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대리전' 나선 톱스타들
  • 워싱턴·정문호 통신원 ()
  • 승인 2004.09.1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명 연예인들, 미국 대선 앞두고 지지 후보 응원전 돌입
톰크루즈, 스티븐 스필버그, 멜 깁슨, 브루스 윌리스, 아널드 슈워제네거, 로버트 드 니로, 바브라 스트라이젠드, 찰턴 헤스턴, 우피 골드버그, 마이클 무어, 오프라 윈프리…. 한국인에게도 낯설지 않은 미국의 저명한 배우 혹은 영화 감독 들이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과 민주당 양 진영으로 나뉘어 열띤 응원전을 벌이고 있다. 공화·민주 양측 선거본부도 대선의 향배를 가늠할 부동층 공략을 위해 연예인들의 지지가 필수라고 보고, 이들의 선전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눈치다.

우선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토크쇼 진행자인 오프라 윈프리부터 살펴보자. 그녀가 진행하는 오프라 윈프리쇼는 매일 평균 1천4백만 명이 시청할 정도로 대단한 위력을 자랑한다. 그런 그녀가 얼마 전 자신의 쇼에서 초대 손님으로 반전 인사를 불러다 놓고 부시의 이라크 전쟁을 신랄히 비난해 공화당측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녀는 또 반부시 운동의 선봉장 격인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가 부시의 외교 정책을 질타한 영화의 일부를 보여주었는가 하면,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이라크 전쟁의 부당성을 알리기도 했다.

부동층·젊은이 ‘표심’에 큰 영향

그녀의 왕성한 반부시 활동에 대해 한 보수 칼럼니스트는 ‘오프라는 단순히 문화계 파워 여성이 아니라 당대 주요 현안에 대해 예측불가능하면서도 편협한 인식을 가진 위험한 정치적 인물’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물론 오프라 윈프리는 일부 다른 연예인처럼 민주당 대선 후보인 케리에 대해 공개적 지지를 선언한 적은 없다. 그러나 행동거지를 살펴보면 그녀가 누구를 지지하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영화 배우 톰 크루즈는 반대 진영에 섰다. 9월 초 자신의 영화 홍보를 위해 멕시코를 방문한 크루즈는 연예인도 선거 유세에 참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하고 “개인적으로 부시 대통령만큼은 잘 모르겠지만, 후세인이 반인륜적 범죄를 많이 저질렀다고 본다”라면서 은근히 부시의 이라크 정책을 두둔했다.

영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도 같은 편이다. 그는 최근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해 “부시가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만들고 있다는 확실한 정보를 갖고 있다면, 부시의 이라크 정책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라크 무기 사찰단은 물론 부시 정부조차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시인한 상황에서, 여전히 가정법에 기댄 스필버그의 발언에서는 친부시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이처럼 저명 연예인들이 앞다투어 지지 후보를 위해 응원전에 나서고 있지만 열성 지지파가 많기로는 단연 민주당 케리 후보측이다. 케리 후보가 최근 로스앤젤레스에서 주최한 모금 행사에는 가수 바브라 스트라이젠드와 배우 빌리 크리스털·로버트 드 니로,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 저명한 컨트리 가수인 윌리 넬슨 등 쟁쟁한 인물들이 참석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벤 애플렉, 제이미 폭스, 벤 스틸러 등 할리우드의 A급 배우들도 대거 출동했다.

