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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박범신 소설집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

박범신씨의<향기로운 우물이야기>,중견 작가의 실험,장인 정신 돋보여

이문재 기자 ㅣ moon@sisapress.com | 승인 2000.11.23(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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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소설가 박범신씨(54·명지대 문창과 교수)가 최근에 펴낸 소설집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창작과비평사)에는 여러 개의 우물이 있다. 30년 가까이 소설을 써 왔다는 의미에서 보면 이번 소설집은 ‘한 우물 파기’의 연장이지만, 작가는 ‘두 번째 우물’이라고 말한다. 3년 전, 3년여 절필한 끝에 <흰소가 끄는 수레>를 발표할 때 작가는 “내 문학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라고 말했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중·단편 8개는 서로 다른 주제와 기법을 실험하고 있다. ‘8개의 우물’이다. 문학 평론가 권성우씨는 한 월평에서 “한마디로 이번 소설집은 같은 작가가 썼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다성성의 향연으로 채워져 있다”라고 평가했다. 한 우물 파기를 미덕으로 삼는 한국 문단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경우다. 박씨는 명지대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바로 내 경쟁 상대야”라고 말할 만큼 20대 문학 청년으로 돌아가 있다.


서사 회복을 위한 ‘심청이의 입수가’

좋은 우물은 마르지 않을 뿐 아니라, 넘치지도 않는다. 좋은 우물은 거대한 지하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중·단편은 저마다 좋은 우물이자, 작가에게는 새로운 시추이다.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에서 실제로 우물이 등장하는 작품은 표제작이 거의 유일하지만, 작품 후반부에 실린 ‘들길’ 연작(<그해 가장 길었던 하루> <손님>)과 <별똥별> <세상의 바깥> 또한 박범신 문학의 새로운 시추이다. 마술적 리얼리즘에서 정통적 사실주의까지 아우른다.

육신을 떠난 영혼이 다른 육신을 얻어 사는 과정을 통해 현대인의 정체성 혼란을 2인칭 서술 방식으로 묘파하거나(<세상의 바깥>), 자신을 엿보는 타자의 시선을 통해 주체와 시간의 의미를 탐사하고(<별똥별>), 일제 식민지 시절 충청남도의 한 농촌을 배경으로 원형질적 인간이 근대의 입구에서 무너지는 장면을 포착한다(‘들길’ 연작).

<흰소가 끄는 수레>에서 ‘작가’(물 긷는 사람)를 되찾았다면, 이번 소설집에 와서 박범신 문학은 새로운 ‘작품’(우물)을 되찾았다. 박씨는 “소설에 대한 나의 사랑은 뜨겁지만, 정작 파죽지세의 반문화적 변화 속에서 문학의 위상이 축소되는 현실을 보면 비애감마저 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비애감 또한 그의 새로운 우물 파기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는 자신과 자신의 문학을 인당수에 뛰어드는 심청이의 운명에 비유한다. 그리하여 심청이의 ‘입수가’가 1990년대 한국 문학이 제외한 ‘서사 복원’의 서곡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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