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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밖에 난 몰라” 늘어나는 흑백 커플

미국, 1960년대에 비해 6배나 증가

워싱턴·변창섭 편집위원 ㅣ cspyon@sisapress.com | 승인 2002.12.09(Mo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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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amma
미국에서 한때 범죄시했던 ‘흑백 결합’은 광고의 소재로 등장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가고 있다.


미국에서 인종 차별이 극심하던 1958년 7월15일. 버지니아 주 자택에서 단꿈에 빠져있던 흑인 신부 밀드리드 지터(18)와 백인 신랑 리처드 러빙(24)은 새벽 2시께 주 경찰관 3명이 집안에 들이닥치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경찰관은 흑백 결혼을 금한 주법을 어겼다며 신혼 부부를 연행했고, 신혼 부부는 곧 연방 대법원에 제소했다.


이른바 ‘러빙 대 버지니아 주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문제의 소송은 9년 만인 1967년 6월 연방 대법원이 신혼 부부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끝났다. 당시 얼 워런 연방 대법원장은 “개인의 삶과 자유, 재산권 침해를 막기 위한 수정 헌법 14조에 어긋난다”라며 흑백 결혼 금지가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연방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지 올해로 35년째를 맞이한 요즘 미국의 흑백 결혼 문화는 얼마나 변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흑백 결혼은 시대 변천과 더불어 엄청나게 늘었다. 1960년 인구 통계에 따르면, 당시 흑백 결혼 부부는 모두 5만1천 쌍에 불과했으나 해마다 증가 추세를 보여 1998년에는 약 6배가 불어난 33만3천 쌍으로 집계되었다. 물론 이 규모는 1998년 한 해 미국에서 결혼한 약 5천5백만 쌍의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흑백 인종 문제로 피비린내 나는 갈등을 겪은 미국 사회에서 이 정도나마 흑백 커플이 탄생했다는 사실 자체가 뉴스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과 결혼하는 것은 백인에 대한 범죄였다. 결혼은 고사하고 단순히 교제하거나 성관계를 갖는다는 이유만으로 백인들로부터 가혹한 보복을 당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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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연합
흑인을 아내로 맞이한 전 국방장관 윌리엄 코언.


오늘날 흑백 결혼은 평범한 서민층에서부터 사회 지도층 인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실례로 클린턴 행정부 때 국방장관을 지낸 윌리엄 코언의 아내가 흑인이다. 세계적 의류 브랜드인 게스, 토미 하일피거, 캘빈 클라인 같은 회사들은 자사 광고에 앞다투어 흑백 커플을 선보이고 있다.


흑백 결혼만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계, 아메리칸 인디언, 또는 남미계 등 여타 인종과의 결혼도 급증하면서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에는 인종 혼합을 상징해 미국의 ‘크레올화(creolization)’ ‘갈색화(browning)’ 또는 ‘베이지화(beiging)’라는 신종 어휘까지 등장했다. 하버드 대학의 인종 사회학자인 랜달 케네디 교수는 “오늘날 미국인은 순수파 인종주의자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혼합 인종이나 다름없다”라고 선언했다.


사회 지도급 흑인 남성은 백인 여성 좋아해


이처럼 흑백 결혼이 늘어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흑백 결혼 금지를 철폐한 대법원 판결과 인종 차별을 제도적으로 방지한 각종 민권법안 채택이 큰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다. 흑백 기회 균등을 목적으로 제정된 ‘소수 민족 우대법(Affirmative Action)’을 통해 상당수 흑인이 대학 입학과 취직을 포함해 사회 전분야에서 혜택을 받았다. 그 덕택에 많은 흑인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백인 주류 사회에 진입하거나 이들과 교류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졌다. 특히 대학을 졸업하고 자립심이 강한 흑인 여성일수록 인종 장벽을 넘어 백인 남성과 결혼하는 추세가 늘어났다.
지난 7월 <애틀랜타 저널 앤드 컨스티튜션> 보도에 따르면, 흑인 여성과 백인 남성의 결혼은 1960년 2만6천 건에 불과했지만 2000년에는 8만 건으로 늘어났다.


그렇다면 정작 흑백 결혼에 대한 흑인들의 생각은 어떨까. 앞서 케네디 교수는 <애틀랜틱 먼슬리>에서 이를 세 가지 부류로 파악했다. 우선 찬성파는 흑백 결혼을 통해 인종 차별이 줄어들 수 있고 백인에 버금가는 지위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흑백 결혼을 인종 차원이 아니라 각 개인의 결혼 선택권으로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역시 다수는 반대파에 속한다. 많은 흑인 남성이 가난에 시달리거나 범죄로 투옥되어 있는 터에 그나마 괜찮은 흑인 남성은 백인 여성과 결혼하는 바람에 엘리트 흑인 여성조차 같은 피부 빛깔의 배우자를 찾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몇해 전 통계에 따르면 20대 흑인 여성 3명 중 절대 빈곤 수준을 넘어선 경제 능력이 있는 사람은 1명에 불과했다.





ⓒ gamma
백인 아내를 둔 대법관 클래런스 토머스(위쪽)는 흑백 결합을 이룬 미국의 대표적인 명사들이다.


흑인 처지에서 볼 때 역시 가장 이해하기 힘든 현상 중 하나는 사회 지도급 흑인 인사들이 백인 아내를 맞는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클래런스 토머스 연방 대법관을 비롯해, 미국 내에서 가장 막강한 흑인 권익 단체인 ‘흑인진보전국연합’(NAACP)의 줄리언 본드 의장, 지난 10월 워싱턴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은 연쇄 살인범 총기 사건의 수사본부장을 지낸 찰스 무스 몽고메리 경찰서장, 미국 제1의 흑인 사회학 연구가인 하버드 대학 헨리 루이스 게이츠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프린스턴 대학과 하버드 법대에서 교육받은 흑인 사회운동가 로런스 그레이엄은 “흑인 인사들의 배우자가 백인으로 드러날 때 우리 어린이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흑인 사회가 언제부터인가 범죄와 마약 문제 등으로 또다시 골머리를 앓는 상황에서 지도급 인사라는 사람들의 배우자가 백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명한 흑인 사회개혁가인 조지 와일리는 한때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 흑인 집회에 참석했다가 흑인들로부터 “야 XXX, 당신과 잠자리를 같이하는 백인 마누라는 어디 있냐?”라는 야유를 받고 강단에서 내려와야 했다.


흑백 커플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이지만 모두가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런 점에서 1991년 흑백 결혼의 실패를 날카롭게 묘사해 충격을 던진 영화 <정글 피버>는 결코 허구가 아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것과 같은 비운의 흑백 커플을 지금도 미국 사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사회학자인 흑인운동가 올랜드 패터슨은 ‘흑백 결혼은 다다익선’ 주의자이다. 그에 따르면 흑백 결혼은 흑인들의 사회 진출망을 넓혀주는 것은 물론 결혼 시장에서 인종간 벽을 허물어뜨려 흑인 여성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흑인을 미국 주류 사회에 완전히 통합하기 위해서라도 흑백 결혼은 필요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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