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죽거리 잔혹사’ 몸으로 겪은 3인 방담
  • 노순동 기자 (soosisapress.comkr)
  • 승인 2004.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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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시절의‘강남 몬도가네
1970년대 학교 생활을 배경으로 삼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내놓은 유 하 감독을 심영섭씨(임상심리학자·영화평론가)와 함성호씨(건축가·시인)가 만났다. 1970년대 말 중고생이었던 이들은 ‘그 때 그 시절’을 놓고 실컷 수다를 떨었다. 영화의 아이콘인 괴조음(怪鳥音)을 지르는 리샤오룽(李小龍)을 수다의 첫 화두로 삼아 방담을 이어갔다.

기자:돌아보니 당시에는 초등학생 남자 아이들까지 쌍절곤을 휘둘렀던 기억이 난다. 꼬마들까지 어떻게 리샤오룽을 알았던 걸까?

유 하:삼촌들이 데리고 다녔겠지. 난 버스 안타고 돈 아꼈다가 극장에 가곤 했다.

심영섭:세부 묘사가 선명하다. 영화 <필링>이며 리샤오룽 영화들, 올리비아 핫세 사진을 코팅한 책받침, 디스크 자키(DJ)가 있는 떡볶이집, 라디오 DJ 서금옥, 또 진짜 김부선(떡볶이집 여주인 역을 맡은 그녀가 고교생 현수를 덮친다).

유 하:나는 자연주의자에 가깝다. 욕의 디테일, 침 뱉는 각도까지 사실적으로 복원하고 싶은 박물관적인 욕망이 있다.

함성호:복원의 욕망에 비판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영화에서 1970년대 말 강남이라는 공간, 장소성의 비중이 상당히 크다고 보았다. 교문에서 ‘빠따 맞는’ 장면을 위에서 찍었는데, 학교 맞은편은 아직도 논밭이더라.

유 하:작정한 것, 맞다. 옛날 사진을 주고 장소 헌팅을 부탁했는데 제작부가 여간 애를 먹은 게 아니다. 결국 전라도 쪽으로 가게 되더라. 그 곳 주민들이 반발했다. 우리가 1970년대 말 강남 수준이냐며.

심영섭:군산은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이기도 했다. 영화 감독에게 강남은 무엇인가.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도 그렇고,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연희는 옥탑방에서 깨가 쏟아지는 생활을 꿈꾸면서도 강남 상류층의 생활을 동경한다.

유 하:강남에 대한 애증이 있다. 고창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때 처음 서울 답십리로 올라왔는데 맨 시멘트 바닥에 폐수가 흐르는 곳이었다. 가뜩이나 고향 하나대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살을 앓고 있던 나에게 어른들은 전라도 사투리를 쓰지 말라고 했다. 전라도 사투리는 용팔이·식모·때밀이의 언어였으니까. 그러다가 강남으로 갔는데, 나에게는 그곳이 바로 유년의 고향 하나대였다. 황금빛 벼가 출렁이고 메뚜기를 잡을 수 있는 곳, 그런데 그 곳에 현대식 양옥집이 들어서고 있었다. 평준화 때문에 그 전까지 전수학교이던 상문고에 진학했다. 그곳에서는 원주민과 새로 이주해온 중산층 자제들의 계급 충돌이 적나라했다. 3, 4년씩 꿇은 토박이 동기들이 많았다. 결국 그들은 더 외곽에 자리한 세곡동이나 원지동으로 밀려나더라. 그 아이들을 추억하고 싶었다.

함성호:남들이 부정적으로 보는 공간 안에서 즐기면서 반성하는 게 유 하 감독의 특기이다. 문화에 중독되면서 반성하는 것이다.

심영섭:영화 말미에 나온 ‘대한민국 학교 좆까라 그래’라는 현수의 대사는 고름이 터지듯 후련했다. 반면 서론이 무척 길다. 폭력적인 권력 관계에 눈떠가는 남자 아이들의 성장사는 그닥 새로울 것이 없는데 말이다.

유 하:디테일이 살아 있는 영화는 의외로 적다. 지금까지의 ‘70년대 학원물’에는 1970년대가 없다. 해보니까, 이게 배우들한테는 ‘사극’이더라. 교모 쓰는 법도 몰라서 가르쳐 주어야 했다. 물론 영화 <친구>에도 수컷끼리의 경쟁이라는 구도가 있고, 그 갈등이 조폭 사회로까지 확장되지만, 교실 풍경을 전면적으로 다룬 것은 처음이지 싶다. 폭력의 강도는 많이 낮추었다. 몬도가네가 될까 봐. 기자:군기를 잡으려는 선도부 선배에게 그만하라고 대드는 장면이 흥미로웠다. 학교의 권력을 나눠 행사하는 그들에 대한 거부감이 읽혔다. 감독도 선도부 출신 아닌가?

유 하:아니다. 키가 커서인지 기수를 하라는 요구를 받았는데 거절했다. 그 덕분에 많이 얻어터졌다. 그냥 싫어서 그랬을 뿐인데.

심영섭: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던가? 만나나?

유 하:(주먹 잘 쓰고 잘생긴 학교의 캡짱이었던) 우식(이정진)의 모델이 되었던 친구는 역시나 지역의 유지로 잘살고 있다. 보험사 직원이 된 친구도 있고.

심영섭:학교를 때려치우고 나온 현수(권상우)가 대학에 들어가려고 검정 고시를 준비한다. 다시 체제 안으로 편입하는 것이다. 일본 영화 <키즈 리턴>과 같은 기백이 아쉬웠다.

