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동포는 개를 물지 않았다
  • 뉴욕/정창래(자유기고가) ()
  • 승인 2001.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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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11 TV '보신탕 보도' 사실 무근.... 오보 확인 뒤에도 고자세 일관
뉴욕의 텔레비전 방송국 WB11이 뉴욕의 일부 한인들이 개고기를 먹는다는 보도를 11월19일부터 한달 동안 네 차례에 걸쳐 내보냈다.


이 보도는 몇 달 전부터 준비되었던 것이다. 지난 6월 자신을 회계사이자 20대 후반 한인이라고 소개한 남자가 뉴욕 주 워스보로에 있는 ‘김씨 농장’을 찾아가서 ‘개고기’를 사갔다. 그는 또 뉴욕 플러싱의 ‘나루터 식당’에 가서 ‘보신탕’을 주문했다. 며칠 후 WB11의 폭로 전문 기자인 폴리 크라이스만과 동물보호단체인 휴메인 소사이어티의 수사관 리처드 스웨인이 ‘김씨 농장’에 가서 그 젊은 한인이 몰래 카메라로 찍은 거래 장면을 보여주며 개고기 취급 사실을 추궁했다. 이에 농장 주인 김주호씨(42)는 개가 아니라 코요테 고기를 팔았다고 주장했다.


WB11이 김씨 농장과 나루터 식당의 고기를 대학에 맡겨 조사했는데, 둘 다 개고기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코요테 잡종과 염소 고기였다. 그러나 WB11은 김씨 농장·나루터 식당과 한국 시골의 개 사육장, 뉴욕 코리아타운, 한인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화면에 보여주며 “몇 년 동안 미국에서 개고기가 팔리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있었다. 김씨 농장이 암시장에 개고기를 팔고 있다”라고 단정지었다.



이 보도가 나간 후 뉴욕 한인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WB11이 소수 민족인 한인들을 가볍게 보고 왜곡·과장 보도를 하여 한인 사회 전체에 정신적·경제적 피해를 주었다. 강경하게 항의해야 한다”라는 주장에서부터 “미국까지 와서 개고기를 찾는 사람들은 반성하고 자숙해야 한다” 등 여러 의견이 나왔다.


이 와중에 일부 한인 단체와 중국계 단체들이 오보 시정을 요구하고 나서자 WB11의 부사장 배티 앨런 벌라미노는 그들의 지적 사항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답신을 통해 폴리 크라이스만의 보도 내용이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며 훈계조로 맞섰다. WB11의 모회사인 트리뷴 사의 변호사 로저 굿스피드는 필자에게 벌라미노의 답신이 WB11의 공식 입장이라고 밝혔다.


개고기 식용 금지한 주는 6개뿐


WB11은 또 12월20일 자신들의 노력에 힘입어 뉴욕 주 상원의원 데이비드 페터슨이 개와 고양이 고기의 식용 취급을 금지하는 법안을 새로 상정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페터슨 의원은 폴리 크라이스만과 인터뷰한 직후인 12월18일 한인 사회 언론에 보낸 해명서와 필자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1999년에 동물보호단체들의 압력으로 이 법안을 제출했으나 그런 법안이 불필요하다고 결론이 나 분과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내년 1월 새로운 회기가 시작되면 과거에 통과되지 않은 법안들이 자동적으로 다시 검토되는 것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자기가 폴리 크라이스만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 자기 의도와 달리 한인들을 비난하는 데 이용될까 우려해 해명서를 작성할 필요를 느꼈다고 밝혔다. 현재 개고기의 식용 소비가 금지된 주는 뉴저지를 포함해 6개 주이다.



‘김씨 농장’ 김주호씨 부부와 ‘나루터 식당’ 업주는 WB11을 법원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전례로 볼 때 미국의 법이 비방 보도나 명예 훼손 소송에서 거의 일방적으로 언론의 손을 들어주어 왔기 때문에 한인 업주들에게는 벅찬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신과 자신의 남편을 ‘구조된 개 3마리의 자랑스런 부모’라고 공개적으로 소개하는 폴리 크라이스만 기자와, 우연이라고 보기 힘들 만큼 밀착 관계를 유지하는 휴메인 소사이어티 등 동물보호단체들의 여론몰이도 부담스럽다.


‘사람이 개를 물다’라는 보도와 달리 개고기는 없었다. 하지만 보도의 형평성을 무시하고 센세이셔널리즘을 노린 한 기자의 사나운 이빨에 뉴욕의 한인들이 크게 물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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