경제·문화 교류는 할 수 있으나, 정부간 교류는 일절 금해 왔다.

그런데 이총통의 방미가 비공식이라 해도, 실제로는 대만의 실체를 인정하는 의미를 지닌다. 중국은 다른 국가들이 이번 사건을 선례로 삼아 대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될까 봐 우려해 미국의 조처에 전에 없이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이총통 방미 허용 결정은 의회의 강력한 요구를 어쩔 수 없이 수용한 것이다. 5월 초 상원은 97 대 1, 하원은 3백60 대 0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이등휘 총통의 방미를 허용하라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의회는 전에도 이와 비슷한 결의안을 여러 차례 통과시킨 바 있지만, 그때마다 클린턴 정부는 중국의 반발을 우려해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이번 경우 클린턴 대통령은 크리스토퍼 국무장관과의 협의를 통해 이총통의 방미를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국무부 관리들은 중국의 반발을 우려해 반대했지만, 클린턴 정부로서는 의회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다.

의회가 친대만 분위기로 바뀐 것은 대만의 경제 발전과 민주화, 중국의 공세적인 대외 정책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미국의 강력한 무역 파트너로 성장한 대만은 89년 이후 민주화 작업을 꾸준히 펼친 결과 미국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의원들 가운데 상당수로부터 지지를 받게 되었다. 반면 중국은 사사건건 미국과 충돌해 왔다. 인권문제는 개선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천안문 사태 6주기를 앞두고 또다시 대대적으로 민주 인사 검거 선풍이 일고 있다. 그밖에도 지적재산권 보호 문제와 남사군도 영유권 분쟁, 국방비의 급격한 증가, 이란에 대한 원자로 판매, 핵실험 재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특히 지난 5월15일 핵확산방지조약(NPT)이 체결된 지 나흘밖에 안된 상황에서 중국이 지하 핵실험을 재개해 미국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대만 정부 ‘5년 로비’ 개가

대만의 집요한 로비 활동도 주목할 만하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들은 대만 정부가 4∼5년 전부터 미국내 로비 회사를 통해 이총통의 방미를 추진해 왔고 실질적인 경제·문화 관계를 앞세워 상·하원 의원들을 집중 공략했다. 특히 이총통의 방미를 추진해온 코넬 대학은 지난해 대만 정부로부터 2백만 달러를 교수 연구 지원금으로 받은 데 이어 이총통 측근으로부터 2백50만 달러를 지원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등휘 총통의 방미 문제로 미·중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 간에는 새로운 갈등 요인들이 속출하고 있다. 대만의 정보기관들에 따르면, 중국은 머지않아 차세대 전략 핵미사일인 ‘동풍 31형’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천안문사태 6주기를 앞두고 반체제 인사들을 탄압하고 있으며, 중국 반체제 인사 3명이 미국에 망명을 신청했다는 보도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런 일련의 사태는 양국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편 중국의 철저한 봉쇄 정책으로 인해 고립될 수밖에 없었던 대만은 이총통의 방미를 대외 관계의 새로운 돌파구로 인식하고 있다. 대만은 미·중 수교로 인한 국제적 고립에서 서서히 탈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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