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쏘았나, 누가 죽였나 한국인 피살 미스터리
  • 이성규 ()
  • 승인 2002.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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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성봉씨 살해한 인도 무장 괴한들 ‘정체’ 오리무중
인도 보드가야·이성규 (리포트25 프로듀서)



인도 비하르 주 보드가야에 머무르던 달라이 라마는 1월11일 아침 9시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인접 지역 둥게스와리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보도를 접했다. 달라이 라마는 그 사건으로 죽은 한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 “보드가야 같은 부처님의 성지에서 다른 이를 위하다 돌아가셨으니 그는 의로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는 분명 좋은 곳으로 갔으리라고 믿는다.”




지난 1월10일 밤 6시15분께 보드가야에서 8km 떨어진 둥게스와리의 천민들을 위한 사회복지시설 JTS(Join Together Society)에서 무장 괴한들의 총격에 의해 한국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살자는 설성봉씨(46)로 한국 불교재단이 설립한 인도 JTS의 건축 실무자였다.


달라이 라마는 비서와 경호실장을 사건 현장으로 보내 JTS를 방문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14일 오전, JTS 이사장 법륜 스님을 만났을 때도 방문 의사를 밝혔다. 15일 이른 아침 둥게스와리는 어느 때보다도 분주했다. 9시에 방문할 예정인 달라이 라마를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불가촉 천민들이 대부분인 마을 주민들은 들떠 있었다. 세계적인 인물이 자신들의 비천한 마을을 방문한다고 하니 그들로서는 흥분하는 것이 당연했다. 길가에는 만다라가 그려지고, 운동장에는 달라이 라마가 앉을 의자가 놓였다. 총격 사건으로 슬픔에 잠겼던 현지 한국인들도 달라이 라마가 방문한다는 소식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나 오전 8시께 달라이 라마의 방문은 돌연 취소되었다. 전날 라즈기르 왕사성을 순례하던 달라이 라마가 갑자기 감기와 설사 증세를 보여 빠뜨나로 후송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하지만 1월21일부터 펼쳐질 티베트 불교의 종교 축제 ‘깔라 차크라’를 집전하기 위해 달라이 라마는 보드가야로 돌아오는 길에 둥게스와리의 JTS를 방문하겠다고 다시 알려왔다.





한국 언론이 단신으로 처리한 한국인 피살 사건을 달라이 라마가 위로하며 나선 것이다. 인도 JTS는 한국인이 설립한 국제 기아·질병·문맹 퇴치 기구이다. 불교 성지 순례를 위해 인도를 방문한 법륜 스님이 꼴까따(캘커타)에서 여인의 구걸을 외면한 것을 참회하면서 JTS를 설립했다.

1994년 1월 둥게스와리 작은 숲에서 건물도 없이 개원한 수자타 아카데미를 시작으로 JTS는 둥게스와리 주변 16개 마을 주민에게 교육·의료·마을 개발 사업을 펼쳐 왔다. 유치원과 초등학교·기술중학교 과정까지 갖춘 수자타 아카데미(학생 5백80명)를 비롯해서 하루 평균 100명이 치료를 받는 지바카 병원 등 모든 시설이 주민 만여 명에게 무료로 개방되어 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이곳에는 실무자 7명과 자원봉사자 10명 등 한국인 17명이 상주하고 있다.


인도 JTS는 1995년 4월과 1999년 5월 두 번 무장 강도에게 습격당했다. 지난해 7월 인도 JTS의 건축 실무자로 둥게스와리에 들어온 설성봉씨는 현재 마무리 중인 수자타 기술중학교 신축 공사 책임자 겸 보안 책임자였다. 한국에 부인과 고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설씨는 5년 전부터 불교 관련 일에 헌신해 왔다.


인도의 1월은 어느 때보다 해가 일찍 진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둥게스와리 마을은 해가 떨어지는 동시에 모든 일을 마감한다. 사건 당일도 마찬가지였다. 저녁 6시15분께 문단속을 하기 위해 나섰던 설씨는 학교 건물 밖이 소란스럽자 긴장한 채 철문 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정체 불명의 괴한이 문틈으로 손을 불쑥 내밀어 설씨의 안경을 빼앗았다. 설씨는 “이놈들이 내 안경을 뺏어갔어!”라고 고함을 지르고는 자원봉사자인 정상민씨(25)와 함께 2층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평소 같으면 옥상에 올라가기 전에 관측구를 통해 살펴보았을 텐데, 그 날 바로 옥상으로 올라간 것은 설씨가 안경을 빼앗기자 다소 흥분해 평상심을 잃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한국인들은 전한다.