이 자리에서 크리스털은 “이른바 9·11은 부시 대통령의 대학수학능력(SAT) 점수와도 같다”라고 부시를 풍자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면 SAT 성적이 적어도 1,200점은 되어야 하는데 그보다 훨씬 낮은 911점을 ‘9·11’에 빗대 꼬집은 것이다. 또 스트라이젠드는 1964년 자신의 히트곡 <피플(People)>의 노랫말을 ‘럼스펠드, 우린 이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당신을 제거해야만 해. 이 전쟁에서 우린 졌어. 전비가 얼마였냐고 묻지마. 1천억 아니 2천억을 썼다고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까’로 바꾸어 불러 참석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케리는 이들의 ‘출연’ 덕분에 이틀 동안 9백50만 달러를 모금하는 데 성공했다. 테리 맥컬리프 민주당 전당대회 의장은 기자들에게 “우리는 부동층과 젊은이들을 공략하기 위해 앞으로도 연예인들을 광범위하게 활용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유명한 록 가수인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10여명의 동료 가수들도 케리 후보 지지에 발벗고 나섰다. 이들은 자신들의 순회 공연을 아예 ‘변화를 위한 투표’라고 널리 선전하며, 부동표가 많은 오하이오·미시간·펜실베이니아 주를 포함해 9개 주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수익금 전액을 부시 낙선운동 단체인 ‘미국의 단합(America Coming Together)’측에 기부할 방침이다. 리더 격인 스프링스틴은 AP통신과의 회견에서 “우리의 목표는 백악관 주인을 바꾸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공화당조차 선거 때만 되면 유세 음악으로 스프링스틴의 활기찬 음악을 단골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애리조나 주에서 이곳 출신 상원의원인 존 매케인이 공화당원 1천여 명 앞에서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내보낸 음악도 스프링스틴의 히트곡인 <본 투 런(Born to Run)>이었다.

케리 후보측에게는 인터넷 상에서 부시 낙선운동을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는 무브온(MoveOn.org)이라는 단체가 100만 원군이 되고 있다. 이 단체는 영화 < 해리와 샐리가 만났을 때>를 감독한 롭 라이너를 비롯해 존 세일즈, 더그 라이먼 등과 손을 잡고 마틴 시언, 맷 데이먼, 스칼렛 조안슨, 케빈 베이컨 등 유명 배우를 출연시켜 부시 낙선을 위한 텔레비전 광고물 10편을 만들었다. 대선 직전까지 10주간 방영될 예정이다.

그중 여배우 조앤슨이 출연한 광고가 압권이다. 한 비행기 승무원이 이라크 전쟁 특수로 돈을 잔뜩 번 사업가를 낙하산에 묶어 이라크 땅에 떨어뜨린 뒤 시청자들을 향해 “전쟁에서 돈을 번 이 사람이 직접 전투에 나서라고 하면 어떨까요”라고 반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진영 연예인의 대대적인 공세에 부시 후보측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부시측이 최근 막을 내린 전당대회에서 영화배우 출신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된 아널드 슈워제네거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일종의 맞불 작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뉴욕 전당대회 연단에 선 슈워제네거는 비록 주지사 신분으로 그 자리에 섰지만, 그는 미국은 물론 전세계에 ‘미국적 꿈을 실현한 모범’으로 선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드 길레스피 공화당 전당대회 의장이 기자들에게 “많은 사람이 우리 전당대회에 나온 슈워제네거를 보고 부시에게 표를 던져주길 바란다”라고 말한 것도 범상치 않다.

“연예인 정견 따라 지지 후보 결정”

현재 부시쪽 연예인으로는 톰 크루즈, 스티븐 스필버그말고도 왕년의 영화 배우로 지금은 막강한 로비 단체인 미국총기협회 회장으로 있는 찰턴 헤스턴, 배우 케슬리 그래머, 브루스 윌리스, 라라 보일, 멜 깁슨, 유명 텔레비전 시리즈 <친구들(Friends)>의 스타인 매트 르블랑, 세계적 팝가수인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리키 마틴, 제시카 심슨 등이 있다.

연예인들의 정치 참여에 대해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명사의 정치>의 저자이자 브라운 대학 정치학과 교수인 대릴 웨스트는 “많은 미국인들이 느끼는 좌절감 가운데 하나는 자기들이 뽑은 정치인들이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인데, 이런 상황에서 연예인들이 문제 해결사로 나서니 환영 받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여론조사 기관인 퓨(Pew) 리서치센터가 조사한 결과 정치적 냉소증을 보이는 30세 이하 젊은층의 3분의 1이 심야 텔레비전 토크쇼에 출연한 연예인들의 정견에 따라 자신들의 생각을 정리한다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연예인이 갖고 있는 정치적 영향력을 새삼 실감케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