유 하:그때는 서태지가 나오기 전이라(웃음). 역시 내가 자연주의자라서 그렇다. 학교를 박차고 나온 현수가 검정 고시를 준비하는 게 더 리얼하다고 생각한다. 끝까지 주류 체제를 거부하고 나갔다면 그게 바로 ‘리샤오룽 영화’ 아닌가. 현실은 비루하다. 당시 대학은 유일무이한 가치였다.

심영섭:남성들의 회고담에는 공통점이 있다. 여학생을 두고 두 남자가 경쟁하는데 순정을 가진 남자가 꼭 진다. 현수와 키스도 하고 교감을 나누던 은주(한가인)가 어느 날 그 폭력적인 남자 우식과 튄다? 유구한 도식이 되풀이되는 느낌이다.

유 하:이건 남자 영화다. 여자는 인간이 아니다, 그게 남자애들이 자라면서 배우는 거다. 극중 우식은 은주와 친해진 현수에게 질투를 느끼는 등 인간적인 감정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걸 숨기고 ‘걔, 한번 먹기엔 괜찮아’라며 쿨한 척한다. 그런 수컷다움에 은주도 넘어간다. 여성 캐릭터를 어떻게 그려야 하는가 하는 상은 있지만, 본 게 더 크게 작용한다. 자의식 있는 남성은 연애에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함성호:은주와 현수가 소통하는 매개가 되는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셋의 우정을 깨뜨리는 우식의 만년필이 대비된다.

유 하:여기 나오는 남자들 또한 남성주의의 희생자다. 또 여성 스스로도 마초이즘에 침윤되어 있는 측면이 있다. 내 주변에 우식처럼 맨주먹으로 벽을 내리쳐 피를 보여주고 난공불락이던 여자를 얻은 친구가 있다.

함성호:사람 심리가 묘하지 않나. 한 경영인이 그랬다더라. 부하들에게 잘해주지 말아라. 자신이 보잘것없다는 것을 환기하고 권력 관계를 확실하게 각인하도록 하라. 기자:설마 그 말에 수긍한다는 뜻인가?

심영섭:난 이게 386세대의 업보인 것 같다. 많은 작가들이 1970년대, 수컷주의, 폭력적인 군대 문화를 비판하는데, 그 대안 또한 마초이즘의 틀을 못 벗어나는 거. 영화 <실미도>를 보라. 어려운 훈련을 이겨내는 남성의 몸에 대한 매혹이 절절하다. 현수가 절권도를 배우는 과정 또한 길고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유 하:권상우(현수 역)의 그런 몸, 여성들도 좋아하지 않나(웃음)?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현실에 다른 대안이 있을까. 현수도 결국 학교에서 사악한 용기를 배운다. 싸움은 ‘선빵’(먼저 공격하는 것)이 최고라는 것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다.

심영섭:(눙치며) 물론 그 배우 예쁘지. 슬픈 표정을 잘 뽑아내서 더 좋은 거 같다. 유 하 감독은 모순이 많다는 느낌을 준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그 해 여성 관객이 뽑은 최고의 영화였다. 페미니즘적인 태도와, 마초이즘을 반성하는 마초이즘이 공존한다.

유 하:페미니스트라고 하면 위선일 것이다. 난 14대 종손이다. 1년에 제사가 열한 번, 남자들만 절하고 진설하고 여성들은 부엌을 못 벗어나는 걸 보면서 단 한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니까, 사실 결혼도 효도한다는 생각으로 했는데(긁적긁적), 내 아내가 집안 행사 때 그러고 있으니까 뭔가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이 비로소 드는 거다.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그렇게 머리로 이해하게 된 것을 반영한 것이고, <말죽거리 잔혹사>는 가슴으로 만든 것이다.

심영섭:‘박정희 시대가 좋았다’면서 동상 세우려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꼭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이건 좀 다른 얘기인데, 요즘 한국 영화가 왜 이렇게 과거 지향일까?

유 하:과거에 대해 제대로 말을 못해서일 것이다. 또 미래는 이미 낡아 있다. 살아 보니 과거가 더 새롭더라.

심영섭:관객도 미래에 관심이 없다. 과거에 대한 관심은 증후군을 방불케 한다. 그냥 호기심인데, 학창 시절의 영웅, 영화 속 우식과 같은 인물에 대한 환상이 남아 있나?

유 하·함성호:녹음하면서 영화사 관계자들이 삥 둘러서서 잡담을 하는데 아직도 ‘야, 니네 학교 짱은 누구였냐?’ ‘걘 뭐하냐’ 이런 얘기가 오간다. 남자들은 그런다. 쟤, 많이 컸다, 혹은 뭣 같아졌다.
기자:주도권이 절권도에서 흐느적거리는 청룽(成龍)의 취권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대목이 흥미롭다. 허허실실의 상징인가?

유 하:한 세대가 마감되었다는, 웃기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암시이다. 1980년대는 정권이 희화화되는 시대다. 육영수 여사가 돌아갔을 때 국모를 잃은 듯했다. 이순자 여사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주걱 턱이 회자되었다.

심영섭:정작 1980년대는 홍콩 느와르의 시대였다. 낮에는 최루탄 가스 마시고 밤에는 총격이 난무하는 스크린에 빠지고. 총 한 자루로는 모자라서 쌍권총이어야 했던 시대였다. 영화가 몹시 잘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유 하:고맙다. 근데 왠지 가시 같은 것이…(웃음). ‘차라리 예술은 쉽다’고 나는 말한다. 대중적인 장르는 그래서는 곤란하다. 많은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훨씬 어렵고 대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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