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 천하 유아독존 노린다”
  • 모스크바 · 정다원 통신원 (dwj@sisapress.com)
  • 승인 2002.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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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프 박사 논문 <부시 독트린…> 발췌/미국 패권주의 해부
국제 질서 변화의 핵으로 새롭게 등장한 일명 부시 독트린의 실체는 무엇일까? 부시 독트린은 미국이 오래 전부터 일관되게 계획·추진해 온 국내외 장기 전략과 일맥상통하는 정책인데, 9·11 테러가 그 출현을 앞당기고 강화시켰다는 것이 중론이다.


9·11 사태 이후 신 국제 질서 흐름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는 미국과 러시아의 접근이다. 경제 문제가 심각한 러시아는 미국과 서방에 접근해 국제 무대에서 적절한 위상을 찾으려고 애써 왔다. 따라서 러시아로서는 부시 독트린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에 상응하는 외교 정책을 수립해야 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발표된 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 로고프 박사의 <부시 독트린과 러·미 관계 전망>이라는 논문은 관심을 끈다. 다음은 러시아 학술원 회원이며, 현재 학술원 산하 미국·캐나다 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로고프 박사의 논문을 요약한 것이다.





러시아·중국 견제가 목표


과연 부시 독트린의 본질은 무엇이며, 부시가 겨냥한 목표는 무엇일까? 부시는 21세기 미국에 대적할 초강국 출현을 저지하고, 유일 초강국 미국 신화를 지탱해주는 국제 질서를 견고히 유지해 가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부시의 최우선 전략 목표는 반미 테러 조직 제거이다. 워싱턴은 전세계에 조직망을 가진 알 카에다 조직은 물론 팔레스타인 주변과 아랍권에 산재한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들을 분쇄하고 무력화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고, 이를 위해 군사·경제·외교 정책을 병행해 왔다.


부시의 다음 전략 목표는 연두교서에서 ‘악의 축’ 범주로 분류한 이라크·이란·북한 등에 대한 통제와 제압 또는 포섭이다. 워싱턴은 반미 노선이 분명한 이들 ‘불량 국가’에 대한 압력·통제·제재는 물론 만일의 경우 군사적 공격도 불사할 방침이다. 북한을 위협하던 미국은 현재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공격할 빌미를 찾고 있다.


부시 전략의 최종 목표는 중국과 러시아 견제이다. 워싱턴은 과거 이념적·정치적·군사적 적대국이며 군사 강국인 두 나라가 앞으로 미국의 경쟁자로 출현할 가능성을 차단하려고 한다. 즉 러시아와 중국이 새롭게 초강국으로 진입할 통로를 차단하고 미국만이 세계 유일의 초강국 지위를 누리겠다는 것이다.


부시 독트린의 또 다른 본질은 무엇일까? 부시 독트린의 본질은 군사 패권주의와 일방적 외교 정책이다. 클린턴 행정부 때 미국의 초고속 경제 성장이 부시 독트린의 견인차가 되었다.


1990년대 초반 미국 경제는 최신 정보 기술에 힘입어 세계 평균 경제 성장 속도를 무려 1.5배나 앞질렀다. 이로써 미국은 독일·일본 등 경제 대국을 따돌리고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경제 초강국으로 떠올랐다. 이는 외국 투자가 미국 시장으로 집중되는 집적 효과를 유발해 1990년대 말에는 전세계 투자의 30% 이상이 미국 증권가로 쏠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 결과 세계 자본 시장의 45%를 미국이 독식했다. 이런 막강한 경제력은 부시가 군사 패권주의를 강행한 배경이 되었다.


유엔 체제 전면 재검토


미국은 왜 군사력을 증강하는가? 미국의 군사력 증강 목적은 구체적인 위협이 발생하기에 앞서 가상 적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확신할 수단과 힘을 확보하고, 군사적 힘의 우위를 배경으로 하여 적대국들의 본질을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즉 우월한 군사력을 동원해 일방적으로 몰아붙여 군사·경제·정치 목적을 달성하려고 군사력 증강에 몰두하는 것이다.





부시 독트린의 군사 패러다임은 신 군사 전략 개념이다. 신 군사 전략의 핵심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재래식 전쟁에서 힘이 달릴 경우 핵·생물 화학 탄두를 적재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등 대량 살상 무기를 사용해 일명 ‘비대칭 보복’을 단행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미국 첩보기관 자료에 따르면, 이른바 불량 국가들은 5년 이내에 미국 본토를 공격할 대륙간 미사일(MBR형) 개발에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이때 대량 살상 무기 보유국들은 미국 최첨단 무기의 위협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것이고, 이는 미국의 군사 행동을 위축시킬 것이다. 미국이 대량 살상 무기 제조·보유국을 위협·통제하는 데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량 살상 무기에 대한 워싱턴의 대응 전략은 무엇일까. 워싱턴은 대량 살상 무기 통제 전략과 미사일 방어(MD) 전략을 병행하는 이중 전략을 짰다. 미국은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제조한 혐의가 있는 국가들을 외교·군사적으로 압박하는 동시에, 최근 2년간 미사일 방어 프로그램 연구·시설비를 두 배로 증액했다. 미군은 1990년대 말께 스커드 미사일 요격 시스템인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세 번째 모델을 생산·배치했고, 머지 않아 화학 레이저를 이용한 미사일 요격 시스템을 보잉기에 탑재하는 공중 기지를 설치해 시험·가동할 예정이다.


핵 통제는 대량 살상 무기 협상에서 핵심 사안이다. 부시는 대통령 선거 캠페인 연설에서 미국의 핵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공약했다. 그러나 2002년 1월 채택된 <핵 전략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아직 핵무기에 대한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과 러시아 간의 핵 감축 협상안에 따르면, 양국은 2007년까지 3천7백 기, 2012년까지 1천7백∼2천2백 기로 감축해야 한다. 이 같은 핵탄두 수량은 미국과 러시아 간에 핵 전쟁이 발발했을 때 꼭 필요한 수준이라고 한다.


미국은 이른바 불량 국가에 대한 특별 핵 정책도 마련했다. 부시가 ‘악의 축’이라고 규정한 이라크·이란·북한을 포함해 대량 살상 무기 제조 혐의를 받고 있는 레바논과 시리아도 핵 정책 대상국이다. 워싱턴은 만일 이들 국가가 미국과 동맹국을 겨냥해 생물 화학 무기를 사용한다면, 핵무기로 대응하겠다고 경고하는 한편, 이들 국가가 대량 살상 무기에 접근할 통로를 차단하려고 진력하고 있다.


일방적 외교 정책은 부시 독트린의 또 다른 본질이다. 부시는, 가능하면 동맹국들과 행동을 같이하겠지만 불가피한 경우 독자적인 길을 가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일방적 태도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르면서 분명하게 표출되었다. 미군의 카불 공격 결정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유엔 체제를 전면 재검토하려는 백악관의 세계 전략에서 나온 셈이다. 미국은 현 국제 질서 체계의 주축인 유엔의 역할을 평가 절하하고, 워싱턴의 역할 증대를 꾀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20년 전부터 구상해온 정책이다. 미국의 일방적 태도는 러시아와의 핵무기 감축 협상 과정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미국은 탄도탄 요격 미사일(ABM) 제한 협정 탈퇴를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부시 독트린은 강력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백악관 논리를 세계 논리로 밀어붙이며 기존 패러다임을 전면 부정하려는 독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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