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문화 / 프랑스
  • 스트라스부르·류재화 통신원 ()
  • 승인 2004.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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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고물 명품’
 
올여름 프랑스인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물건 1호는? 선풍기다. 프랑스 가정에는 의외로 선풍기가 많지 않다. 여름이어도 한국처럼 그렇게 후텁지근하지 않아서다. 그러나 지난 여름 ‘뜨거운 맛’을 보고 나서는, 에어컨은 아니어도 선풍기 하나쯤은 장만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복고풍 유행 탓인지, 시중에 나온 선풍기 모델들도 환풍기마냥 촌스럽고 단순하기 그지없다. 초기 기계 문명의 순박함 그대로다.

옛 물건에 대한 집착과 향수가 강한 프랑스인들은 부모 때의 물건은 물론 할아버지·할머니가 쓰던 물건도 웬만하면 내다버리지 않는다. 정기 시즌이 되면 동네 광장마다 어김없이 ‘브로캉트리’(고물 시장)가 들어선다. 고물·골동품 전문 상인들 틈에 끼어 갖고 놀던 장난감·구슬·딱지·만화책을 들고 나와 파는 어린이 아마추어 상인도 많다.

‘아르스-앙-레’. ‘아르스’는 ‘예술’을 뜻하는 라틴어이고, ‘레/리’는 ‘재(再)’를 뜻하는 접두사다. 최근 프랑스 가정에서는 쓰던 옛 물건을 ‘리노베이션’하는 일이 잦다. 낡고 먼지 풀풀 나는 옛 소파들을 꺼내 전통 틀은 그대로 살리고, 쿠션을 모던한 질감이나 무늬의 천으로 다시 입힌다. 시골 옛집을 사서 빛 바랜 돌층계와 녹슨 쇠문은 그대로 놓아두고 안은 현대적 생활 공간으로 바꾸는 것도 ‘아르스-앙-레’의 하나다. 나무 접이의자·차 주전자·화분·쟁반 등 창고 속에 잠자고 있던 고물들도 세련된 ‘안티크’로 둔갑 중이다. 세면대만 하더라도 석기 시대 그릇 같은 둥근 모양이 유행이다. 재질 역시 마찬가지다. 예술가들은 육중한 건물 느낌의 시멘트와 부드러운 대리석을 혼합한 특수 재질을 즐겨 다룬다.

프랑스에서 해마다 열리는 ‘메종과 오브제’ 박람회는 그 해 유행할 생활 예술품 디자인의 경향을 한눈에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전세계에서 온 디자이너·예술가·상인·소비자·예술사가·사회학자·역사학자가 모두 참가하는 국제 행사다. 메종과 오브제 통계에 따르면, 국적별 구입자 순위 1위는 이탈리아다. 한국은 9위로 네덜란드에 이어 ‘당당히’ 10위권 안에 들었다. 작품 경향은 다양하지만, 공통 분모를 찾는다면 역시 클래식과 모던의 상생 조합이다. 인간미와 자연미, 복고풍을 불러일으키는 아르스-앙-레, 노마드, 보헤미안 따위 유행어도 자주 등장한다. 서양식 오리엔탈리즘 냄새가 물씬 나는 아시아적 취향의 디자인도 압도적이다. 한국어 ‘선(禪)’, 중국어 ‘찬(禪)’은 몰라도, 일본어 ‘젠(禪)’은 이미 국제 패션 용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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