옥상에 올라간 설씨가 랜턴을 들고 정씨와 함께 아래를 관측하는 순간 ‘탕’하는 총소리가 났다. 아무 반응이 없던 설씨가 3초 후 쓰러졌다. 총을 맞은 것이다. 바로 옆에 있던 정씨가 가슴을 움켜쥔 설씨를 부축해 뒤로 물러서는 순간 두 번째 총소리가 들렸다. 총탄은 옥상 바로 아래 벽에 맞았다. 응급처치를 했으나 설씨는 5분 뒤 사망했다.


술 취한 괴한들, 15분간 난사


7명 정도로 추정되는 괴한들은 이후 15분간 총을 난사하고 학교 옆 병원을 돌아 마을 쪽으로 사라졌다. 마침 병원에 있던 티베트인 텐진 우둡 씨(29)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은 술에 취한 것으로 보였고 “덤빌 테면 덤벼봐!”라고 고함을 지르며 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당시 JTS에는 자원봉사자 9명과 실무자 3명을 비롯해 한국인 13명과 법당의 탱화를 그리던 티베트인 화공 5명, 그리고 기숙사에 인도인 학생과 교사가 20여 명, 인도인 인부 5명과 인도인 자원봉사자인 약사 1명이 있었다.


사건 2시간 뒤 현장에 도착한 인도 경찰은 설씨의 시체를 인근 도시 가야의 대학병원으로 보냈다. 다음날 부검을 통해 밝혀진 사망 원인은 산탄총에 의한 심장 파손. 사건 당일 저녁 인도 경찰은 설씨가 공사장에서 해고한 인도인 4명의 신병을 확보해 수사를 진행했지만 그들에게서 이렇다 할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해고된 인도인 4명 가운데 2명은 해고된 것이 아니라 취사반에 재고용되어 일하고 있었다. 원한 관계에 의한 범행으로 수사의 초점을 맞춘 인도 경찰은 뚜렷한 정황을 발견할 수 없게 되자 현재 인근 지역 전과자들을 중심으로 재수사를 하고 있다.





보드가야 경찰서의 아르엔 타쿠르 경감은 괴한들이 전문적인 사격 훈련을 받은 이들이라고 말한다. “괴한들은 산탄총으로 무장했다. 일단 소란을 피운 뒤 학교 내부에 있던 누군가가 사격권으로 들어오길 기다린 것 같다.

설씨가 들고 있었던 랜턴이 표적이 되었다.” 설씨가 괴한들의 표적이었느냐는 질문에 타쿠르 경감은 “처음에는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설씨와 얽힌 원한 관계를 뒤졌지만, 설씨는 인부들과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신망이 높았다. 원한 관계는 아니라고 본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설씨라는 특정 인물을 표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학교 안의 불특정 인물을 겨냥한 살인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또한 단순 강도보다는 다른 배경에 의한 살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용의자들의 지문이 묻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설씨의 안경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달라이 라마 암살 어렵자 설성봉씨 살해?


사람이 예사로 죽는 인도이지만 인도 언론은 이 사건에 매우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건 다음날 인도의 유력 방송인 스타TV 뉴스채널이 보드가야에서 위성을 통해 인도 전역에 자세한 상황을 보도했다.

인도 언론은 사건 당시 보드가야에 머무르던 달라이 라마 암살설과 관련하여 보도하고 있다. 비하르의 한 지방지는 중국 공산당의 사주를 받은 인도의 빨치산 조직이 달라이 라마 암살이 어렵게 되자 불교단체인 인도 JTS로 표적을 바꾼 것이 아니냐고 보도했지만, 그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범행 수법이 지금까지 알려진 인도 빨치산 조직의 그것과는 판이하다. 더구나 그들은 천민들을 위한 기구인 인도 JTS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건을 저지를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가야의 한 빨치산 관계자는 필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언급할 가치도 없는 보도라고 말했다.





사건 3일 전 둥게스와리 JTS에 가설된 전기선 1000루피(한화 3만원)어치가 도난당했고 사건 당일 아침 한국에서 물품 상자 60개가 도착한 것으로 보아 단순 강도가 아니냐는 주장도 있지만, 괴한들이 강도로 추정되는 그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고 총격만 가한 것으로 보아 그 가능성 역시 희박하다는 것이 이곳 언론의 분석이다.


인도 유력지인 <타임스 오브 인디아>의 산제이 싱 기자는 두 가지 관점으로 이 사건을 분석한다. “정황으로 볼 때 이 사건은 일단의 힌두 과격파 혹은 상층 카스트의 민병대 조직이 저지른 것으로 본다.” 최근 비하르를 중심으로 불교 개종이 크게 일고 있는데, 올 석탄일에는 크샤트리아 카스트인 샤카족 5만명이 보드가야에서 불교 개종식을 할 예정이다.

