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노프 왕가 '보물 창고' 찾았다?
  • 모스크바·정다원 통신원 ()
  • 승인 2001.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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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국회의원 "은닉 장소 발견" 주장…
'마지막 황제' 연인의 저택 지목


소설이나 영화 속 '보물 찾기'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러시아에서는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는 흥분의 도가니이다. 액수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로마노프 왕가의 보물'이 묻혀 있는 장소가 발견되었다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3백년 넘게 왕통을 이어온 로마노프 왕가의 보물 중 상당수가 숨겨진 비밀 장소를 과연 어떻게 알아냈을까?




보물의 주인은 로마노프 왕가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의 연인이며, 후에 황족인 안드레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의 아내가 된 미모의 발레리나 마틸다 크셰신스카야다. 그녀는 황색 다이아몬드, 금은 보화, 호박, 예술 작품, 도자기, 고대 로마 예술품 등 온갖 보물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혁명의 소용돌이가 가라앉은 뒤 그녀는 프랑스 파리로 이민했고, 그 곳에서 여생을 마쳤다. 바로 그녀가 은닉한 재산을 둘러싸고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소동을 맨 처음 일으킨 사람은 국가 두마(의회) 의원인 콘스탄틴 세베나르드이다. 그는 1990년 초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을 때 보물의 주인인 마틸다 크셰신스카야의 먼 조카뻘 되는 인물로부터 숨겨진 보물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고 한다. 세베나르드는 "이는 세계적 수준의 매우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이 될 것이다. 그처럼 대규모 은닉 장소는 오랫동안 발견된 적이 없었다"라고 밝혔다.


얘기는 1917년 러시아 공산 혁명으로 거슬러올라간다. 황족들은 가능한 한 많은 귀금속을 지니고 이민 길에 올랐다. 그러나 성난 폭도들에게 보물을 약탈당할까 봐 두려워했던 일부 황족은 공산 혁명이 곧 끝나기를 바라면서 가보(家寶)를 땅에 묻었다.


공산당은 1917년 2월 혁명 직후 노동자들의 궁핍을 해결하기 위해서 크셰신스카야 저택도 징발했다. 그런데 저택에서 찾아낸 귀중품은 조그만 보따리 하나 분량이었고, 크셰신스카야는 '임시 정부'로부터 금은 식기를 돌려받기까지 했다. 그 후 저택은 은행에 맡겨졌다. 10월 혁명이 발발하자 은행장이 고객의 예금을 보호하기 위해 왕가의 식기를 어딘가에 파묻었는데 오늘날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수수께끼는 로마노프 왕가의 다른 보물이 어디에 숨겨져 있느냐 하는 것이다. 혁명 후 2년이 지나 혁명군인 적군(赤軍)은 저택을 수색해 보물이 숨겨진 비밀 금고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주 적은 보물만이 보관되어 있었다.


"꾸며낸 이야기다" 회의론 많아


크셰신스카야는 1971년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조카가 확신하는 것처럼 죽기 직전에 그녀가 가까운 친지 가운데 누군가에게 보물 이야기를 털어놓고 처분을 위임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정보를 제공한 세베나르드 의원은 보물이 숨겨진 장소로 현재 '정치 역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페테르부르크 시 크셰신스카야 저택을 지목했다. 박물관의 한 직원은 "보물 금고가 있을지 모르지만 아직은 박물관 주변을 파헤칠 이유가 없다"라고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문화부 박물관 담당 주임인 안나 콜루파예바도 "그곳에 무엇이 묻혀 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라고 말하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한 러시아 연방 과학 아카데미 회원인 고고인류학자 예브게니 토르쉰은 "보물은 없다. 보물 이야기는 꾸며낸 이야기이다"라고 말하며 세베나르드 의원의 주장을 묵살했다.


그러나 보물찾기는 입맛이 당기는 일이다. 고고인류학자들은 세베나르드 의원의 주장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고, 미하일 문화장관도 일의 진행을 지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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