샤카족은 부처의 후손들로 알려진 인도의 상층 계급이다. 여기에 위협을 느낀 힌두 과격 세력이 보드가야에서 가깝고 치안 무방비 상태인 둥게스와리 JTS를 공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한다.

또한 천민을 교육하는 JTS에 불만을 품은 상층 카스트의 민병대 하부 조직이 사건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산제이 싱 기자는 분석했다. 최근 비하르에서 천민 교육 시설에 대한 테러가 빈번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JTS는 4년 전 천민 교육을 거부하는 상층 카스트들의 반대로 한때 문을 닫은 바 있다. 이후 학교에서는 천민 자녀들에게 무상 교육을 해오고 있다.


이러한 분석에 대해 JTS측은 다르게 말한다. “JTS가 불교 재단이 운영하는 단체임에는 틀림없지만 구호사업을 하면서 종교를 내세운 적이 없다. 개종을 유도한 적도, 포교한 적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카스트를 불문하고 사업을 펼친다.

상층 카스트 주민들이 도움을 요청해 오면 우리는 반드시 그들이 필요한 것을 제공한다.” 인도 JTS의 실무 책임자인 이덕아씨의 말이다. JTS측은 사건 해결도 중요하지만, 인도 경찰이 마을의 천민을 무작위로 연행해 수사를 강행하는 것을 더 걱정하고 있다. 이미 두 번에 걸친 무장 강도 사건 때 경찰이 얼마나 무성의한지를 체험한 JTS는 수사 과정에서 그동안 마을 사람들과 쌓아온 우의에 금이 갈까 봐 걱정하는 눈치다.

필자 또한 포승줄에 묶여 경찰에게 구타당하는 마을 천민을 목격하기도 했다.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하고,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하며, 어린이는 제때에 배워야 한다.’이것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로서 인종·종교·민족·성별·계급에 관계없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기본권이다. JTS가 1994년 1월 구호사업을 펼치기 전까지 인도의 둥게스와리 지역은 이러한 인간의 기본권과는 거리가 먼 지역이었다.

인도에서 가장 극심한 빈곤 지역인 둥게스와리는 카스트에도 들 수 없는 천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다. 문맹률은 85%에 이르고, 땅은 척박해 연중 3개월 정도만 농사를 지을 수 있다. 6개월 정도는 절대 빈곤 상태에서 구걸 혹은 약탈로 생계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다섯 도반과 함께 극한 고행을 하며 도량을 닦았던 곳이 바로 둥게스와리에 있는 유영굴이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극한 고행의 한계를 느끼고 니란자야 강을 건너 직선 거리로 8km 떨어진 보드가야로 떠나 그곳에서 49일 간의 참선으로 무상정각을 이루어 부처가 되었다.

보드가야가 해탈의 땅이라면 니란자야 강 너머 둥게스와리는 고통의 땅인 셈이다. “이곳의 밤은 총소리로 시작됩니다.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총소리가 들립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에게 총소리에 대해 물어보면 한결같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답합니다.” 설씨 옆에서 죽음을 지켜본 정상민씨의 말이다.


주민들, 보복 두려워 괴한 정체 밝히지 않는 듯
설씨가 피살된 이후, 인도 기자들은 JTS가 철수하리라고 예상했지만 그 예측은 빗나갔다. 법륜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이곳이 위험하지 않은 곳이었다면 벌써 도움의 손길이 뻗쳤을 것이다. 그러나 위험하기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위험을 예견하고 들어왔다. 저 가난한 이들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





1월12일 설씨의 장례식은 ‘람남사뜨헤’(신의 이름만이 진실이다)라는 인도식 상여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학교 뒷마당에서 마을 주민들이 주도해 인도식 화장으로 치러졌다. 마을 사람들에게 묻는다. “끼스네 마라?”(누가 죽였는가?) 그러면 한결같이 답한다. “빠따네히”(모른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괴한들의 정체를 아는 것 같다. 사건 당시 괴한들이 마을에서 사라지면서 ‘누구라도 이번 일에 대해 떠들면 너희들의 엄마나 여동생을 강간하겠다’고 큰소리로 협박했다는 사실이 그런 추정을 뒷받침한다. 마을 주민은 보복이 두려워 지금까지 무수한 총소리가 들릴 때마다 입을 다물어 왔다. 그것이 그들이 살아 남는 방식이다. 무장 괴한들의 총격으로 사망한 설씨 사건의 진상은 점차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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